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야마는 들뜬 목소리로 무언가 얘기를 했지만 후시미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바삭하게 깨물어지는 페스츄리의 소리가 옆에서 무어라 떠들어대는 목소리보다 더 컸다. 때로 감각은 비현실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끈적하게 입에 엉기는 젤 제형으로 굳은 딸기잼을 녹이고 부순다. 흐물흐물해지다 어느새 달큰하게 들러붙는, 점점 입 안의 내용물이 식도 뒤로 넘어가며 입 안의 소리도 조금씩, 조금씩 옅어진다. 후시미에게 모든 것은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다. 딸기잼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싫은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정도.
"그래."
후시미 사루히코는 살면서 많은 방식들을 체득했다. 그는 적당히 맞장구 쳐주는 기술과 적당히 내용을 흘려듣는 기술도 배웠다. 페스츄리가 부서진다. 책상에 흩어진 얇고 바삭한 조각들을 보다가 후시미는 손바닥으로 쓸었다. 얇은 빵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낙하. 정적인 시간이었다. 나른한 오후였고 허기를 면하게 해줄 빵은 맛있었다. 끈적한 손가락을 혀로 핥는다. 후시미의 시선에는 제 손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키야마의 시선에도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2.
그는 피그말리온이다.
당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쏟아부어 이상의 상대를 만드는 꿈을 꾸는 남자. 그의 피사체는 언제나 미묘한 권태가 느껴졌다. 눈꼬리가 나비처럼 깜박인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매료되어 있었다.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부족했다. 아주 약간, 정이 닿아 깎아내거나 세련되게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부드러운 살갗, 기괴한 소리를 내며 푹, 하고 가슴이 꺼진다. 그는 잠깐 고민한다. 혹시 안도 다듬어야 될 필요가 있을까. 그는 아주 신중하고 완벽한 성격이었다. 아직 소리를 갖지 못한 조각이 속삭였다. 그는 위치를 가늠하고 찔꺽거리는 정을 다시 빼내 올렸다. 망치를 들었다.
3.
발간 혀가 천천히 핥아내린다. 흥건해 뚝뚝 떨어지는 한 덩이의 타액을 보면서도 후시미는 무감했다. 키스는 녹아내린 딸기잼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엉겨붙는 끈적한 단맛. 단 한 번, 상대가 누구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후시미가 자진해서 물은 적 있다.
"사탕 먹어?"
동공이 확대된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빨려 들어갈 것처럼 홍채가 빛났다. 아니. 먹을까?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면서도 후시미의 어깨에 올라가 있던 그의 손이 무의식 중에 주머니를 더듬는다. 네모나게 각져 튀어올라온 옷감을 보며 후시미는 그가 흡연자였음을 기억해냈다.
"아무것도 아냐."
그 날 저녁 후시미는 그의 주머니를 뒤져 한 대의 담배를 태웠다. 속이 회빛의 연기로 차올라 딱딱히 굳어버리는 와중에도 입술을 핥았다. 이 맛이 아닌데. 달작지근한 커피 맛을 느끼면서 후시미는 이대로 그에게 키스해서 제 안을 굳히고 있는 연기를 모두 그의 안으로 토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이 남자는 집요했고 잠이 깬다면 내일 출근조차 못하게 될 확률이 컸다.
후시미는 혀로 손가락을 핥았다. 담뱃진이 배인 손에서 쓴 맛이 난다.
4.
순결한 조각상은 숨을 죽이고 차갑게 굳어있다.
조각가의 키스 한 번으로 영혼이 불어넣어 질 것이다. 그는 그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아무리 피곤한 상태여도 갖은 희열에 들떠 며칠이고 밤을 새서 작업할 수 있었다.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손톱 밑에는 꼭 티끌만하게 거뭇한 무언가가 말라붙어 있었다.
5.
아키야마는 성실한 남자지만 성실하기 때문에 후시미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면서도 후시미는 가끔, 아주 가끔 제가 아키야마와 엮이는 꿈을 꿨다. 욕정은 아니다. 그 꿈은 몽정이 아니라 가위눌림을 가져다 주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사회에 길들여져 있어도 때때로 생존본능에 대한 감은 정확하다. 후시미는 제가 언젠가 아키야마의 손에 죽으리라는 막연한 예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래. 지금같은.
"후시미 씨?"
소름이 오싹, 하고 돋았다. 돌아서던 어깨가 흠칫 굳는다. 그의 모습은 이제 푸른 제복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건물에 몸 담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걸치고 있을 선연한 파랑을. 아키야마는 인상을 찡그려 보다 후시미의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낙하.
6.
"생각해봐요, 후시미 씨. 멋지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는 거요."
"저는 정말 아름다워서 숨이 막혀요."
"계속 함께 있고 싶어요."
꾸득꾸득한 소리를 내며 굳은 혈관들 사이로 새로운 피가 들어간다. 곧 있으면 다시 멈춘 심장이 뛰고 눈이 깜박거리겠지. 그 입술에 키스하면 흰 얼굴은 홍조로 물들고 그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후시미 씨가 그렇게 말해주셔서 저도 겨우 그럴 맘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시간을 오래 끌면 당신이 추잡해지니까."
"눈이 부셔요."
"예뻐요."
"아름다워요."
"더러운 건 다 빼고 깨끗하게 만들어요."
그는 혀로 굳은 손가락을 핥았다. 아주 천천히, 차가운 조각에 조금이라도 온기가 돌 수 있도록.
문득 한기가 돌아 아키야마는 뒤를 돌아본다. 새카만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 했으나 아키야마는 무시했다.
자, 이제.
작업은 막바지였다. 모든 것은 완벽해졌다. 숨을 불어넣으면-
7.
후시미는 키스가 딸기잼 같다고 생각했다. 엉겨붙는 끈적한 단 맛.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싫은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정도. 그런 걸로, 숨을 다시 쉴 리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