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하라 타케루의 사망 소식이 들린 건 새벽이었다. 기숙사는 드물게 북적거렸고 여섯시쯤 되서는 사무직을 포함한 전원이 비상 근무 체제로 돌입했다. 겨울이라 해가 뜨기도 전에 호적과 4분실의 모든 사무실엔 불이 켜졌다.
"죽은 기는 쿠스하라 타케루. 18살. 그기 와 갸 있잖나 갸."
"검은 머리에 적왕 옆에서 샐샐 웃던 애? 좋은 애였는데."
"니 갸랑 아는 사이가? 총 맞고 옥상에 쓰러져있는 걸 처음 발견한 기가 사루라카대."
쿠사나기의 시선이 선글라스 밑에서 스윽 옆으로 움직인다. 야타는 어깨를 움찔했으나 무릎 위에 얹은 주먹을 조금 꽉 쥐었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라니. 방법은 니가 더 잘 알지 않긋냐, 미코토."
"순순히 신고하고 우리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리가 없지만 일단 사건접수하고 사정청취라도 해보는게……."
"쇼헤이랑 사부로타가 갔는디 이미 다 얼로 내뺐디야. 사고 치면 잡아야지. 그거 말고 별 수 있겠나."
"할 수 있겠어, 킹?"
토츠카의 반짝거리는 시선이 연민을 담고 스오우에게로 향한다. 쿠사나기의 시선도, 나머지 특무대원들의 시선도 전부 스오우에게로 향했다. 적왕, 무나카타 레이시의 검이 조금씩 균열을 보이던 게 애저녁의 일이다. 적왕과 그의 클랜즈맨들은 언제나 셉터4의 요주의 대상이었고 언젠가 와야 할 때가 왔다, 는게 쿠사나기의 생각이었지만 그 몫은 어디까지나 스오우의 것이었다.
"지하에 쳐박아 둘 수도 있고, 근이완제를 끊임없이 투입하는 방법도 있고, 이것저것 방법은 많은디."
쿠사나기가 담배에 불을 붙여 빨아들이면 스오우가 코웃음 쳤다.
"그 인간이 잘도 그러겠군."
"그기야 니 결정에 달렸지."
"…알아서 해."
"좋아. 그라믄 일단 오늘 하루 죙일 비상근무체제다. 오늘 안에 무조건 터진다. 순찰 조를 새로 짜서 빈틈 없이 돈다. 전 소대원 강당으로 집합. 정보반은 도쿄 전역의 CCTV로 호무라 행방 확보하고……."
초조해 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해도 무조건 오늘 안에 무나카타 레이시의 행방은 잡힌다. 그 말인즉, 무나카타 레이시의 다모클레스 다운까지 카운트 다운이 얼마 안남았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스오우는 담배를 물었다. 긴 연기가 새벽의 여명으로 사라졌다.
*
딩동-
Who is it!
"피자 배달 왔…"
What?
"Ah… This is a Pizza!"
도묘지는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피자 박스를 꺼내보였다. 찰칵, 문이 열리는 순간 카모는 커다란 펜치를 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이 다음은?"
"담배는 끄고 좀 얘기하면 안돼요?"
후시미는 하등 쓸모없어진 마피아를 툭 걷어차면서 돌아왔다. 토카레프 400정이 감시도 없이 항구 컨테이너에 처박혀 있다니 일본 다 망했다. 별 소득없이 엉망이 된 방 안과 마피아들을 둘러보며 후시미는 무나카타의 앞에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섰다.
"실례."
말로만 실례지 무나카타는 더 깊게 빨았다. 조금 깜깜해졌던 빨간 빛이 다시금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후시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손에서는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죽은 쿠스하라라면 넋살 좋게 무나카타에게 제지의 말을 건내겠지만 후시미는 아직도 무나카타와의 거리를 재는 게 힘들었다. 쿠스하라랑 친한 히다카나 다른 멤버들이면 모를까 후시미는 늘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모든 이들이 그랬지만 쿠스하라는 그 중에서도 유독 껄끄러웠다. 나이도 비슷한데 들러붙긴 오지게 들러붙어서 끼고 싶은 생각은 요만큼도 없는데 쿠스하라는 자꾸만 후시미를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썼고 후시미는 쿠스하라를 피하기 위해 그 배의 노력을 했다.
그런데 왜 내가 먼저 그를 보게 됐을까.
"하세요, 후시미 군."
필터 끝까지 싹싹 재가 되어 사라진 걸 무나카타가 비벼끈다. 후시미가 보기에 무나카타는 쿠스하라를 나름 아꼈다. 쿠스하라는 친화력이 좋았고 총명했고 힘을 다루는 실력도 좋았다. 불꽃의 세기를 제 맘대로 조종할 줄 알았고 온도와 모양도 섬세하게 조절하곤 했다. 아무리 두서없는 갱 집단이 이 호무라라고 하기로서 셉터4에서 넘어온 후시미가 보기엔 겉으로야 제복이지 위계질서라고는 보기 드문 셉터4보다 호무라 쪽이 훨씬 각이 잡혀 있었다. 후시미는 단말기를 보여주면서 무나카타에게 설명했다.
"도쿄 내의 모든 단말기와 TV주파수를 해킹할 준비가 됐습니다. 이 영상을 뿌릴거고…."
"후시미 군이 찍었네요."
"아무도 나서질 않아서요. 다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위협이 안되잖아요."
"그러고보니 후시미 군은 침착하군요."
"뭐…….¨
후시미는 단말기를 든 제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세면대에서 비누로 박박 씻은 손이니 핏자국 따윈 보이지도 않았다. 동요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후시미는 눈물이라곤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 쪽에서 나와서 대치하고 있는 사이에 이 쪽에선 파랑으로 들어가는 모든 영상 정보와 동기화를 시킬 겁니다. 시간이 되면 DB까지 전부 하겠지만 그 쪽도 가만 있지는 않을테니 걸리지 않는 게 급선무겠죠. 타타라 씨는 능력은 별로라도 감이 좋아서요."
"그럼 그 쪽은 후시미 군에게 맡기기로 하죠."
"최대한 시간 끌어주시면 감사할 거 같은데."
"그건 아와시마 군이 할 겁니다."
하긴. 무나카타의 불꽃은 너무 섬세하고 신중한 감이 있었다. 외려 화려하게 놀기엔 가감없이 펑펑 터뜨리는 아와시마 쪽이 적합하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후시미 군."
"무운이 아니라 살인범을 빨리 잡길 빌어야죠."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게 말하며 무나카타는 담배 한 대를 더 문다. 손가락을 딱 마주치면 타오르는 불꽃이 퍽이나 유용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하며 후시미는 뒤를 돌았다. 가능하면 무나카타가 그 쪽에 잡혀있을 동안 살인범을 잡아야 했다. 희미하게 몸 안의 불꽃이 흔들린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곧 꺼질 것처럼.
*
펑-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돌입대가 주춤한다. 발걸음을 한 번 내딛을 때마다 파직거리는 소리는 주체못하는 적왕의 불꽃이었다. 2층에서 내려보는 무나카타의 눈빛은 적의가 가득 찬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퍽 친근하다.
"오랜만이네요, 스오우 미코토."
로비의 전등을 무나카타는 차례대로 툭툭 끊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환영인사처럼 경쾌하게 울려대는 와중에도 스오우는 미동도 없었다.
"오늘은 얌전하군, 무나카타. 눈에 젖어서 불발탄이라도 된건가? 이대로 같이 가주기만 하면 좋겠는데."
"근거는?"
"같이 가면 타타라가 설명해 줄 거다. 아니면, 쿠사나기나."
스오우가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쿠사나기를 곁눈질한다. 에에, 그러니까 적왕 무나카타 레이시 씨, 당신을…… 쿠사나기가 확성기로 성의없게 말하는 사이 무나카타가 2층 로비에서 뛰어내렸다. 쿵-하고 둔중한 울림이 퍼짐과 동시에
"미안하지만."
열기만으로도 살이 익을 거 같은 불꽃이 스오우의 대열 뒤로 터진다.
"우리 중에 불발탄은 하나도 없습니다."
No Blood! No Born! No Ash!
우렁차게도 외치는 호무라의 구호 뒤로 작게 혀 차는 소리에 무나카타는 다 이해한다는 양 끄덕거리며 스오우의 어깨를 툭툭 친다. 폭죽놀이 마냥 펑펑 사방으로 둘러싼 불꽃에도 쿠사나기는 태평하게 '이야, 저 짝 아가씨는 오늘도 힘 하나는 굉장하네, 그쟈?' 같은 말이나 읊어댄다.
호무라는, 모두가 하나의 폭탄이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우아한 얼굴로 무심하게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는 악질 중의 악질이라 때가 되면 언제든 터졌다. 그의 말대로다. 호무라에 불발탄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은 쿠스하라 타케루도. 죽었다면 나머지 멤버들이 그의 몫만큼 터져준다는 얘기였다.
"할 수 없지, 무나카타."
검을 가지고 검을 제압한다. 우리들의 대의에 흐림없이.
그르렁거리는 울림으로 스오우는 사납게 웃었다. 스오우, 발도.
콰- 하고 붉은색과 푸른색의 불꽃이정면으로 맞부딪혀 건물 밖까지 흘러나온다. 커다란 두 개의 검이 창공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