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2기가 화려한 석판 폭발로 마무리 된 마당에 새삼스럽게 예전에 펑크낸 책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2014년 우타케이 때 냈던 적청 'pseudo code' 내용의 약 반 세기 이후. 무나후시 역키잡, 후시미가 무나카타를 키우고 현 시점에선 고등학생x24살(?) 정도 됩니다.
아직 설정이나 스토리가 정리가 안됐지만 꼭 올해 안에는 제대로 써보고 싶어서...뒤를 잇게 된다면 카테고리를 옮겨갈 수 있겠죠.
일단은 아주 짤막한 프롤로그. 당연하지만 설정이 설정이라 말투 등 여러 면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캐붕주의.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길었던 교복소매가 한 번 계절이 바뀌자마자 꼭 맞게 변했다. 긴 소매의 단추를 잠그면서 무나카타 레이시는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또래에 비하면 충분히 큰 키였다. 더 이상 크지는 않을 거라고, 언젠가 무나카타는 거울 너머로 눈을 맞추며 말했으나 그는 단호했다. 상대의 눈높이는 원근감을 감안해도 무나카타와 비슷했다.
조만간 못 입게 될 걸.
눈동자가 무나카타를 무감하게 한 번 훑고 가더니 점원에게 한 사이즈 더 큰 것을 요청했다. 무나카타는 부득불 지금의 사이즈를 고집해보려다 말았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살면서 무언가를 그토록 원하거나 갈망한 적 없었다. 간혹 불이 붙곤 하는 쓸데없는 오기는 전자레인지로 데운 우유보다도 빠르게 식었다.
무엇보다, 그는 무나카타의 취향과 성장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때로 무나카타는 저의 생장이 먼저인지 그의 말이 먼저인지 의심스러웠다. 그의 말은 예언처럼 무나카타 레이시를 만들어갔고 그래서 무나카타는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예전엔 다른 아이들처럼 빨리 자라고 싶었다. 지금의 그는 무나카타가 무엇을 하든 내버려 두었고 어떻게 보면 무관심과도 비슷했지만, 희미한 무나카타의 기억 속에서 한 때 그는 정말 무나카타가 무얼 하겠다고 말만 해도, 매순간마다 심장이 떨어질 듯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어린 무나카타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제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키도 크고, 손도 크고, 쉽게 넘어지지도 않고, 고작 강풍이 분다고 해서 날아가지도 않는 그런 어른.
무나카타가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 그는 한시름 놓은 듯 했으나 때때로 그의 눈에선 여전히 무나카타가 감지할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다. 무나카타와 관련된 확정적인 미래형의 문장들은 무나카타가 아니라 반대로 그를 옭아매고 있는 듯 했다. 그리하여 무나카타는 그의 이유없는 불안, 이유없는 확신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고 싶었다.
열두살이 된 이후부턴 키가 1년에 10cm씩 컸다. 무나카타는 남들이 성적표를 받고 좌절하는 만큼, 성장기록부를 보며 좌절했다. 키 크지 않는 법을 검색했다. 나올 리가 없었다. 반대로 키 크는 법을 검색했다. 성장호르몬이 활발하게 분비되는 10시부터 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우유는 마시지 않았다.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은 무나카타는 본디 밤잠이 없었기 때문이고, 우유는 그가 좋아하지 않아 냉장고에 있던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키는 이대로 멈출까.
꼭 맞게 떨어지는 소매를 보며 무나카타 레이시는 생각한다. 작아질 수는 없으니 더 커지면 되겠지만, 길이가 딱 맞게 된 교복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은 크지도 않을 것 같다. 상념을 떨쳐내고 무나카타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소매에 의식이 묶여 있던 시간은 의외로 길었는지 시간은 평소보다 5분쯤 늦어 있었다. 무나카타는 프라이팬에 버터를 바르고 빵을 굽는다. 어린애처럼 야채는 입에도 대지 않는 남자를 생각하며 샐러드는 조금만, 서니업사이드 하나와 제가 먹을 완숙프라이 하나, 우유 대신 오렌지주스를 각각의 잔에 따르고 무나카타는 방문 앞에 선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 일단은 그런 관계일터인데, 죽어도 그 말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긴장하고, 망설이고, 문을 두드리고, 열고, 무나카타는 컴컴한 방의 커튼을 걷으며 말한다.
"후시미 씨."
그를 그렇게 칭할 때마다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무나카타는 다른 대체어를 찾지 못하고 매일 그렇게 부른다.
싫은 건 아니었다. 가족의 정이라기엔 뭔가 탐탁치 않지만 그는 무나카타를 키워주었고 여전히 함께 살고 있었다. 살가운 대화가 오가는 건 아니지만 그가 무나카타에게 신경을 쓰는 것도 분명했다. 무엇보다 무나카타는.
"일어나세요, 후시미 씨."
청량한 가을의 아침햇살 밑에서 얇은 눈꺼풀이 들어올려진다. 엷은 회색의 홍채는 햇살 속에선 가끔 엷은 파랑으로 빛나곤 했다. 제 목소리에 응해 일어나, 잠에서 덜 깬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저를 응시하는 것이
쿠시나 안나는 가끔 꿈을 꾸었다. 온 사방이 화려하게 빛나는 꿈이었다. 안나는 이 꿈 얘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색 밖에 볼 수 없는 제가 눈이 부실 정도로 색으로 가득 찬 꿈을 꾸었다면 그것은 불길한 얘기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온 사방을 둘러보아도 전부 새빨갛게 타오르는데 개중에서도 창공에 있는 거대한 것이 가장 화려했다. 안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다모클레스의 검, 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안나의 것이 아니었다. 이미 죽은 남자의 것이었다. …미코토. 조용히 읊조리면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주변을 두리번대면 저 먼 곳에 미코토가 있었다. 안나. 하고 이름을 부른다. 그 목소리는 입 안에서 도르륵 구르는 사탕 같았다. 쿠사나기가 안나를 위해 바 구석에 둔 커다란 유리병 안엔 새빨간 체리맛 사탕이 언제나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썩으니까 하루에 하나씩만.
안나는 쿠사나기의 그 말을 꼭꼭 지켰지만 가끔은 두 개가 먹고 싶은 날이 있었다. 달콤한 빨간색이 녹아 입 안에 흥건히 고이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상황이었다. 그렇다. 이 꿈은 안나에겐 사탕이 잔뜩 담긴 유리병이다. 황홀하고 아름다운, 달콤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되는 거지."
"안되는 겁니다."
하나는 토마토 쥬스. 하나는 차다. 새빨갛지만 안나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히비스커스 티 하나요.
메뉴판을 보며 무심코 다른 이름을 말하려던 남자는 문득 안나를 보고 다시 한 번 메뉴판을 보더니 똑똑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레드벨벳 케이크 하나.
이건 이 사람의 배려일까. 안나는 문득 생각해본다. 최근엔 이 남자를 꽤 자주 만나게 되었다. 청의 왕, 무나카타 레이시라고 한다. 먼 발치에서, 미코토의 뒤에 숨어서만 봤던 남자와 나란히 앉아 애기를 하는 이 상황이 가끔 낯설어 안나는 빨간 구두가 신겨진 발을 이리저리 까딱이곤 했다. 편하기로 치자면 당연히 쿠사나기나 미사키나 다른 호무라의 일원이 훨씬 편했지만 때로는 전혀 친하지 않고, 그러나 안나의 상황을 알고, 동시에 안나에게 들은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당신은 똑똑합니다."
무나카타는 얼음이 담긴 새빨간 유리잔을 들어 마시며 말했다.
"스오우 미코토가 당신만큼 똑똑했으면 좋았을텐데요."
"……."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멍청한 사람이었습니다."
"……."
"무모하고, 저돌적이고, 생각이란 건 조금도 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살다가, 그대로 멍청한 결말을 맞이했죠."
"…미코토는, 멍청하지 않아."
"그럼 바보인 걸로."
"바보 같지도 않아."
"바보입니다."
"바보 아냐."
"ㅂ…그래요. 그냥 그렇다 칩시다."
안나의 단호함에 무나카타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차를 마신다. 안나는 포크로 새빨간 케이크를 잘라 먹는다. 다리는 정처 없이 흔들리고, 치맛단의 빨간 프릴은 박자에 맞춰 나풀거린다. 침묵은 길었다. 토마토 쥬스와 케이크는 그렇게 좋은 조합은 아니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시키지 말아야지. 안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머리 위가 가벼운 건 이상한 느낌이에요."
탄식처럼 흘러나온 감상에 안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도 때때로 어깨가 너무 가벼워 확인하려는 것처럼 머리 위를 올려다보곤 했다. 눈 앞의 남자는 안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그 검을 머리 위에 이고 있었고 그 무게를 평생 짊어져야 할 업처럼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미코토처럼.
"스오우는 이걸 모르겠죠."
"…응."
일직선으로 빳빳하게 서있던 어깨가 조금 느슨해진다. 무나카타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반사된 오렌지빛 석양이 실내로 가득 들어와 남자의 실루엣도 옅은 빨강으로 물들어간다.
"나는, 미코토가 바보였어도 좋아."
"바보가 아니라면서요?"
"레이시도 좋아했지?"
무나카타의 시선이 안나에게로 돌아와 멈춘다. 긴 속눈썹이 투명한 안경 너머로 파르르 떨리며 깜박이는 것을 안나는 지켜보았다. 말없이 무나카타는 잔을 감싸쥐었다가 단번에 비운다. 새빨간 색이 사라졌다. 그것은 전부 무나카타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 마침내 온 몸으로 퍼질 빨강을 안나는 상상해본다. 미코토가 남긴 색은 그의 몸 안에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당신이 꾸는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응."
"그 꿈은 그냥 스오우 미코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안나의 말에 못마땅한듯 무나카타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일어나보겠습니다.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후시미 군이 잔소리를 할 거 같군요."
"…미코토는."
무나카타의 곧은 등을 보며 안나는 입을 열었다.
"미코토는, 레이시도, 분명 받았을 거야, 선물."
"글쎄요. 저희는 선물을 주고받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가 아닌지라."
그 말을 끝으로 무나카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탁 트인 유리창 밖으로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무나카타의 뒷모습이 보인다. 능력을 잃었어도 쿠시나 안나는 여전히 남을 읽어내는데 탁월하다. 우기긴 했지만 그의 말대로 미코토는 바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미코토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마 그것 뿐이었겠지. 안나는 무나카타의 흰 오른손에 묻은 새빨간 핏자국을 본다.
화려한 꿈 속에서도 미코토는 저 먼 곳에 있었다. 안나의 이름을 부르지만, 결코 다리가 닿지 않는 먼 곳에. 한참을 달리고 달려도 닿지 않는다. 간신히 얼굴이라도 보이려는 순간이 되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한다. 미코토의 옆에 있는 건, 언제나 흰 손을 가진 그 남자였다.
다른 거 쓰려고 갔다가 무심코 목록을 봤는데 이런 것도 있길래. 이 조합도 좋아합니다. 코쿠죠지 오른쪽...
사실 배경만 아니었다면 이 조합이 관계성은 최고 취향...이었을텐데......
행복은 가깝고도 먼 곳에.
이상은 멀고도 가까운 곳에.
"하늘 위에 있으면 중력이 조금이라도 덜 작용할 줄 알았어."
"멍청한 말을."
"그러니까."
한소리 들을 줄 알면서도 바이스만은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모르긴 몰라도 중위는 분명 가정교육이 엄격한, 좋은 집에서 자랐을 것이다. 자야할 곳에서 자지 않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고 아무데나 드러눕지도 않았다. 잠자리를 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는 군인이었고 그 때는 숨을 쉬는 1초가 모두 전시였으니 그는 폭격맞은 산 어딘가에서도 침낭 없이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알았다는 얘기다. 적어도 바이스만처럼 돌바닥에 앉아 수식을 건드리다 그대로 누워자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제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고 잤고, 부득이한 경우엔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로 조는 것도 본 적 없다. 자세는 흐트러진 적 없고 다리를 꼬거나 경박한 말투를 구사한 적도 없다. 도이치 발음은 외국인치고도 훨씬 좋은 편이었다. 바이스만이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데는 무한하기까지한 시간의 도움이 있었으나 서른이 되지 않았던 그에겐 재능이었을 것이다.
하늘 위에서 매일같이 해가 뜨고 지는 것만 보고 있다 보면 감각이 둔해진다. 살아있으되 반쯤은 죽어있었다. 무기력은 아돌프 K 바이스만을 정물처럼 만들었고 이런저런 일들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대로 비행선의 일부가 되어 도시전설로만 남았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거울 속의 얼굴에도 익숙해졌고 - 예전보다 훨씬 어린 얼굴이라는 게 여전히 미묘했지만 - 노출에 거리낌 없는 고양이 아가씨와 고지식한 소년은 그리울 지경이었다. 시로라는 이름도 좋았다. 학교에 처음 가보는 어린애처럼, 첫 직장에 처음 출근하는 신입사원처럼 묘하게 달라진 기분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아니 정확히는 그게 맞지. '아돌프 K 바이스만'은 사체로만 남았다.
"중위는 알고 있었어?"
"미래를 예견하는 건 아닐세."
"하지만 알고는 있었지?"
"알았지."
"알려주지 그랬어. 그럼 내려와서 중위랑 좀 더 많이 놀 수도 있었을 텐데."
소파에서 몸을 뒤척거리다 코쿠죠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처구니 없다는 시선이 고스란히 내리꽂힌다. 으음… 중위? 베시시 웃으면서 쳐다보면 한숨소리만 들렸다.
"네 녀석이 내려왔으면 이 나이까지 네 뒤치닥거리만 했을 거다. 시간 아까운 얘기지."
"매정하네……. 그런 점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너도 마찬가지다. 앞뒤 생각 안하고 달려들기만 하는 사고뭉치."
"우리 누나도 나한테 사고뭉치라고 한 적 없는데!"
"했어."
"뭐? 언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우리 애가 좀 사고뭉치라서 죄송해요'."
"그건 농담이지! 중위는 융통성이 없으니까!"
"아니, 그 경우엔 진담이었다."
칼같이 단언하고 차가 맘에 든다는 둥하는 꼴이 영 못마땅해 바이스만은 순간 여기서 코쿠죠지를 내쫓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비행선을 재건시킨 것도 중위, 몸을 재생할 때까지 도와준 것도 중위, 애초에 이 상공에서 머물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중위란 사실이 바이스만의 마지막 양심을 무겁게 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본다. 뻣뻣한 검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대충 뒤로 넘겨묶고, 먼지를 잔뜩 먹은 낡은 군복에 아시안치고는 훤칠한 키를 가졌던 이십대의 무뚝뚝한 남자는 없다. 대신 하얗게 센 머리와 쭈글쭈글한 피부, 그럼에도 여전히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노인이었다.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바이스만."
"…뭘."
"운명이야."
"이것도 알고 있었어?"
"알았지."
"……"
"아쉬워 하지 마. 나는 지난 생에 한 점의 후회도 없어. 자네와 더 많이 대화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있을 수 있었지만 그건 자네의 뜻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자네는 쓸데없이 낙관적이었어. 행복이고 이상이고 아무 근거도 없이 잘될 거라고 믿기만 하는 게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 현실은 그렇게 맘 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 자네답지 않더군.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상도, 꿈도 전부 내가 해치워버리겠다고. 이 정도면 그 수준은 됐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황금의 왕. 운명을 내다보고 재능을 꽃피워 적합한 곳에 적합한 인재를 등용한다. 모든 힘의 균형이 맞도록,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공명정대한 이상을 위해 코쿠죠지가 바친 것은 비행선 위의 바이스만에게도 보였다.
낙관적이지 않은 자네는 이상해.
마지막 찻잔을 비우며 코쿠죠지는 어색하게 웃었다. 미소 짓는 게 익숙치 않은 남자는 오른쪽 입꼬리가 뻣뻣하게 굳어 왼쪽 입꼬리가 더 올라가 비웃음처럼 보이는 게 특징이었다. 서툰 위로에 덩달아 쑥스러워진 바이스만은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니야, 잘했어."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에도 용케 알아들은건지 그럼 됐지. 하고 만족스럽게 답한다. 시간도 생도 유한하다는 사실을 안다. 이런 몸이 되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가련한 누이는 아돌프가 머무르고 코쿠죠지가 두고 온 시간 속에서만 살았다. 곧 있으면 중위도 과거에만 남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제 운명을 모두 보고 그 종착지에서 걸음을 멈추고 쉴 것이다.
이 힘을 이용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야.
그 말을 했을 때, 코쿠죠지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던 게 바이스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Freude. 즐거운 것엔 많은 게 필요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명확하게 무어라고 답할 수는 없었던 바이스만 대신 코쿠죠지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이상적인 왕과 행복의 방법에 대하여.
제가 그저 정물로 하늘에 머무르기만 하는 동안 중위는 제가 내팽개친 것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잘했어, 중위.
응.
아주 잘.
응.
이젠 내 차례네.
글쎄.
어깨에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다. 어색하게 얹어진 손바닥. 그 또한 서툰 남자의 위로방식이다.
"행복해지기만 하면 되지."
시간은 똑같이 흘렀는데도 늙지 않는다는 건 사고에도 영향을 주는 걸까. 같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저는 여즉 어린애인데 중위는 새삼 훨씬 어른스럽게 보인다.
낯선 깨달음에 감탄하면서 바이스만은 줄곧 그 날 하려던 질문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종종 생각나기도 했지만 묻지 않았던 건 물으나마나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중위는 행복했어?"
문득 물어보면 대답은 없다. 영원히 목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여전히 굳은 오른쪽 입꼬리를 바이스만은 가볍게 밀어올렸다. 처음으로 중위의 얼굴에 그럴듯한 미소가 생겼다.
난데없는 쿠사나기의 말에 스오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상대를 바라본다. 니가 방금 바다라 캤다 안카나? 쿠사나기의 눈동자가 선글라스 밑에서 가늘게 접혔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님 말고. 말갛게 닦인 글라스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쿠사나기를 뒤로 하고 스오우는 창 밖을 바라본다. 밖에는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다. 말을 했다는 기억은 없지만 쿠사나기가 그랬다면 그럴 것이다. 짐작가는 바는 있었다. 뿌옇게 오르는 연기, 진눈깨비가 되지 못한 비.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스오우 미코토가 아는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바다가 내리는 걸 본다고.
에둘러 말하는 데에는 재주가 없고 문학적 소양은 극히 없는 스오우에겐 무엇을 어떻게 비유하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반대로 무나카타는 쉬운 말도 빙빙 돌려서 하는 세치 혀를 갖고 있었으니 - 이를테면 섹스하러 가자는 말을 5분 간의 의미없는 트집 끝에 당신 때문에 기분 잡쳤으니 기분 전환 해야 겠다는 식이다 - 뭔가 숨겨진 뜻이야 있겠지만 스오우는 간단하게 미쳤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긴. 아무래도 정상적인 세계는 아니지.
보이지 않는 검을 생각하며 스오우는 새 담배에 불을 댕기고 일어났다.
"니 으데 가노? 비도 오는데."
"네 술이 질려, 쿠사나기."
"하. 내가 은제 와 나가냐고 물어봤나. 섭한 소리 말고 썩 끄져라. 우산 들고 가고."
"필요 없어."
어지간히 섭섭한 말이었는지 뒤에서 이죽이는 쿠사나기를 뒤로 하고 스오우는 밖으로 나섰다. 우산이 필요없다는 말은 스오우의 허세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검이 부여한 것들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한다. 별 의문도 갖지 않았던 스오우에게 무나카타는 장황하게 그 원리에 대해 설명했지만 애초에 석판이 사람에게 초능력을 주는 것이 과학과 논리로 설명되는 일이던가. 어깨에 닿기도 전에 기화하여 사라지는 물방울들을 바라보며 스오우는 어쩔 수 없이 무나카타를 생각한다.
심심함이 도를 지나쳐 이제 슬슬 안달이 날 정도로 몸이 찌뿌둥하다. 정기적인 교류를 하는 것도, 휴대전화에 각자의 전화번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나카타는 어디서 알아냈는지 가끔 스오우에게 전화를 걸곤 했지만 스오우는 그 번호를 저장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았다. 다만 무슨 운명인지 심심할 즈음엔 얼굴을 마주쳤다. 슬슬 때가 되었을텐데, 스오우의 지루한 조바심이 열흘을 넘어도 무나카타의 얼굴은 어디서 보기도 힘들었다. 스오우는 장식처럼 들고 다니던 휴대전화의 액정을 무심히 바라보다 도로 주머니에 밀어넣고는 걸음을 옮겼다. 우연이 원하지 않는다면, 별 수 없는 거지.
스오우 미코토와 무나카타 레이시의 인연은 딱 그 정도가 아니던가.
그러나 스오우는 내리는 비를 보며 계속 생각했다. 잿더미의 도시와 뒤집힌 바다. 바다가 내리면…….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정확히 한 달 하고도 열하루 전이다. 모처럼 스오우가 먼저 일어난 날이었다. 두 시간 정도 잤을까. 선잠에서 눈을 뜨면 어렴풋한 여명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해가 짧아지는 시기라 예전만큼 빠른 시각은 아닐 터였으나 스오우에겐 충분히 이른 시각이었다. 당연히 비어있으리라 여겼던 옆자리는 웬일로 사람이 있었다. 같은 공기도 마시기 싫은데 침대는 오죽하겠냐며 늘 바람처럼 사라지는 무나카타가 스오우의 옆에서 내내 자고 있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자는 상대를 바라보며 스오우는 손을 더듬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린 옷가지에서 담배를 빼어물었다. 평소와는 다른 맛에 위화감을 느끼면 무나카타의 것이었다. 하다못해 담배 취향도 안 맞는다니.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스오우는 불을 끄지 않았다.
"담배……."
남의 담뱃갑에서 낼름 두 대째의 담배를 꺼낼 즈음, 상대가 웅얼거리며 반짝 눈을 떴다. 정확하게 세 번 깜박여 잠기운을 날린 무나카타가 정직한 시선으로 스오우를 본 다음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안경을 벗은 무나카타와 멀쩡하게 눈을 마주치는 건 또 처음이었다. 스오우는 멀뚱거리면서도 무나카타의 담배를 보란듯이 빨았고 그러거나 말거나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무나카타는 이윽고 긴 팔을 내밀어 스오우의 담배를 낚아챘다.
"담배 냄새에 잠을 깨다니 하루 종일 재수가 없을 것 같군."
반쯤 남아있던 담배를 깊이 빨면서 무나카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럼 피우지 말지 그러냐, 무나카타."
"내가 안 피운 담배로 옷에 냄새 배면 억울하지."
"별… 같잖은 논리 다 보겠군."
그러거나 말거나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여전히 무나카타는 눈을 감은 채 담배를 물고 있었다. 세 모금, 혹은 네 모금. 짧지만 긴 시간 동안 감은 눈은 자는 것처럼 평온해 뜨이지 않았다. 스오우는 그 때 처음으로 무나카타 레이시는 담배를 피울 때 눈을 감고 있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할 일이 없어 스오우는 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익숙함을 느끼면서도 그 새 상대의 것에 길들여졌는지 또 어딘가가 낯설다. 키스할 때는 이런 맛이 나던가? 문득 생각해 본다. 한덩어리의 열락으로만 뭉뚱그려져 남아 있는 속에서 맛 같은 건 무의미했다. 사소함과 섬세함은 그와는 거리가 멀어 침묵 속에서 스오우는 말없이 감은 눈을 본다. 담배는 언제나 지나침이 없다. 희뿌연 두 사람 몫의 연기가 하늘에 고여 있는 동안 마침내 온전하게 눈을 뜬 무나카타가 꺼지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지졌다.
"분명 당신 걸 뺏었던 것 같은데, 내 거네요."
한참을 재떨이에 고개를 쳐박고 새처럼 관찰하던 무나카타가 불쑥 그렇게 내뱉었다. 잡힌 게 그거라. 스오우는 알량한 변명을 해보았다. 한숨을 내쉬고 무나카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묘한 침묵이 연기와 함께 맴돌아 스오우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귀찮을 정도로 말이 많은 편이었다. 제 사유물에 아무렇게나 손댄 것을 알면 거하게 한바탕 쏟아낼 줄 알았더니 - 쿠사나기를 통해 학습한 것들이다 -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음. 음. 으음…….
"갑자기 화가 나는군요."
한참의 무언 끝에 무나카타가 긴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다. 어느 것에 화가 났다는 건지 물론 스오우는 알 도리가 없었다. 스오우가 생각하기에 무나카타는 그냥 저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를 낼 법도 했고 반대로 고작 그런 이유로 화를 낸다면 진즉 냈어야 했다.
"머리 굴리지 마세요, 스오우. 당신과 있는 건 원래 좀 화나는 일이고 그 정도는 감수하고 있습니다."
…….
"별 쓸모도 없는 감각으로 확신을 가져야 했던 나에게 화가 나는 겁니다."
"…네가 그렇게 자기 반성이 투철한 녀석인지는 미처 몰랐는데."
세상 너 잘난 맛에 사는 놈이잖냐. 물론 스오우는 말로는 하지 않는다. 귀찮으니까.
"사실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 적 있지만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무나카타는 안경을 쓰지 않은 눈을 깜박이다 스오우를 쳐다보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었다. 무나카타가 이런 표정을
"비밀 하나 얘기해 줄까요, 스오우."
"아니."
"그렇게 큰 비밀은 아닙니다."
그래서 비밀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스오우 미코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잔을 내려놓는 손놀림은 답지 않게 난폭했다. 늘 꼿꼿하던 허리는 제대로 세워져 있길 포기한 건지 소파에 미끄러져 있었고, 긴 다리를 모로 꼬고 담배를 피우는 얼굴에선 눈꺼풀이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감겨 파리하게 긴 속눈썹이 떨리고 있었다.
우연일까.
스오우가 이 가게를 찾은 건 무나카타가 이 가게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호무라와는 달리 검은색 모조 대리석으로 마감된 인테리어는 무나카타와 어울렸지만 스오우의 취향은 아니었다. 무나카타가 아무래도 맘에 들어하는 건 테이블마다 놓인 운세점 뽑기 기계 같았지만 어찌됐든 무나카타는 높은 빈도로 이 가게를 찾았고 스오우가 별로 맘에도 들지 않는 가게로 발걸음을 옮긴 데에는 이유가 없었다. 생각 없이 왔다기엔 너무 노골적이고, 그렇다고 해서 기대했다고 인정하기도 애매했다. 우연이라는 교묘한 핑계를 제쳐두면, 남는 건 뭘까.
무나카타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적당히 근처 테이블에 앉은 스오우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말이 맞다면 설령 이 쪽을 돌아본다 해도 약간의 거리가 있는데다 스오우를 알아볼 확률은 극히 낮았다.
시각적 정보는 언제나 올바른 게 아닙니다.
무나카타가 비밀이랍시고 원치않았던 스오우에게 듣기를 강요한 말은 평범하게 가끔 하는 미친 소리였다. 말없이 안경을 건네주는 스오우에게 코웃음 치며 무나카타는 쑤욱 얼굴을 내밀었다.
"당신이 유일하게 쓸모 있는 건 대화할 때 표정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언제 봐도 똑같이 기분 나쁜 얼굴이라서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칭찬으로 알아듣지."
"욕입니다. 그렇지만… 그래요. 목소리만은 괜찮군요."
모든 것이 상식을 벗어나 인식되는 세계를 스오우는 알지 못한다. 물론 동정하진 않는다. 무나카타도 그것을 원하진 않는다. 결코 제게 주어진 일 앞에선 투덜대는 일이 없는 남자는 그래도, 가끔은 짜증이 치미는 모양이었다. 쓸모없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
"그런 게 언젠가 제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말을 하면서 무나카타는 스오우의 가슴을 오른손으로 쿡 찔렀다. 그 손놀림은 그의 길고 날카로운 검과도 닮아있었다. 그대로 뚫고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무나카타는 꾸욱 손가락을 눌렀다. …그러니까, 듣기 싫다고 분명히 얘기했었는데.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세계만으로도 벅찬 삶이었다.
얼굴을 보지 못하던 기간 동안 조금 살이 내렸을까. 눈썰미가 없는 스오우에겐 가늠 되지 않는다. 주문한 위스키잔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리는 동안 스오우는 무나카타를 관찰했다. 두 대의 담배를 내리 피우고 나서야 가늘게 눈을 뜬 무나카타는 휴대전화를 만지작대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뿌연 연기가 조명에 비쳐 맴도는 게, 어쩌면 그가 말하던 바다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영하는 인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결코 스오우가 무나카타의 세계를 볼 수는 없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어쩐지 입맛이 써, 스오우는 내내 입을 대지 않고 있던 버번 위스키를 들었다. 그 때, 잠깐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다 그쳤다. 주머니를 더듬어 휴대전화를 꺼내니 저장된 번호가 아니라 이름이 뜨진 않는다. 다만 익숙하긴 해서 스오우는 다시 앞을 보았다. 무나카타는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떨어뜨려 놓고 있었다.
고민하다 스오우 미코토는 발신 버튼을 누른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테이블 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깜박이다 손으로 휴대전화를 더듬는다. 진동을 느끼는 촉감은 멀쩡할 것이다.
「여보세요.」
"무나카타."
「듣기 싫은 목소리네요.」
"먼저 전화한 건 네 쪽일텐데."
「실수였습니다.」
"아니잖아."
「아뇨. 실수입니다.」
"그럼 그렇다 치고, 지금 어디냐."
「저는 당신같이 침대에서 뒹굴고만 있을 사람은 아니라.」
"혼자 술 마시고 있잖아."
「…….」
"두리번 대지 말고."
「언제부터 제 스토커처럼 굴었습니까. 제가 좀 잘생기긴 했지만.」
"술 맛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면서 스오우는 제 잔을 들고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리번대던 시선이 어느 순간 스오우를 발견했는지 이 쪽으로 고정되었다. 그러나 확신을 갖지 못하는 흔들리는 눈이다. 자연스럽게 무나카타의 맞은 편에 앉은 스오우는 전화를 끊었다. 무나카타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스오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나, 무나카타."
"당신이 너무 못생겨서."
"그래?"
"아예 못 알아보는 건 아닙니다. 새까맣고, 번진데다, 사실 형체는 제일 흐려. 그렇게까지 못생기면 못 알아볼 수도 없습니다."
"가까이서 봐라."
"가까이 봐도 못생겼겠지. 쓸데없는 일입니다. 당신이 당신이란 건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어."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나카타. 일단 있는 기능은 확실하게 쓰고."
스오우는 반쯤 일어나 무나카타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무나카타의 시각이 그나마 제 기능을 하는 반경 30cm 안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