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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무나후시로 리퀘받았던 거. 어울리지 않게 달달함.
"실장."
"왜요, 후시미 군?"
"전 보고를 하러 왔는데요."
"하세요."
"일단 이 자세부터 어떻게…."
"말은 할 수 있잖아요."
확실히,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상관이야 없지만서도 이 자세는 불편하다. 마무리 된 일을 보고하러 왔더니 무나카타가 이리 오라는 식으로 손짓해 아무 생각없이 다가간 게 화근이었다. 그대로 꽉 끌어안겨서 강제로 제 무릎 위에 앉히더니 끌어안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의 무릎 위에 앉는다는 게 편하지만은 않은 데다 꽉 끌어안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편하게 등을 기댈 수도 없고 몸에서 힘을 뺄 수도 없다. 기절한 사람이 평소보다 더 무거운 것처럼 편하게 앉아버렸다간 무나카타는 후시미의 무게를 온 몸으로 느낄 터였다.
고개를 목덜미에 파묻어 목에 닿는 머리카락과 말을 할 때마다 내뱉는 숨이 간지러워 자꾸만 뒤척이면 팔에 들어간 힘이 강해져 결국 아까보다 더 깊이 품으로 파묻히고 만다. 강하게 끌어안은 품의 단단함을 느끼며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포기한 후시미는 다른 방법으로 무나카타를 회유해 보기로 했다.
"계속 그 상태로 있으면 다리 저릴 텐데."
"후시미 군이 다리가 저릴 정도로 무거워지면 좋겠다는 게 제 소망입니다만."
"지금도 충분히 무거운데요."
"아니. 너무 가볍습니다. 어깨가 딱딱해요. 전혀 푹신푹신하진 않네요."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말한 무나카타가 이마로 꾹꾹 후시미의 어깨를 눌러댄다.
"목베개라도 사다드릴까요."
"아뇨."
"그럼 쿠션?"
"필요없습니다. 후시미 군이 따뜻해요."
"담요라든가."
"제가 안고 싶은 건 후시미 군이에요. 자꾸 뒤척이지 말고 그냥 보고하세요, 후시미 군. 계속 시간 끌었다간 후시미 군이 안겨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보고를 한다고 해도 사람이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거지.
속으로 투덜거려 보지만 무나카타에겐 통할 리가 없다. 손에 든 패드와 서류를 번갈아 들면서 후시미는 나즈막히 보고를 시작했다.
"먼저 정보반에서의 보고입니다. 지난주 도내 범죄 리스트 중 스트레인의 행각으로 의심되는 것이 3건, 동일인물로 추정, 현재 추적 중이며 신상 확보는 내일까지 될 것 같습니다. 절도 수준입니다만 상대의 능력은 시각을 비틀어 보여주는 것 같고……."
"……."
"특무부에의 권한까진 필요 없을 것 같으며……."
"……."
"…듣고 계십니까?"
"듣고…있어요…."
"그럼 다음으로 지난주 특무부 활동내역에 대해서…."
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양은 제법 많았다. 무미건조하게 보고를 읊어대던 후시미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입을 열었다.
"이상입니다. 이제 놔주시죠 실장."
"……."
"실장?"
칼 같이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거늘 집무실 안에 떠도는 것은 후시미의 공허한 메아리 뿐이다. 최대한 흔들림 없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비틀면 무나카타는 여전히 후시미의 어깨에 이마를 얹은 채다.
"실장?"
"……."
"주무십니까?"
"……."
"…레이시?"
"……."
침묵.
정말로 자는 모양이다. 그 무나카타 레이시가 낮잠이라니. 이 남자에게도 월요병 같은 게 있는 걸까. 일어나자니 무나카타의 팔은 여전히 후시미를 끌어안은 채고 깨우자니 미안함이 몰려온다. 그러고보니 평소라면 탁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 보고를 듣고 있을 무나카타가 후시미에게 응석 - 별로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 맞는 단어는 그것 뿐이었다 - 을 부린 것부터가 피곤하다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보고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인지하지 못했으나 의식한 이상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팔을 움직이는 것조차 부자유스러워 후시미는 눈만 꿈벅거리며 하릴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밖에는 햇살이 눈부시고 중후한 느낌의 나무로 된 벽이 손때를 타 부드러운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책상에는 이번주의 최신 잡지. 아마 낱말퍼즐 때문이겠지. 몇 개의 서류와 자주 쓰는 검푸른 색의 만년필. 후시미는 그 만년필을 잡고 글을 쓸 때의 무나카타를 좋아했다. 대부분은 전자기기로 처리하지만 아주 드물게 무나카타가 펜을 잡을 때가 있었다. 유려한 손놀림과 그 끝에서 나오는 조금은 각진, 제 주인을 닮았다 싶은 딱딱하지만 획의 끝이 올라간 글자의 잉크가 가만히 말라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중후하고 묵직한 공간에서 책상 위에 있는 척 봐도 조잡한 플라스틱 인형은 후시미가 길을 가다 산 것이었다. 하늘빛의 고양이 인형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게 무나카타를 닮았다 생각해서 산 것이었으나 이 사무적이고 모든 것이 주인을 닮아 우아한 공간에 있는 것이 이질적이어서 부끄러웠다. 저런 건 그냥 치워버리지. 바둥거리며 손을 뻗어보지만 도저히 닿지 않아 후시미는 포기하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책상의 서랍은 세 개. 그 안에 뭐가 들었는 지는 모르지만 가끔 두 번째 칸에선 사탕이나 화과자 같은 게 나오곤 했다. 세 번째 서랍에는 퍼즐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후시미가 보면 전혀 답이 없는, 질리도록 새파란 색만 가득한 퍼즐을 무나카타는 망설임 없이 맞추곤 했다. 첫 번째 서랍엔 후시미가 그렇듯이 몇 가지 사무용품이 있지 않을까.
천장 구석의 먼지라도 잡아낼 것처럼 주변을 둘러봐도 무나카타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시계바늘이 섬세하고 촘촘하게 음각된 시계를 본다. 11시 42분. 들어온 지 족히 30분은 된 듯 하다. 후시미의 빈 자리를 땡땡이로 오해한 아와시마의 따가운 눈초리와 무미건조한 잔소리가 눈에 보이듯 훤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후시미는 결국 조심스럽게 다른 쪽 팔을 들어 무나카타를 흔들어 깨웠다.
"실장."
"……."
"실장."
"……."
"레이시 씨."
다른 쪽 손으로 끌어안은 무나카타의 손을 포개쥐면 그제서야 조금 잠에 잠긴 노곤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후시…미 군?"
꽤 깊이 잠들었던 모양인지 잠에 눌러붙은 눈꺼풀을 뻑뻑하게 떼어내며 흐린 초점을 잡는 모습이 신선할 지경이다. 흘러내린 안경을 올려주며 후시미는 입을 열었다.
"점심 먹으러 가죠."
"보고는?"
"끝낸 지 15분은 된 것 같은데요. 설마 안 들으셨습니까."
"아……."
후시미가 흘끗 시계를 곁눈질하면 무나카타가 낭패한 얼굴로 자그마하게 탄식한다. 제가 이 상태로 잠들었다는 것 조차 맘에 들지 않는지 보기 드물게 인상을 찡그려 후시미는 속으로 웃으며 다시 한 번 제의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다른 일을 하기에도 뭣하고 일찌감치 점심이라도 먹고 남는 점심 시간에 쉬는 편이 무나카타에게도 좋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점심이나 먹으러 가죠."
"아직 점심시간은 아닙니다만."
"15분 먼저 간다고 누가 뭐라 하진 않아요."
"구내식당이 문을 안 열었습니다."
"밖으로 먹으러 가요."
"그건… 드문 제의네요."
"실장이 그만큼 드문 걸 보게 해줘서 말이죠. 그 전에 보고 끝나면 이거 풀어주신다더니."
쿡쿡 포개쥔 손가락으로 무나카타의 손등을 찌르면 제가 후시미를 그토록 강하게 끌어안고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눈을 깜박거리다 살짝 풀어진 팔에 힘을 넣는다.
"실장? 풀어주셔야죠?"
"레이시."
"아니, 그건…."
"아까는 불러줬잖아요 사루히코."
"…레이시."
"그래도 안 풀어줄 겁니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이러고 있죠. 그리고 후시미 군 말대로 밖에 나가서 점심 먹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아니, 그건 제가 싫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부 점심 먹겠다고 일어나는 시간에 실장과 단 둘이 외출이라니. 등 뒤로 느껴진 따가운 눈초리들이 빤해 후시미는 무나카타를 보챘다.
"지금 먹으러 가요. 배고픈데."
"거짓말."
"진짜인데."
"남들한테 보이기 싫은 거잖아요."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소심하게 꽁해져 며칠은 후시미를 달달 볶아댈테니 - 보통 무나카타는 이럴 때 평균 3일의 야근을 후시미에게 강권했다 - 후시미는 한숨을 푹 내쉬고 한 가지 제안을 내밀었다.
"지금 점심 먹으러 가면 디저트 줄게요."
"사탕은 6살짜리한테나 통하는 수법인데?"
"그런 거 말고."
"그럼? 점심 먹고 차라도 한 잔 드실겁니까?"
"아, 그건 절대 싫고. 그것보다 더 좋은 거."
정좌에 약한 후시미가 질색을 하는 얼굴을 보다 수수께끼 같은 말에 무나카타가 어린 연인을 내려다보면 가볍게, 햇살만큼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뺨에 내려앉는다.
"이런 거."
사탕보다 달고 초콜릿보다 진득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후시미는 나즈막하게 무나카타의 귀에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