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미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책상 위에 얹어 놓고 있던 다리를 내렸다. 후시미는 무나카타가 불편했다. 고작 중학생이던 자신이 네 번째 검의 주인으로 임명되었을 때, 마중 나온 푸른 옷의 종자들은 모두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오래 전 주인을 잃어 을씨년스러운 집무실에 후시미가 처음 앉아 한 일은 전면적인 인원교체였다. 전국의 관공서, 체육선수들, 리크루트 사이트의 쓸만한 인재들을 전부 끌어모아 재지도 않고 연락했다. 왕이 되었다면, 호무라를 견제할 만큼 충분히 강대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미사키가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스오우 미코토와 비등한, 후시미의 명령을 아무도 거절하지 못할 만큼 막강한 조직. 한 번에 백 명 단위의 인원이 새로 들어왔고 후시미를 인정하지 못해 나가는 사람도 있었으며 혹은 후시미가 내보낸 사람도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그들이 갖고 있던 힘을, 긍지와 자존심을 모두 거둬가는 권능은 몹시 즐거웠다.
무나카타는 경찰청 캐리어 출신이었을 거다. 첫 인스톨레이션의 날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시선을 기억한 건 조직 개편이 끝날 무렵이었다. 각 소대에서 필요한 인물들을 다시 뽑아 특무부를 편성하고 아와시마 세리를 부장으로 임명했지만 사실은 무나카타가 더 적절했을 지도 모른다. 스물넷의 청년은 적당히 괴상한 유머감각 - 촌스럽다 - 과 유연한 성실함 - 요컨대 농땡이 치면서 할 일은 다 한다 -, 우아하고 고상한 검술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와시마를 택한 것은 그거야, 재수 없으니까.
한 번 검이 택한 사람은 부서지기 전까진 왕이라는 사실을 후시미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종종 후시미는 어쩌면 무나카타가 왕에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 지 모른다. 무나카타가 후시미를 보는 시선엔 늘 꺼림칙한 무언가가 있었다. 깔보는 것도 아니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닌. 딱히 무얼 하는 것도 아닌데 무나카타와 마주할 때면 묘하게 긴장되었다.
건네받은 서류를 대충 훑고 후시미는 책상 끝으로 던졌다. 무나카타와 오래 있는 건 별로 정신건강에 좋은 일이 아니다.
"문제없네. 나가 봐."
"실장, 저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만."
"뭐?"
"제가 싫으십니까?"
어느 새 성큼 다가온 무나카타가 위에서부터 후시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후시미는 인상을 썼다가도 솔직하게 답했다. 아니라고 말해도 되도 않는 변명일 뿐이라는 걸 후시미도 잘 알고 있었다.
"응. 싫은데."
"왜요?"
"싫어하는 데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뇨,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듯이."
"그럼 됐잖아?"
"다만 싫어하는 이유를 알면 고칠 수 있을까 생각해서요."
"왜? 그런 거에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닐 테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 받으면 역시 가슴 아프지 않습니까?"
잘못 들었나 싶어 후시미가 말 없이 눈을 깜박이면 무나카타는 또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실장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헛소리."
"진짜인데요. 그래서 선물도 준비했고."
그렇게 말하며 무나카타가 내민 것은 작은 과자상자였다. 후시미는 쓰레기통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아와시마가 아침부터 가져다 준 과자를 차마 버릴 수 없어 어떻게든 꾸역꾸역 먹다가 기어이 두어개쯤 버린 게 바로 한 시간 전이었다. 녹인 초콜릿에 팥을 섞어 굳힌 100% 수제 - 그런 걸 시중에서 팔아도 곤란하다 - 빼빼로 덕분에 초콜릿 과자는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한 시간 전이었다.
"안 받아주십니까?"
"그……."
무나카타의 갑작스런 고백은 둘째 치더라도 후시미는 그냥 빼빼로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렇다고 남의 호의를 쓰레기통에 쳐박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우물쭈물 하는 사이 무나카타는 빼빼로 상자를 북 뜯고는 내용물을 꺼냈다. 가느다란 막대기를 후시미의 입에 밀어 넣고는 말하는 꼴이 가관이다.
"받아들인 걸로 알겠습니다."
"누가……!"
"저런. 떨어지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무나카타는 손을 내밀어 후시미의 턱을 살짝 들더니 빼빼로의 끝부터 천천히 부러뜨렸다. 똑, 똑, 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무나카타의 얼굴이 성큼 가까워지고, 마침내 눈밖에 보이지 않는 정적이 길어졌다. 놀라서 크게 뜨인 후시미의 눈에 무나카타가 슬며시 눈꼬리를 접어 웃는 게 보였다.
그거다.
무나카타가 후시미를 보던 시선이 어떤 종류였는지, 후시미는 겨우 눈치챘다. 입에 얌전히 물고만 있던 과자를 사납게 깨문다. 짭짤한 피맛과 함께 예상치 못한 습격에 화들짝 놀라 떨어지는 무나카타의 얼굴이 보였다.
"누굴 애 취급 하는 거야, 무나카타?"
사납게 웃으면서 후시미는 맛도 보지 않고 빼빼로를 목 깊숙히 삼켰다. 아주 작은 조각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앞니로 씹은 자국이 선명한 무나카타의 아랫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게 만족스럽다. 무나카타가 후시미를 보는 시선은, 그거다. 모든 것을 어린애 장난이라고 취급하면서 어쩔 수 없지, 라고 무조건적으로 인자하게 내려다보는 시선. 언제나 나는 당신의 우위에 있다는 더럽게 기분 나쁜 표현. 좋아한다고? 같잖은 소리하고 자빠졌다. 그 또한 무나카타의 우위 표현이라고 후시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개의 마운팅 같은 거다. 얼핏 보면 애정 표현 같지만 사실은 단순한 서열 표시다.
"과자쪼가리는 보기도 싫고 댁 얼굴도 마찬가지인데 좀 꺼져주지?"
"그래도 자르진 않으시네요?"
"……."
무나카타의 말은 놀랍도록 맞는 말이었다. 당장 내쫓아 버리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지만 무나카타는 후시미의 이성이 뜯어 말릴 정도로 조직에 필요한 인재였다.
"저는 당신의 그런 점을 좋아합니다."
"…꺼지라고."
"감정적이지만 냉정하고 그래서 귀여워요."
"씨발, 이게 진짜!"
"그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이유가 있지만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없죠. 좋아해서 좋은건지, 좋아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거든요."
후시미는 아까 던져놨던 서류를 다시 주워들어 집어던졌다. 날카로운 종이 끝에 무나카타의 얼굴엔 상처가 하나 더 생겼으나 무나카타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다. 씩씩거리며 분에 못이긴 후시미가 무나카타의 멱살을 잡았으나 무나카타는 후시미가 주먹 쥔 손을 가볍게 떼어내고는 대신 그 손등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나의 왕."
가볍게 문이 열렸다 닫히고 후시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등에 새빨간 입술 자국이 선명했다. 손가락으로 벅벅 문지르는 데도 비릿한 피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