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 저장한 거지? 그런데 보고 있으면 얼추 뭣 때문인지는 기억 나는 걸 보니 트윗 게재는 한 모양
하필이면 이 파일은 지인이 나한테 써준 글을 뒤에 붙여두는 바람에 남의 거인줄;;;
그는 혀를 차는 것만큼 습관처럼 한숨을 자주 내쉬었다. 왜요? 처음에는 이유를 물었으나 그는 내가 묻기 전까지는 제가 길고도 깊은 한숨을 내쉬는 지도 모르는 듯 했다. 한숨 쉬지 마세요. …응. 내가 그리 말하면 그는 조금 머뭇거리다 답했다. 내가 말한 뒤로 그의 한숨을 확실히 줄어들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그러하듯 호흡하고, 남보다 조금 무거운 숨을 내쉬는 것을. 단지 그것 뿐인데도, 그렇게 융통성 없는 사람까진 아니었건만 그는 그 숨을 내쉬다가도 딱. 멈추었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힐끔 내 눈치를 살피다 일부러 모른척 하고 있으면 다시 짧게 숨을 내뱉는다. 나는 그런 후시미 씨가 낯설었다. 실장의 말조차 듣지 않는 남자가 내가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을 신경 쓴다. 나는 시험 삼아 한 번 더 얘기해 보았다. 후시미 씨, 그 옷 잘 어울려요. 어느 오프날의 얘기였다. 우리는 나란히 밖에 나가 쇼핑을 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취향은 캐쥬얼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후드티도 나쁘지 않았다.
"귀여워요, 후시미 씨."
"귀엽다는 게 칭찬일 나이는 지났는데요, 아키야마 씨."
그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거울 앞에 부루퉁하게 섰다. 모자를 뒤집어 쓴 얼굴이 그제야 조금 앳되어 보였다. 후시미 씨, 그 옷 잘 어울려요. 한 마디 더 첨언하면 그는 칫, 하고 혀를 차더니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안 살 줄 알았던 옷은 쇼핑백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들어올 때까지 후시미 씨의 한 쪽 손에 들려있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뻗어 잡은 빈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처음으로 닿은 긴 손가락의 마디가 실로 어색하여 내게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 믿었다.
그의 한숨소리도, 혀 차는 소리도 좋았다. 그가 나를 보고 아키야마, 하고 부를 때, 간혹 아키야마 씨, 하고 부를 때 그의 목소리에서 나는 다른 울림을 보았다. 그는 평소와 같이 무심하고 사적인 일로 타인과 말 섞는 것을 어색해했으나 그가 나를 부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잿빛의 홍채에 섞인 푸르스름한 테두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인상을 찡그리며 모니터를 바라보다 키보드 소리가 멈췄을 때 그는 평소보다 단 것을 좋아했고 나는 그걸 기민하게 알아차려 그의 커피에 약간의 시럽과 우유를 섞었다. 형식적인 감사인사 뒤에 컵의 내용물이 목 뒤로 넘어갔을 때 부드럽게 유영하는 얼굴이 좋았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그의 시선이 어느 먼 곳을 향할 때면 그가 무엇을 보는지 궁금했고 그 시선이 나에게 향하길 바랐다.
그러나 막상 나는 그렇게 되니 아주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에게 수없이 사랑한다고 되뇌었으나 그가 처음으로 그렇게 말했을 때, 아주 혼란스러웠다. 네. 아. 네. 그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으나 이내 다시 나에게 어깨를 맞대었다. 내게 닿는 살갗의 감촉이, 그 온기가 혼란스러웠다. 손 끝의 감촉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을 때가 좋았을까? 그러나 나는 무엇으로 내가 만족할 수 있는지 몰랐다. 그가 내게 사랑을 속삭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반사될 때마다, 그 안의 내가 어색하게 웃는 것 역시 보았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가 나를 사랑하는 걸 바라는게 아니었을까? 당혹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조금씩 깊어진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행복했고 그가 다른 곳을 보면 화가 났다. 가끔은, 당연하게도 깜박이는 눈꺼풀마저 핀을 꽂아넣어 그대로 박제시켜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긴 게 아닌 흉터자국을 볼 때마다 나는 그걸 아예 지져버리거나 잡아뜯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후시미 씨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후시미 씨도, 어느 쪽이든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혼란스러웠던 감각이 차분해진다. 감기지 못한 눈동자에 내가 들어있었다. 색색거리며 힘겹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아,키야마… 하고 내 이름을 불렀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만족했다. 새하얗게 질린 피부에 핏기가 하나도 없다. 그렇겠지. 전부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는걸. 굳어버린 손마디는 예전의 기억과 같았으나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그는 이제 꼭 내가 원하는 후시미 씨가 되었다. 빠져나간 것들은 쓸데없는 것들 뿐이다. 왕의 힘을 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예리한 샤벨을 빼면 울컥거리며 흘렀으나, 고여있던 게 흘렀을 뿐. 처음처럼 힘있게 퍼져나가지는 못한 채로 곧 섞여 사라졌다. 그의 뒤로 둥그렇게 고여 왕관처럼 튀어올라 퍼져나간 모양이 꼭 거대한 날개 같다고 생각했다. 후시미 씨는, 그렇구나. 나비일 지도 모른다. 덥썩 잡아버리면 일그러진 날개와 손에 남는 찐득한 분진 뿐. 그 기괴함에 털어내버리고야 마는. 다행히 망가지지는 않았으니, 표본, 을 만들면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