안녕하세요. 게으른 존못이 내일모레 행사인데 지금 원고하면서 펑크방지를 위한 수량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뭐라도 좋으니 댓글에 원하는 수량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분골쇄신해서 열심히 써가겠습니다ㅠㅠㅠ
키세사랑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아 위치는 리제님 부스에 위탁해서 '[우2] 동경을 그만두는 것을 방해하지마!' 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ㅠㅠㅠㅠ
24시간의 연인/녹황/A5 16~20페이지 중철본/2000원
청황 베이스의 녹황으로 청<황<녹으로 향하는 짝사랑...입니다.
▼Sample
키세가 잡은 손목을 미도리마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한적한 오전의 시 외곽으로 나가는 전철 안에서도 키세는 손목을 놓지 않았다. 처음 탔을 때부터 빈 칸이 드문드문 보이던 전철 안은 지금은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덜컹대는 규칙적인 전철의 움직임이 배경음처럼 흡수되고 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불편한 침묵은 아니었다. 키세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다. 날이 맑아 키세의 얇고 가는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짝이며 일렁인다. 이제는 슬슬 봄을 지나 여름에 가까운 날씨. 한낮의 더위는 연일 섭씨 20도 이상을 웃돌았지만 키세는 여전히 미도리마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미도리마는 여전히 그 손목을 바라만 볼 뿐, 쳐내지도 않고 키세에게 무어라 말하지도 않았다.
어떤 단어에 대하여 그 정의를 생각해 본 적 있었다. 낯간지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미적지근한, 미도리마와는 거리가 먼 단어. 버스 안에서, 극장 안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깍지 낀 손을 자랑하듯 앞뒤로 흔들며 거리를 활보하는 한 쌍의 사람들. 키나 몸무게, 체형이나 얼굴도 제각각이지만 포괄적으로 하나였다. 그런 머나먼 타인의 시선은 500페이지짜리 사전에 쓰여진 학술적인 정의와 다를 바 없다. 질릴 정도로 귀에 박힌 목소리나 지금 눈앞에서 흔들리는 가는 머리카락은 굳이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선했으나 그 위에 하나의 단어를 덧씌우는 순간 상像은 순식간에 그 모양을 바꾸어 형용할 수 없는 생전 처음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을 지금 키세는 강요하고 있었다.
손목을 감싼 손바닥은 조금 메말라 거칠었지만 손바닥이나 손가락 이질적으로 매끈했다. 이 감촉을 미도리마는 알고 있다. 매끈한 농구코트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마찰력이 큰 농구공을 다루다 보면 누구라도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기 마련이다. 모르긴 몰라도 키세가 처음 농구부에 들어왔을 때 그의 손은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말랑했으리라. 아니면 그 때도 이미 학생 모델이란 타이틀은 붙어있었으니 외려 더 매끈하고 부드럽게 관리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 감촉과 그 손 위에 단어의 상을 덧그리려 미도리마는 노력했다. 이 손을 뿌리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그가 놓아줄 때까지 얌전히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간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야 할까. 무엇을 할 거냐고, 왜 그러느냐고. 그러나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떠한 형태로도 녹아들지 못한 단어가 그저 키세의 위로 어설프게 미끄러져 부유하고만 있다.
조용한 전철 속에서 지이이잉- 하는 휴대전화의 진동음이 들린다. 미도리마는 상념에서 벗어나 키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여전히 그는 들뜬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세의 시선은 한참 전부터 그 쪽을 향해 있었다. 키세가 눈치 채지 못하게 미도리마는 키세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가방 안을 더듬었다. 부드러운 체육복 사이에서 여전히 떨리고 있는 휴대전화를 찾아낸다. 조심히 꺼내 보면 아.
개교기념일에도 훈련일정은 빡빡했다. 외려 주말 이외의 휴일이 생겼으니 당연히 연습이었다. 무단으로 훈련에 결석했으니 무슨 일이 생길지. 수다쟁이 파트너는 아마 돌아간다면 미도리마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유를 물을 테고 엄격한 감독에게선 당연히 페널티가 주어질 터였다. 어떻게 따져도 학교에 가는 편이 미도리마에겐 이득이었으나 미도리마는 학교로 가는 대신 아침 일찍부터 미도리마의 집 근처 골목길에서 죽치고 있던 키세를 따라 지금 여기 있다.
미도리마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휴대전화를 바라보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잠깐의 정지화면 뒤에 이윽고 까맣게 변한 액정을 가방 속에 다시 밀어 넣었다.
“미도리맛치, 봐요! 바다야!”
열차가 한 번 커브를 돌자 키세가 바라보던 창 너머로 푸른 수평선이 반짝인다. 고개가 아플 텐데도 키세는 미도리마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마냥 고개만 돌려 뒤를 바라본다.
“카이조는 바닷가일텐데?”
“그거랑 이거랑은 다름다! 그리고 지금은 미도리맛치랑 있다는 게 중요해요!”
웃음을 담뿍 담고 헤실헤실 웃어대는 얼굴에 미도리마는 내일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진인사대천명. 오늘의 전갈자리는 6위였다. 어차피 이왕 벌어진 일이라면 인사를 다해야 되는 건 이쪽이겠지.
“아.”
그러나 미도리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결국 평정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탄식 같기도 하고 한숨 같기도 한 외마디의 그것을 키세는 못 들었는지, 아니면 무시하는지. 치받듯 올라오는 것들을 다시 안으로 밀어 넣고 다시 한 번 키세가 꽉 잡고 있는 손목, 그 위로 단어의 상을 씌우기 위해 노력했다. 채 두 줄을 넘지 않는 그 짤막하지만 어렵고, 몹시도 염원했으나 영원은 아닌, 그 단어의 상을.
연인(戀人)
[명사]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그 각각을 지칭하기도 하고, 두 사람을 아울러 지칭하기도 한다.
마감에 치이다보니 완결성이 떨어진 원고가 나오게 되어 어나더 엔딩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만 행사 끝나고도 한 달 이상이나 걸렸는데 여전히 전보다 완성된 수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안과 달리 이런저런 부분이 수정되기도 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게 되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만회해 보려고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
여러모로 미숙한 원고를 사주신 여러분들께 대단히 죄송합니다.
정말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
어나더 엔딩은 책의 마지막장만 새로 썼으며 4장까지는 기존의 책을 봐주시면 됩니다.
파일은 pdf로 첨부되어 있고 비밀번호는 책 마지막 장의 성경구절의 숫자를 순서대로 써주시면 됩니다.
한 번인가, 누군가에게 가벼운 체인의 손목시계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악세사리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별로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목시계를 가져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심플했으나 생각보다 손목에 걸리는 무게가 묵직하여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겠건만 그 익숙함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차마 짐작하지 못하여 고이 서랍으로 모셔두었다. 갑자기 서랍 한 켠의 손목시계가 생각난 것은 - 사실 갑자기는 아니고 늘 그러했다 - 그의 제복 소매 밑으로 얼핏얼핏 보이는 남빛의 가죽줄 때문이다. 특무대를 포함해서 격검기동대의 대부분은 손이나 손목에 별다른 악세사리를 착용하지 않는다. 단연 거슬리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빠른 동작을 요하는 긴급상황에서는 몇 그람의 질량이나 몇 세제곱미터의 부피라도 오차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남빛의 가죽줄은 유독 눈에 박힐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계… 말씀이신가요?"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을 마주쳤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물음이 입에서 어설프게 튀어나갔다. 무엇보다 시야를 잡아끄는 것은 으레 그러하듯 시계의 문자판이 바깥을 향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의 시계는 언제나 안쪽을 향해 있었다.
"그냥, 습관인데요."
왜,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그리 되었는지 물어보려 했으나 말은 나오다 다시 들어갔다. 습관이 되는 것에 대하여 사람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에게서 나올 대답도 그러할 거 같았다. 흐지부지하게 흘러간 물음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의식 안쪽에 가라앉아 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한 번, 그의 긴 제복 소매 끝을 훔쳐보고, 그리고 생각했다. 맺힌 물방울 위에서 뱅뱅 떠도는 물감 입자들처럼 나의 생각은 끝없이 둥둥 떠서 떠돌고, 헤매인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것을 보았으나 아직도 그 시계가 어떤 모양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게 보이는 것이라곤 그 남빛의 시곗줄 뿐이라 아무리 들여본다고 해도 그게 어떤 모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숫자판은 아라비아일까 로마자일까, 흰색일까 검은색일까, 그 문자판의 테두리는 은빛일 수도 있고 금빛일 수도 있다. 버클을 보건대 은색일 것 같지만, 생각지도 못한 녹색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선명한 코발트블루일 지도 모른다. 그 시계의 초침은 찰칵거리며 돌지, 아니면 소리없이 매끄럽게 원을 그릴 지. 심지어 그 문자판이 네모일지 세모일지 동그라미일 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내게 보이는 것이라곤 그 남빛의 시계줄 뿐이라, 그의 시간은 언제나 그를 향해서만 돌아가 있었기에, 보이지 않는 시계의 문자판에 대해선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시선은 쉽사리 옮겨지지 않는다. 팔을 테이블에 얹고 둥그렇게 손을 모아 살짝 손목 안을 들여다보는 내리깐 눈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낯설다. 그가 시계를 내려다 볼 때면 이상하게 그의 시간은 다른 이들의 시간과 똑, 하고 분리되어, 그의 팔 안쪽은 완전히 유리되어 흘렀다.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은 다른 말로 하면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답답해보일 정도로 가리워진 반 쪽 짜리 시야. 꼭 그만큼의 거리.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시계의 안쪽이 그의 시간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시간. 그는 어디까지나 정중한 사람이다. 정중하게 손을 그러모으고 얘기에 맞장구를 치고,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과 신음을 뱉다가도 아래를 내려다본다. 시선이 한 곳으로 내리 꽂히면 순간 모든 감각이 온전히 그의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누구에게나 일정한 거리를 둔 사람.
"아키야마 씨."
"네?"
나는 아무 의미 없이 그의 손목 안을 덮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손바닥 안으로 가둬진다. 유리된 시간이 내 손 안에서 찰칵, 하고 흘렀다.
2. 소음, 무소음
늘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서랍 안을 열어볼 생각이 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해묵은 기억을 더듬어 먼지 쌓인 케이스를 꺼내면 다행히 멈추진 않아 있었다. 익숙치 않아 구멍을 찾아 버클을 채우는 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매주 있는 훈련이 끝나고 빼놨던 시계를 그는 차분하고 빠르게 찾아 걸었다. 그 때를 제외한다면 그는 늘 그 시계를 차고 다녔기에 이미 둥그렇게 길이 든 가죽끈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른 것보다 늘어난 네 번째 구멍에 빠르게 버클을 밀어넣던 그 손놀림 역시 기억하고 있었으나 어설프게 따라할 수는 없었다. 틱, 틱, 틱, 하는 가벼운 소리가 손목 안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엇박으로 뛰던 맥도 갑자기 시계 소리에 맞춰 쿵, 쿵, 하고 뛰기 시작한다.
나는 그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서 무릎을 감싸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틱, 쿵, 틱, 쿵.
상체와 하체가 마주 붙어, 내 눈이 볼 수 있는 세계에는 어둠이 들어앉았다. 틱, 쿵, 틱, 쿵. 반복적인 소리가 배경음처럼 고요하게 깔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소음이 퍽 만족스러웠다. 희미하게 새어드는 빛 속에서 초침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작은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면 이내 그의 정적이 내게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한참을 그러다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알람도 듣지 못한 채 일어나니 빠듯한 시간이었다. 허겁지겁 셔츠에 재킷 소매에 팔을 우겨넣은 채 기숙사를 달려 사무실에 도착했다. 부장의 시선이 따갑게 닿았지만 어깨를 으쓱하면 못마땅한듯 미간을 찌푸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자리에 앉아 몇 가지 서류를 검토하고 보고하고 있으려면
"후시미 씨, 여기 어제 시가지에서 있었던 사건의 사후보고서인데요."
"아."
무심코 받아들기 위해 손을 내밀면, 그러나 손바닥에 걸려야 할 파일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고개를 돌리니 그의 시선이 물끄러미 아래에 꽂혀있었다.
"시계."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을 보았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내 손목을. 그 위에 얹힌 시계를. 나조차도 잊고 있던 그 문자판 위에 그의 반쪽짜리 시선이 꽂혀 있었다.
"아. 방에 있길래."
하지 않아도 될 말이 머쓱하게, 변명조로 튀어나온다. 딱히 죄지은 건 없는데도 이상하게 심장이 초조하게 쿵쾅댔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맘에 그의 손에 들린 서류를 낚아채면 그래도 여전히 눈동자를 내리깐 채.
찰-칵.
틱.
쿵,
쾅.
나는 이게 그가 보는 유리된 세계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어울리네요, 후시미 씨."
그 역시, 퍽 만족스러운 말이었다.
"소리도 안 나고."
그러나 그것만큼은 이상한 대답이었다. 순식간에 현실로 빨려나와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이었다.
"그 메이커, 다른 건 초침소리가 엄청 큰데 그 모델 하나는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 무소음 시계거든요. 제 것도 그런 거고. 후시미 씨는 소음에 민감하신가 보네요."
살짝 내보인 손목 안쪽의 시계판이 보였으나 평소에는 그토록 궁금하던 모양이 짧게 모습을 나타냈는데도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몹시 당황스러워 할 말을 잃었다. 평소처럼 입꼬리를 올린 정중한 인사와 함께 아키야마는 유유히 사라졌다. 오후까지 검토 부탁드립니다. 어렴풋이 그런 소리를 들은 듯 했으나 내게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았다.
찰-칵.
틱.
쿵,
쾅.
무소음.
하지만. 지금 내게 들리는 이 소리는 뭔데? 그 때 들렸던 소리는?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그의 시계가 내 안에서 돌아가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 손바닥 안에 갇혀있던 그 짤막한 그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찰칵, 하고 돌던 시계소리.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시계의 소리도 듣고 있었다.
찰-칵.
틱.
쿵,
쾅.
나는 이제, 그럼에도 늘상 습관처럼 시계를 차고 다니게 되었다. 길이 든 가죽줄이 그대로 자리 잡혀 둥그스럼하게 말렸고 하나, 둘, 셋. 세 번째 구멍이 늘어나 버클이 능숙하게 채워졌다. 나는 이제 그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게 되었으나 여전히 의문이었다. 내게는 너무 선명하게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렸다. 그 틱, 쿵, 하는 리듬이 머릿 속에 스며들 정도였는데도 그는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무심코 생각이 날 때마다 나는 이제 그의 제복 소매 끝을 훔쳐보는 대신 내 시계를 쳐다보았다. 무심히, 아주 무심하게. 그러면 문득, 너의 시선이 이 쪽에 꽂히는 것을 느꼈다.
3. 뒤집어진 시계(視界)
나는 무심코 시계를 한 번 쳐다보다 그리고 그를 보고 그의 손목 위에 얹힌 시계를 본다. 가늘고 흰 손목은 늘 아대로 덮여있었으나 요즘은 줄곧 그 시계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언젠가인가 한 번, 그가 내 손목을 무심히 살펴보고는 물었다. 왜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물음이었다. 특무대를 포함해서 격검기동대의 대부분은 손이나 손목에 별다른 악세사리를 착용하지 않는다. 단연 거슬리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빠른 동작을 요하는 긴급상황에서는 몇 그람의 질량이나 몇 세제곱미터의 부피라도 오차를 일으킬 수 있다. 별 이유는 없었다. 어쩌다보니 편리했고 습관이 되어있었다. 그 뿐이라, 솔직하게 그렇게 대답하면 그는 여전히 의아한 눈빛이었지만 물어보기를 그만두었다.
그가 말을 거는 일은 많지 않았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그저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침묵이 깔린 뒤에 그가 나를 불렀다.
"아키야마 씨."
"네?"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대답이 내 귀에 다시 닿기도 전에 그는 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았다. 생각보다 긴 손가락이었다. 닿은 손가락 끝에서 톡, 톡, 하고 작은 맥이 뛰는 게 느껴졌다. 그럴 리는 없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 시계의 초침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문득문득 그 때의 톡, 톡, 하는 소리가 겹쳐지곤 했다. 시계에 관심이 있었던건지, 어떠한건지 어느 날부터인가 그의 손목 위에도 작은 시계 하나가 얹혀지기 시작했다. 안 쪽으로 문자판이 뒤집어진 시계를 그는 작업을 하다 어색하게 쳐다보곤 했다. 팔을 테이블에 얹고 둥그렇게 손을 모아 살짝 손목 안을 들여다보는 내리깐 눈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낯설다. 그가 시계를 내려다 볼 때면 이상하게 그의 시간은 다른 이들의 시간과 똑, 하고 분리되어, 그의 팔 안쪽은 완전히 유리되어 흘렀다. 누구에게나 먼 사람이 전보다도 더 멀리, 아주 멀리 어딘가로 사라진다. 나는 그러면 무소음 속에서 톡, 톡, 하는 그 자그마한 소리를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였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시계의 안쪽은 온전히 그의 세계다. 그는 생각보다 예의 바른 사람이다. 정중하게 손을 그러모으고 경청하여 얘기를 들으며, 그 기민한 머리를 동시에 굴려 가장 최선의 답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와중에 문득, 그 시선이 아래로 내리 꽂히면 순간 그의 모든 감각이 온전히 어딘가로 빨려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혀 차는 소리도, 작은 한숨도 내뱉지 않은 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세계로.
"후시미 씨."
"네?"
나는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찰칵, 하는 들리지 않을 소리와 함께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돌아선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의 세계를 내 손바닥 안으로 가두었다.
"어떻게 알긴. 잠깐 화장실 갔다왔더니 자리는 비어있지, 네 녀석 고백 받는다고 소문 파다하더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12번째 고백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빤히 쳐다보는 기색에 덩달아 물끄러지 쳐다봤더니 멋대로 마음이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는지 고백은 꽤나 당돌하고 뻔뻔했다. 너, 나 좋아하지? 기가 막혀 내려다보면 아니야? 아닌데? 나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허둥지둥 얼굴이 새빨개졌다. 혼자서 횡설수설, 언제부터 뭐 때문에 좋아했다고 얘기도 했던 거 같은데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사 뒷편 주차장에서 혼자 난리치는 여학생을 두고 가기도 뭣해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마디 하고 나왔다. 12번째 고백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사귀는 거야?"
은근히 떠보는 네 얼굴을 내려다본다. 여자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말 한 번 섞어도 전전긍긍하는 너에게 여자친구란 건 애매한 존재겠지. 가만히 내려다보다 반문한다.
"나한테 여자친구가 생기면 어쩔건데?"
"뭐?"
"오케이했으면?"
"하? 너 진짜 사귀냐? 사귀는 거냐?"
"그랬으면?"
"어… 어…… 일단, 축하한다?"
"나 여자친구 생기면 너랑 앞으로 게임센터도 못 가는데."
"야 그건 안되지!"
"당연히 등하교도 같이 못하고."
"그, 그렇게까지?"
"쉬는 시간에 얘기도 못하고 숙제도 걔 먼저 빌려줘야 되고 통화도 걔랑만 할테니 네가 전화해도 맨날 나는 통화중이겠지. 주말에도 데이트해야 되고 돈은 그 쪽에 다 쓰니 나는 너랑 놀 돈도, 시간도 없겠지."
"시시하잖아. 헤어져라."
"그냥 그것 때문이야?"
"그, 그럼 어떻게 해! 네 녀석이 없으면 재미가 없단 말야, 재미가!"
괜시리 발로 가로등을 뻥 차는 뒷통수를 내려다본다. 뚱한 표정에는 불만이 잔뜩 엉겨있어 웃음이 나왔다.
"그럼 만약에 네가 고백받으면 어쩔건데?"
"뭐?"
"네가 고백받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잖아."
"그, 그런 게 있을 리가."
"나도 너한테 그럴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말야."
"야, 말 조심 해라?"
이러니저러니해도 너는 아직까지 제가 한 번도 고백을 받아보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불만이 많은것 같았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올려다보는 꼴에 푹, 웃음을 터뜨리면 미사키는 '뭐야! 왜! 왜 웃냐!' 거리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그들은 안중에도 없다. 미사키의 눈에는 나만 있었다.
"좋아해."
"앙? 무슨 헛소리야."
"아니. 어쨌든 지금은 여자친구 따위보단 네가 좋다고."
"음… 어… 고맙다? 나도 그래. 너랑 노는 게 훨씬 좋아, 사루."
"나야말로 고맙네."
그래. 그러니까 그냥 맨날 둘이 붙어다니자.
단순한 너의 기분은 금세 풀린다. 내 앞을 걸어가는 나보다 한 뼘 작은 뒷통수를 내려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