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나기는 조용히 호무라의 덧창을 닫았다. 주말에도 손님은 많지 않은 바에 평일 저녁이라고 손님이 많을 리는 없었다. 간혹 저녁 후에 칵테일 한 두 잔을 즐기는 손님은 있어도 날이 바뀌는 시간까지 버티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11월 초에는 원래 이리도 추웠나. 집에 가면 슬슬 겨울 옷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좀 이르지만 오늘은 슬슬 폐점 준비를 해볼까 하면서 문 밖에 Close 팻말을 걸려고 밖에 나가면 저 골목 끝에 서성이는 긴 그림자가 보였다.
"사루야."
조용히 부르는 이름은 꽤 오랜만이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소리가 어찌나 어색하던지 쿠사나기는 내심 그 어색함이 소리로까지 전달되지 않기를 바랐다. 가로등의 역광 속에서 둥근 빛 주변을 맴돌던 인영이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본다. 쿠사나기는 겨우 오늘 겨울옷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는 이미 두툼한 파카를 껴입고 있었다. 후드까지 뒤집어 쓴 그림자가 망설이다 천천히 쿠사나기에게로 걸어온다.
"어떻게 아셨어요."
"설마 내가 니도 못알아볼라꼬."
"들어가도 돼요?"
"퍼뜩 들어온나. 밤되니 쌀쌀허네."
여전히 망설이면서도 후시미는 실례하겠습니다, 란 인사를 빼먹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쿠사나기의 뒤를 따라간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걸 보고도 후시미는 눈을 깜박이다 지정석 마냥 빛도 들어오지 않는 저 끝자리에 앉는다.
그러고보니 저 애는 늘 저 자리에 앉았다. 떠들썩한 소파나 홀의 중앙이 아니라 늘 바의 끝자락에 앉아 턱을 괴고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가끔 쿠사나기가 넌지시 말을 걸어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고개를 내젓곤 했다. 때때로 후시미의 시선이 중앙이 아니라 쿠사나기 쪽을 향하는 때도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적막한 시선을 등으로 받아들이면서 쿠사나기는 후시미가 언젠가는 영원히 이 바에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막 나갈 것처럼, 겉옷도 벗지 않은 채로 여전히 바라만 보는 후시미에게 쿠사나기는 가볍게 제 앞을 두들겼다.
"이 짝으로 와라. 손님도 없는데 와 어두캄캄헌데 있노."
한참을 망설이다 자리를 옮긴 후시미는 주머니 속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로 무언가 망설이고 있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후시미가 호무라에 온 게 꽤 오랜만이라 쿠사나기는 조금 들떠있었다. 용건 없이는 올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 시간에 후시미가 이 근처를 배회할 일 같은 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모르는 척 "뭐라도 맹글어줄까?"하고 물으면 후시미는 크게 숨을 들이 쉰 뒤 입을 열었다.
"쿠사나기 씨. 혹시 기억해요?"
"응?"
"생일이 되면 한 잔 쏘겠다고 했던 거."
…….
하긴, 했을 거다. 몇 년 전 호무라엔 아직 성인 딱지도 못 뗀 어린애들이 많았다. 안나를 제외하면 후시미와 야타가 제일 어렸다. 쿠사나기는 그런 애들에게 간혹 성인이 되면 한 잔씩 원하는 걸로 첫 술을 내어 주겠다 했고 지금까지 몇몇이 그렇게 쿠사나기에게서 칵테일을 받아먹었다.
"어차피 별 기대도 안 하긴 했지만."
쯧, 혀 차는 소리에 쿠사나기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렇구나, 오늘은 후시미의 생일이었다. 어영부영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11월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더니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약속한 것은 자신이었고 후시미는 그 약속을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 이건 명백하게 쿠사나기의 잘못이었다.
"하하, 사루야 그래서 니 뭐해줄까."
"빈 손으로 얻어먹으러 온 거 아니에요."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한 웃음에 후시미는 살풋 인상을 찡그리고는 파카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어차피 쿠사나기 씨 생일도 못 챙겨줬으니 쌤쌤이라고 치죠."
달칵, 소리를 내며 내밀어진 것은 매끄러운 광택의 지포라이터였다. 쿠사나기가 지금까지 쓰던 것과는 그리 다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말단에 매끄러운 음각으로 쿠사나기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뭐꼬, 이기."
"칵테일 값."
"내가 기냥 주기로 했는데?"
"생일 선물?"
"사루야, 니랑 내는 생일이 반년이 차이나요. 구색으로도 할 말이 아니구마."
"그럼 칵테일 플러스 알파로 쳐요. 그리고 쿠사나기 씨 아직 중요한 말을 안했는데."
"뭐……."
그러나 쿠사나기의 목소리는 밖으로 나가기 전에 도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는 제법 크고 길어진, 우악스러운 손으로 후시미가 쿠사나기의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눈은 감지 않았다. 손은 우악스러웠지만 혀만은 서툴고, 눈동자는 올곧게 응시하면서도 흔들렸다. 달그락하고 안경 프레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맞닿은 코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워서 쿠사나기는 조금 놀랐다. 후시미는 전부 차가웠다. 줄곧 주머니 안에 넣고 있던 손과 파고드는 혀만이 따뜻했다.
떨어지고 난 후에야, 쿠사나기는 제가 손에 쥐고 있던 라이터도 후시미의 체온만큼 따뜻하다는 걸 알았다. 얼굴이 시려지도록 밖에 서 있었으면서 얼마나 꽉 쥐고 있었던 걸까.
"축하한다고."
"……."
"생일 축하한다고, 태어난 걸 축하한다고, 얘기 안했어요, 쿠사나기 씨."
"아…, 아아, 그래… 내가 그 말을 안했든?"
"칵테일은 쿠사나기 씨가 아무거나 골라주세요. 그리고 방금 전은, 플러스 알파."
쿠사나기는 이 시선을 안다. 그 예전부터 쿠사나기의 등 뒤로 닿고 있던 적막한 시선. 사실 그 예전엔 아니었을 거다. 매달리던 일말의 희망은 다른 것으로 종류를 바꿨지만 어느 쪽이든 쿠사나기에게 그 본질은 똑같아 보였다. 그 때도 지금도, 그리고 쿠사나기는 외면한다. 쿠사나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한다 사루야."
"…감사합니다."
줄곧 쿠사나기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던 후시미가 쿠사나기의 말에 눈을 감으면서 답했다.
흰 손이 떨어져 나갔고, 그 뒤로는 말이 없었다. 후시미에겐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베르무트, 슬로 진, 보드카와 레몬을 넣고 섞었다. 넓은 잔 입구에 설탕을 부드럽게 문지르고 내주면 후시미는 이름도 묻지 않고 마셨다.
"첫 술 치고는 도수가 좀 쎈가?"
"아뇨… 딱 좋았어요. 한 잔 얻어 마셨으니 갈게요."
그렇게 말해 놓고서도 후시미는 한 모금의 술을 남기고 도망쳤다. 도망쳤다, 고 말하는 건 어폐가 있을 지 모른다. 쿠사나기가 시계를 보니 확실히 지금 돌아가 잔다고 해도 통상적인 출근시간에는 조금 부족한 잠을 자게 될 터였다. 어디까지나 쿠사나기의 자만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갔으니 다시 문 밖에 이번에는 확실하게 Close란 팻말을 걸어둔다.
잔을 들고 새빨간 혀가 핥아 먹던 반쯤 녹은 설탕을 쿠사나기도 입술로 훔쳐보았다. 아직도 차가운 술은 입에 넣으면 그 색만큼 화끈한 열을 지니고 혀 뒤로 넘어간다. 빨간 색은 후시미랑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느낌만큼은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이름, Kiss of Fire, 그대로. 그리고 쿠사나기는 줄곧 주머니 안에 넣어뒀던 후시미가 준 라이터를 꺼내 서랍 속으로 집어 넣는다. 불꽃처럼 사그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