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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푼 군복 포스터 설정으로 K
뭔가 이런 게 써보고 싶었다 개판
"비도 참 더럽게 많이 내리는데 이런 데는 어린 놈 좀 데리고 옵시다, 준장."
"본부에 말입니까?"
"저도 어디 나갈 때는 젖도 못 뗀 애들이 차 끌겠다고 열댓명 씩 달려드는데요. 먹은 짬밥이 얼마인데 제가 차나 끌고 문 열어 주고 우산 받쳐주고 해야 됩니까?"
"그렇습니까? 하지만 대위의 표현을 빌리자면, 짬 덜 찬 애새끼들 데리고 올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런 시기에."
고아하게 미소 짓는 입에서 '짬 덜 찬 애새끼들'이라니. 설마 무나카타의 입에서 그런 표현이 나올 줄은 몰랐던 후시미도 불평불만을 내뱉던 입이 딱 다물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나카타는 후시미의 손에 들린 우산을 받아들고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긴다.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아도 결국 폭우가 쏟아지는 길에도 안전운전 해가면서 그의 말 그대로 문 열어주고 우산도 받쳐준다. 참 번거로운 부관이다.
"그럼 아와시마 대령 데려오면 되잖습니까."
"그녀야말로 나갈 땐 젖 못 뗀 애들이 대위보다 더 달려든답니다. 짬 더 먹으셔야죠."
이렇게까지 나오니 후시미는 또 할 말이 없어진다. 결국 혀 한 번 차고 모자나 고쳐 쓸 무렵에는 본관 앞이었다.
전선에서 전투식량 먹듯 잽싸게 해치워진 대규모 진급식 이후로 후시미는 본부가 처음이었다. 휴전 서류가 휴지 조각 되는 건 순식간이라 수도가 한 번 신나게 털린 뒤 쓸만한 계급들이 모두 죽어 새파랗게 어린 사관생도들이 아무렇게나 계급장을 받고 나간 전쟁이었다. 한 번 나가서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 빈 공간을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1,2계급 특진은 기본이었다. 어찌나 계급이 자주 바뀌었는지 지난주에 하사였던 녀석이 이번주엔 원사였고 이제 막 소위 임관한 녀석을 그 다음 달에 보면 대위이기도 했다.
본래라면 기껏해야 하사나 달고 있어야 할 후시미가 거기에 다이아몬드도 건너 뛰고 꽃을 달고 있거나 마찬가지로 무나카타가 별을 달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반년 동안 서너번쯤 계급이 바뀌게 되면 외우기도 귀찮아 이름으로 부르기 일쑤였다.
적국이 소강상태이긴 해도 종전은 아직 기미도 안 보이는데 전선에 있는 모든 준장 이상을 소집한 걸 보면 무언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이전 중역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현재는 모든 군을 통솔하고 있는 고쿠죠지가 지병 악화로 드러누웠다는 소문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무나카타가 다가오자 한층 긴장한 헌병들한테 한 번 웃어주고 후시미는 비에 젖은 우산을 던졌다.
"이거 나 다시 나올 때까지 니 앞에 딱 펴놓고 말려 놓고 있어라. 누가 뭐라 그러면 무나카타 준장이 시켰다고 그래."
"충성! 알겠습니다!"
"우리 말고 누구 왔냐?"
"오늘 출입하신 분들은 말할 수 없습니다!"
"뻣뻣하게 굴지 말고. 어차피 올 사람 다 아는데."
"내 왔다. 내. 하이고, 우리 사루 많이 컸네. 아들한테 우산 던지는 버릇은 어디서 들었노? 니 원래 여기 있으려면 지하에 처박혀 있어야 카는 거 알제?"
보기 좋게 일그러진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시미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긴 팔이 걸쳐진다. 뒤에서 담배 한 대 피고 왔는지 반쯤 젖은 소매 끝에선 알싸한 담배 냄새가 났다.
"사루야. 인사해야제. 니 옛날 상사 아이가."
"인사는 이 쪽에 먼저 하셔야죠, 쿠사나기 대령."
"어이쿠, 무나카타 준장도 거기 있었습니까? 오랜만이시네예."
"오랜만입니다."
"야 잘 써먹고 있습니꺼? 전선에서 이탈한 아를 용케도 써먹네."
"후시미 군은 우수한 인력입니다. 탈영으로 썩히긴 아까운 인재죠. 그 쪽처럼 무식하게 일단 돌격하고 보는 여단에서는 영 빛을 못 발할 인재이기도 하고요."
"하하. 고로코롬 얘기하시면 이 짝도 좀 섭섭한데. 앞에 다 뚫어주고 편한 길 만들어주는 게 누군데 그라시면 안되지예."
"퇴역신청서 쓰시면 되는걸. 그나저나 대령이 여기 왔으면 스오우도 왔단 얘기군요."
"계집애처럼 보채지 마라, 무나카타."
"저런. 기왕이면 얼굴 보고 싶지 않아서 물은 겁니다."
다들 양반은 못되지. 무나카타와 후시미가 뒤를 돌면 제복 셔츠를 반쯤 풀어헤친 스오우가 어느 새 다가와 있었다. 왼팔에는 붉은 완장, 가슴에는 무공훈장이 종류별로 두 개나 달려있다. 스오우 미코토가 이끄는 속칭 호무라는 무조건 무력으로 밀어붙이는 최전선 돌격 여단이다. 반면 후시미가 소속된 무나카타의 여단은 기본적으로 치밀하고 신중한 작전에 따라 움직이는 엘리트 정예 부대로 이전부터 작전 방향에 관해서는 충돌이 잦았다. 더불어 사관학교 동기라는 지휘관 둘의 상성은 극도로 맞지 않아 그럴싸한 계급장 달고 있는 이들 중엔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무나카타의 얼굴이 서늘하게 비소를 띄우나 스오우는 머리 한 번 쓸어올리고는 그 뿐이다.
"어차피 들어가면 볼 건데."
"그 때까지 피하고 싶어서요."
"왜? 뒤가 젖나?"
"더러운 말 하지 마시죠, 스오우. 귀가 썩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 얘기 아닙니까?"
"자자, 둘이 흘레붙든 뭘하든 관심은 없는데 때와 장소는 가려가면서 캐야지, 아들 밍구스러워 안 카나."
쿠사나기가 박수를 치며 가볍게 환기하면 그제야 둘은 입을 다문다. 애써 어색한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헌병들을 뒤로 한 채 넷은 입구에 도착한 지 10분 만에 겨우 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복도에는 군화소리만이 울렸다.
*
"그럼 그렇지. 날 여기 왜 데려오나 했네."
"좋아할 줄 알았는데요."
"어떤 미친 놈이 적국에 목 들이밀고 가는 걸 좋아합니까? 돌았어? 미리 말도 안 해놓고 '그건 후시미 대위가 할 겁니다.' 라고 말하면, 어? 회의실 사람들 다 나만 쳐다보잖아."
"하지만 하겠다고 했잖아요?"
"그럼 거기서 안한다고 뻗대요? 쿠사나기 씨가 퍽이나 좋아하겠네. 아까 얘기 하는 거 못 들었어요? 나 영창 못 보내서 아쉽대잖아."
"일단 나가서 얘기합시다, 후시미 군."
"아, 내 말 아직 안 끝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코쿠죠지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모두 침묵을 고수하는 가운데 입을 연 건 코쿠죠지의 대리라며 나타난 남자였다. 키는 후시미보다도 작았고 얼굴은 훨씬 앳됐으나 하대는 거리낌이 없어 동안인 건지 어린 건지 후시미는 종잡을 수 없었다. 군 전체를 통틀어 중앙 본부에 출입하는 이들 얼굴은 웬만하면 외웠다고 생각하는 데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사나 야시로라고 합니다."
어깨의 금장에 별이 세 개. 무나카타나 스오우보다도 두 계급이 높았고 공식적으로는 단 한명도 없는 자리였다. 심각한 계급 인플레이션을 겪는 와중에도 코쿠죠지는 그 자리를 비워 놓았었다. 군권의 독재인가 싶으면서도 모두 전선에 나가니 쿠데타를 일으킬 여력은 없었다. 모두 그의 존재를 몰라 당황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혹자는 허리의 홀스터에 손을 얹기도 했으나 이사나는 한 번 웃고는 말을 이었다.
"제 신원은 나중에 확인하시고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코쿠죠지 대장은 현재 중태이며 군 내부에 첩자가 있어 이를 물색하기 위해 여러분을 모두 불렀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냥 설명이었을 뿐이다. 이미 얘기는 모두 되어 있었던 듯 이사나는 일사천리로 설명했고 무나카타가 그 다음을 이었다. 내부에 첩자가 있다, 몇 몇을 잡긴 했지만 철저하게 머리는 함구한다, 적국의 목적이 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쪽에서도 보낸다, 기타등등 이라는 말을 한 귀로 열심히 흘려듣고 있던 후시미는 무나카타의 청산유수 끝에서 제 이름을 들은 것이다.
아 진짜! 버럭 소리를 질러대도 무나카타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보란듯이 쿵쿵대는 소리를 내면서 후시미가 막 무나카타를 쫓아 문을 나서는 때였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대기가 짓눌렸다.
"이건 또 뭐야!"
반사적으로 후시미가 무나카타의 앞을 감싸고 주변을 살펴보면 주차장 쪽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꽃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모든 사이렌이 왱왱거리면서 깜박거린다. 1급 경계 경보, 1급 경계 경보를 발령합니다. 사병들은 관내 모든 출입구를 통제하고 신속하게 위치로…….
"화려하네요."
"지금 태평하게 불꽃놀이 감상할 때입니까. 야, 여기 우산 계속 있었냐?"
순식간에 분주해진 주변과는 달리 무나카타는 여유로운 말투였다. 한 대 쥐어 패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후시미는 우산부터 찾았다.
"후시미 군도 만만치 않은데요."
"같은 선상에 두시면 곤란하죠. 이번에 개발부에서 쓸만한 걸 만들어서."
그렇게 말하고는 후시미는 우산의 손잡이를 빠르게 두 번 눌렀다. 딸깍- 하고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우산 손잡이가 분리된다.
"자동 녹화 장치를 만들었거든요, 걔네가."
분리된 손잡이 안에서 나온 건 자그마한 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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