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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카타 레이시 생일축하
바다가 내리는 방 - 무나카타 레이시의 시각에 대한 소고 -
그의 이름은, 무나카타 레이시라고 한다.
*
창밖의 날씨는 그리 좋지는 않다. 파도가 아우성치고 빗줄기가 거세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나가지만 않는다면야 밖의 날씨가 무슨 영향을 미칠까. 비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혹은 옆에서 옆으로 내린다. 이미 중력의 영향이 소실된 지 오래인 그 비에게 과연 ‘내린다’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옳은가?
사소한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나 그는 무시하기로 한다. 세상의 상식은 늘 그래왔듯 아무 의미가 없다. 대신 그는 조금 더 집중해서 눈앞의 갇혀진 정경을 본다. 가로 72cm, 세로 49cm. 책상을 가득 메운 크기는 아무리 그라고 해도 부담스러웠지만 그 정도다. 닳지 않은 2000개의 조각은 끼워 넣기가 조금 뻑뻑하다. 손때라도 묻을까 조심스럽게 그는 또 다시 한 조각을 맞춰 넣는다. 꼭 맞아 떨어지는 조각들 사이에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점점 그 세력을 넓혀가는 순백의 파도에 책상 위의 것들이 조금씩 밀려난다.
누군가에게 혼나기 딱 좋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면 타이밍 좋게 노크 소리가 들린다. 이지러진 문이 갑자기 사방 귀퉁이를 확 잡아당긴 것처럼 펴지고는 열린다.
“…실장, 일 좀 하시죠.”
아닌 게 아니라 제법 험상궂은 인상이다.
인상일 것이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그렇게 추측한다. 가정인 이유는 사실 표정까지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그림일기 마냥 크레파스로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얼굴은 무나카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굵은 선으로 그려진 얼굴에서 표정까지 읽으라니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판단을 대신 해주는 것은 언제나 경험이다.
무나카타는 그를 이질적인 촉감의 사포 같다고 생각한다. 척 봐도 거칠어 보이는 겉면이지만 만져보면 상상 이상으로 부드럽다. 그렇지만 역시 사포이기 때문에 세게 문지르면 살갗이 전부 찢어질 것이다. 몇 겹으로 뒤덮인 피부의 몇 층이 벗겨진다. 아프겠지. 그럴 것이다. 제멋대로 일어난 얇은 살껍질과 벌겋게 드러난 여린 속살과 보이지 않는 모세혈관들에서 동그랗게 올라올 핏방울의 모양도 무나카타는 또렷이 그릴 수 있다. 아프겠지만 아마 별 거 아닌 그것.
결국 위협은 되지 못하는 그런 것.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적절한 비유라 무나카타 레이시는 혼자 웃는다. 탕- 인지 쾅- 인지, 종이뭉치들이 마찰되는 소리가 뒤섞여 내리쳐진다. 소리들은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쌓여있지만 그 층은 전부 분리되어 있다. 그가 얼굴을 들이밀면 그제야 사람의 형상이 된다. 아아. 얼마나 그리운 감각인지. 언제부터 세상은 이렇게 낯설고 낯선 게 되어버린 걸까.
“이번엔 몇 조각입니까?”
“2000개요.”
“지난번 걸로는 만족하지 못하신 겁니까?”
후시미 사루히코는 분명 지난주에 똑같은 광경을 보았다. 질릴 정도로 새하얀 작은 조각들이 책상 위에 서류 대신 널부러져 있는 걸 쓸어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거늘 그새 다 맞추고 이번엔 2000개란다. A4용지 한 장도 올릴 공간이 없는 책상을 인상을 찡그리며 바라보다 그냥 그 퍼즐 위에 얹어놓는다.
“제 할 일은 다 했으니 이번엔 실장 차례에요. 결재.”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당장, 하세요.”
동작을 재촉하는 부사에 강한 악센트가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하며 무나카타는 쓴웃음 짓지만 후시미는 그가 기어이 그 퍼즐을 다 맞추고 나서야 종이 위의 활자들을 훑어볼 것을 안다. 무의미한 입씨름은 저만 골치 아플 뿐이라 후시미는 성의 없는 목례 뒤 집무실을 나갔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면 그는 다시 크레파스의 추상화가 된다. 오그라들어 있던 문이 다시 활짝 펴지고 다시 입을 꽉 다문다.
*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똑, 또옥, 똑, 투둑. 한밤중, 덜 잠긴 수도꼭지에서 한 방울씩 힘겹게 새어나오는 울림소리.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하얀 마감재의 천장의 이음매 사이로 조금씩 고인 물이 이윽고 떨어진다. 툭, 하고 얼굴에 튄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쓸어 혀에 찍어본다.
짜디 짠 소금맛이 났다.
*
“바다?”
“안 보입니까?”
“……. …미쳤군.”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대답조차 의외라고 생각하며 무나카타는 새파란 연기가 너울져 올라가는 것을 본다. 아름답다. 인어를 닮아있다고 늘 생각한다. 폐 안을 한 바퀴 휘감아 다시 밖으로 빠져나오는 무형(無形)의 인어는 재처럼 새하얗게 변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무나카타는 물고기를 삼킨 것처럼 제 가슴에서 심장 대신 팔딱팔딱 뛰는 인어를 느낀다. 단순히 혈관이 좁아져 심장이 더 빨리 뛴다고는 알고 있지만 가끔은 감상적인 생각도 좋지 않은가.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는 무나카타에게서 시선을 떼고 스오우 미코토는 느릿하게 재떨이에 담뱃재를 비벼 끈다. 충분히 적셔진 티슈에 치익하는 단말마와 함께 인어는 생을 다한다. 아쉬운 탄식이 소리 없이 흘러나온다. 가끔 스오우는 무나카타 레이시란 존재는 정말 미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오늘도 그렇다.
“네 집무실에서 바다가 보일 리가 있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건물에서 일하는 주제에 바다가 보인다니. 그럴 리가 있나. 그럼에도, 그렇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스오우는 한 번 밖을 바라본다. 폐점시각이 가까워 오는 새벽 두 시의 바(Bar)에는 그들을 제외하고는 한 두 팀 정도. 캄캄한 밤에 광원이라곤 나트륨의 가로등 뿐이다.
바다. 그런 게 보일 리 없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일 지도 모른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별로 낙담한 기색은 아니다.
“하긴.”
다들 제정신은 아니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스오우가 보는 폐허 대신 무나카타는 바다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스오우는 어디까지나 꿈에서라는 게 무나카타가 보기보다 미쳐있다는 증거라고 스오우는 판단한다.
스오우가 시선을 무나카타에게로 돌리면 그의 입에도 어느 새 한 대 물려 있다. 새파란 연기가 너울져 올라가는 것을 본다. 후우, 하는 깊은 날숨에 방향 없이 분사되는 하얀 연막과 함께 푸르스름한 연기의 형체가 사라진다.
“스오우 저는.”
재를 툭툭 내리치면서 무나카타는 입을 연다.
“바다가 내리는 걸 봅니다.”
다시 입에 물고 필터를 깊게 빨아들인다. 인어가 춤을 춘다. 팔딱팔딱 대면서 온 몸을 휘젓는다. 꺄륵거리면서 인어는 천장 위의 뒤집어진 바다로 풍덩 빠져든다. 물방울이 튀었다. 입에 대지 않아도 짜디 짠 소금물일 것을 안다. 바다는 늘 그의 머리 위에 있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검은 겨울 같은데 어째서 제 머리 위에는 바다가 있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물론, 무나카타 레이시의 세계는 언젠가부터 늘상 추상과 초월의 화상(畵像)이었으므로 이제 와 무언가에 의문을 가질 여력은 없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머리 위의 바다가 세상의 섭리에 따라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생각한다. 크레파스는 밀랍 같은 걸로 만들어지니 번지지는 않을테지. 스오우 미코토는, 흘긋, 무나카타는 곁눈질하여 자신과는 다른 성질을 가진 남자를 본다. 그는 언제나 탄화된 어떤 것이었다. 검게 탄 굵은 입자는 4절지의 거친 표면을 온전히 메우지 못한다. 목탄화는 번지던가? 미술은 그의 취미가 아니다. 온갖 재료의 질감이 몽땅 뒤섞였지만 결국 현실은 되지 못하는 풍경은 대체 어떤 사조에 들어간단 말인가.
탄식.
반경 30cm 내에서만 입체감을 갖는 기이한 세계. 점멸하던 뜨거운 덩어리가 꺼진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인어를 죽였다.
*
다듬어지지 않은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그는 빈자리를 끊임없이 채워간다. 아무런 때도 타지 않은 새하얀 풍경이 하나씩 완성된다. 그 위에 무엇이 그려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만지지 않으면 어떤 질감일 지도 알 수 없다. 시각에 의존하는 일은 오래 전에 포기한 일이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시각적 정보를 최우선 순위로 받아들인다. 희디 흰 하얀 직사각형의 물체는 부드럽고 매끈한 펄프지일 수도 있고 거친 재생지일 수도 있고 주름이 있을 수도 있고 구겨진 자국이 있을 수도 있으나 눈에 보이는 것만큼은 오로지 새하얀 광경을 그는 동경처럼 바란다.
그러나 그리운 풍경은 새파란 윤곽의 매끄러운 검날이 주저 없이 찢어낸다. 찢어내면 거기엔, 바다가 있다. 어째서 바다인지 모른다. 짭짤한 비린내, 포말이 부서지는 소리,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시커멓게 변하는 그 광대한 위협의 단편은 늘 그의 머리 위에 있다.
그래, 그 검이.
단도보다 길고 샤벨보단 짧은 그 검.
한 때 있었던 무나카타 레이시의 평온한 시각을 갈기갈기 찢어, 산산조각내고, 짓눌러 부숴, 으깨어, 마침내 온갖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검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은 젤리로 만들어진 하늘을 본 적 있을까? 노래 구절처럼 마멀레이드나 그 비슷한 머랭, 크림치즈, 생크림 뭐 어떤 것이라도 괜찮다. 민트색 나무줄기 고양이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진 꽃, 솜사탕을 파는 솜사탕 같은 사람, 정사면체의 탄력 있고 매끄러운 고무공이 자동차 위로 떨어진다. 통통 굴러다닌다. 튀어 다닌다. 걷는다는 감각은 원래 이랬을까? 트램펄린 위에서 오랫동안 놀다가 단단한 지상에 땅을 내딛었을 때의 그 부조화.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에 적응하지 못해 울렁거리는 속을 뒤집어 박박 지워버리고 싶다.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박살난 매쉬드 포테이토를 그는 사실 몹시도 혐오한다.
유리는 상을 반사하지 않는다. 거울 속의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는 모른다. 그래서 그는 저에 대해 생각하기를 잊었다. 세상은 반경 30cm 내에서만 입체감을 갖고 뒤죽박죽이 된 세계는 카레이도스코프처럼 시시각각 그 모습을 변화시키며 바닥은 울렁거리고 문은 입을 다물고 인어는 팔딱대고 바다는 떨어지며 크레파스로 그려진 부하가 갑자기 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사라지거나 목탄화의 남자가 그림 한 편을 태우고 그슬린 자취를 남긴다.
별 대신 아몬드나 파슬리가 뿌려진 하늘에서 변하지 않는 모양인 것은 그 검 뿐이다.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 그 밖의 영원을 약속하는 전설 속의 광물로 이루어진 것 마냥 어느 것에도 굴하지 않고 그의 머리 위에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토록!
빌어먹을!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조각이 맞는다. 내뱉었던 비명을 끝으로 인어가 죽는다. 새하얀 풍경 속에서 그는 제발 자신이 아는 세계가 다시 나타나길 간절히 원한다. 떨어지는 바다의 물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쓰다가 그는 문득 거울에 비치지 않는 자신은 혹시 수채화로 그려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인펜이라든가, 수용성의 무언가. 이 방에 바다가 가득 내리면 형체가 번져 사라지는.
무나카타 레이시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그려져 있을까.
수성이라면 지워질 테고 유성이라면 지워지지 않을 테지만, 석회라면 소금물에 녹을 테고 꽃이라면 수분을 모두 빼앗겨 바짝 마를 것이며 종이라면 분해될 것이고 나무판자라면 둥둥 뜨고……. 그러나 그 결과는 바다가 전부 떨어져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제 이름을 읊조린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새하얀 풍경 속에서 잠이 들었다. 어렴풋이 마침내 이 방에 바다가 전부 내리는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했다. 제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다만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 곳에서 푸른 검은 한 줌 새하얀 모래로 파도에 부서졌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