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오우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들은 것은 나즈막한, 탄식이라곤 눈꼽만큼도 섞여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무나카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탄내 나."
"본인이 태우셨으니 이 정도는 감당하셔야죠."
방 안에 감도는 매캐한 탄내는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눈에 익은 광경이기도 했다. 제어를 모르고 멋대로 날뛰는 불꽃에 처음엔 눈살을 찌푸렸던 무나카타도 익숙해졌는지 까맣게 탄 부스러기들을 발로 쭉 밀어내고는 어느 새 다시 가지런히 챙겨입은 제복을 툭툭 털며 말을 이었다.
"청구서는 호무라 앞으로 달아놓고 가죠."
"그럴 돈 없는데."
"제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싸구려 여관이니 보상비도 얼마 안 나올겁니다."
"어이, 무나카타. 이런 데일수록 더 악독하게 뜯어먹어."
"제 알 바 아닙니다."
"얘가 이유없이 이러진 않았겠지."
스오우는, 그러니까 깨어있을 때도 주변이라곤 요만큼도 신경쓰지 않으니 잠들어 있을 때라고 잠귀가 좋을 리도 없었다. 길거리 한복판이라도 피곤한 상태라면 엎어져 잘 수 있는 무신경한 사람이고 거기에 대해 불만을 가져 본 적도 없었지만 그를 선택한 불꽃은 그게 퍽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간간히 스오우가 잠자고 있을 때 과민한 반응으로 이런 사고를 치곤 했다.
손 끝으로 불꽃을 피워 무나카타의 앞에 슬몃 들이대면 무나카타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더니 반문한다.
"아무거나 신경질적으로 태워대는 불꽃을 가진 게 자랑이십니까?"
"세기 조절은 잘 안돼도 방향은 제대로 잡는 애라."
머리맡에 올려뒀던 담배를 꺼내 물고 한 대 권유하면 무나카타는 고개를 저어 거절한다. 시시한 이유다. 출근하기 전이니 담배냄새가 배는 건 싫다는 그런. 무나카타는 제 몸에 다른 사람의 어떤 흔적이 남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안경에 지문, 제복에 달라붙은 싸구려 시트의 실먼지, 진득한 담배냄새, 그 어떤 정사의 흔적도. 서로를 완벽하게 거절하는 정사가 어떻게 성사되는 지는 스오우 미코토에게도 의문이었으나 어떻게든 굴러가긴 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적당히 스케쥴을 맞춰서 장소를 바꿔가면서 만나는. 이상한 술래잡기 같기도 하고 둘만의 밀회 같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지만 극과 극으로 갈려있다고 생각해도 확실히 맞는 부분은 있었다.
담뱃재를 털며 뻐근한 어깨에 손을 올려 주무르면 따끔한 통증이 목덜미에서 느껴진다. 손으로 더듬어 보면 거친 피부에 쓸려 욱씬거리는 화끈함이 훅 하고 몰려온다. 손가락에 묻어나는 찐득함은 엷게 흘러나온 뭉그러진 핏줄기의 흔적이었다.
황당하다는 눈으로 무나카타를 응시하면 무나카타가 제법 맘에 든다는 얼굴로 웃으며 스오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글쎄요. 당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어서 숨통을 끊어줄까 하는 생각은 했지."
"…하?"
"그래서 물어뜯었습니다. 포유류긴 하나 육식동물은 아니라 맛은 없어서 그만뒀지만. 무방비하더군요. 제대로 드러난 약점 중 하나인데."
"너답지 않군."
"어느 쪽이?"
"너라면 좀 더 깔끔한 방법일 줄 알았는데."
"때 되면 그렇게 하겠죠. 어차피 제가 사자나 호랑이도 아니고 진짜로 목덜미를 물어뜯는다고 죽을 리가 없잖습니까. 다만 그 쯤 되면 정신차릴까, 하고."
"방향은 잘못되지 않았어."
"압니다. 세기를 조절하지 못할 뿐이지. 그 조절을 왜 제가 해야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겠죠."
"안해도 돼."
다모클레스의 검이 내려앉으면 일어나는 폭발, 질서를 어그러뜨리는 이변을 막겠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관계가 이어질 리는 없었다. 허리에 단정하게 걸려있는 푸른 검이 언젠가 때가 되면 어련히 자신을 관통하지 않을까, 스오우는 무나카타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검을 닮은 남자는, 아니 검이 남자를 닮은 건지 모르겠지만 무나카타 레이시는 잘 벼려진 그의 샤벨과 꼭 닮았다. 그렇다면 어련히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자신을 끝장내 버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지지부진한, 의미없는 관계는 어째서 지속되는 걸까.
"스오우. 불행히도, 저는 당신이 죽기를 원하진 않습니다. 모든 것을 제외하면 그저 당신도 평범한 사람이죠. 저는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이 죽는 것을 염원하는, 악의에 가득 차서 세상을 비뚤게 쳐다보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런 것 말고."
"……?"
"너에게서도 모든 것을 제외해 봐."
"그 쪽은 상상력이 떨어져서 못하겠는데. 이만 가보겠습니다. 슬슬 해도 뜰 것 같고 출근하기 전에 집에 들러야 되거든요."
무나카타 레이시의 머리는 참 좋은데 단점은 그 머리를 백퍼 활용해서 아주 빙빙 돌려 말한다는 뜻이었다. 다 핀 담뱃재를 재떨이에 지져누르고 욱씬거리는 목덜미를 붙잡으며 스오우는 돌아서는 무나카타의 손목을 낚아채 들어올렸다. 제아무리 꽁꽁 싸맸어도 자연히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긴 팔의 끝, 희게 드러난 손목엔 푸르고 보랏빛인 핏줄이 가지처럼 뻗어 맥을 잇고 있었다. 뼈의 모양이 슬쩍 드러난 손목의 모양이 새삼스레 신기한 것을 보는 듯 하여 잠시 멈칫했지만 스오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콰득, 송곳니로 힘껏 찍어 누르면 살갗이 찢겨 붉은 피가 고여 들어온다. 슬쩍 시선을 올려다보면 통증 이전에 황당함이 뒤섞인 눈동자가 스오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좋은 표정이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무나카타 레이시의 철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은 언제나 괜찮은 낙이었다.
"…뭐하는 짓입니까?
"손목도 무방비한 약점 중 하나니까."
"압니다. 그래서?"
"너도 죽지 말라고, 무나카타."
간단히 말하며 입에 고인 피를 뱉을까 어쩔까 고민하다 삼켜버리면 남자는 질색하는 눈으로 쳐다보고는 쾅- 문을 닫고 나간다.
쓸데없는 짓이란 걸 안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스오우 미코토의 생각만큼 약하지 않고, 스오우 미코토는 무나카타 레이시의 생각만큼 약하지 않다. 약점이 보이는 것은 오로지 서로의 시야 안에서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머리 좋은 무나카타가 그걸 모를 리 없는데.
"거친 배려구만."
잠시 잊고 있던 화끈거림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스오우도 슬슬 일어날 준비를 했다. 통증은 금새 사라지겠지만 빨리 아물기를 원치는 않았다. 그 목덜미를 드러내는 것은 오로지 무나카타 레이시의 앞에서만 이었고, 무나카타 레이시의 손목이 드러나는 것도 오로지 스오우 미코토의 앞에서만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