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2기가 화려한 석판 폭발로 마무리 된 마당에 새삼스럽게 예전에 펑크낸 책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2014년 우타케이 때 냈던 적청 'pseudo code' 내용의 약 반 세기 이후. 무나후시 역키잡, 후시미가 무나카타를 키우고 현 시점에선 고등학생x24살(?) 정도 됩니다.
아직 설정이나 스토리가 정리가 안됐지만 꼭 올해 안에는 제대로 써보고 싶어서...뒤를 잇게 된다면 카테고리를 옮겨갈 수 있겠죠.
일단은 아주 짤막한 프롤로그. 당연하지만 설정이 설정이라 말투 등 여러 면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캐붕주의.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길었던 교복소매가 한 번 계절이 바뀌자마자 꼭 맞게 변했다. 긴 소매의 단추를 잠그면서 무나카타 레이시는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또래에 비하면 충분히 큰 키였다. 더 이상 크지는 않을 거라고, 언젠가 무나카타는 거울 너머로 눈을 맞추며 말했으나 그는 단호했다. 상대의 눈높이는 원근감을 감안해도 무나카타와 비슷했다.
조만간 못 입게 될 걸.
눈동자가 무나카타를 무감하게 한 번 훑고 가더니 점원에게 한 사이즈 더 큰 것을 요청했다. 무나카타는 부득불 지금의 사이즈를 고집해보려다 말았다. 무나카타 레이시는 살면서 무언가를 그토록 원하거나 갈망한 적 없었다. 간혹 불이 붙곤 하는 쓸데없는 오기는 전자레인지로 데운 우유보다도 빠르게 식었다.
무엇보다, 그는 무나카타의 취향과 성장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때로 무나카타는 저의 생장이 먼저인지 그의 말이 먼저인지 의심스러웠다. 그의 말은 예언처럼 무나카타 레이시를 만들어갔고 그래서 무나카타는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예전엔 다른 아이들처럼 빨리 자라고 싶었다. 지금의 그는 무나카타가 무엇을 하든 내버려 두었고 어떻게 보면 무관심과도 비슷했지만, 희미한 무나카타의 기억 속에서 한 때 그는 정말 무나카타가 무얼 하겠다고 말만 해도, 매순간마다 심장이 떨어질 듯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어린 무나카타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제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키도 크고, 손도 크고, 쉽게 넘어지지도 않고, 고작 강풍이 분다고 해서 날아가지도 않는 그런 어른.
무나카타가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 그는 한시름 놓은 듯 했으나 때때로 그의 눈에선 여전히 무나카타가 감지할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다. 무나카타와 관련된 확정적인 미래형의 문장들은 무나카타가 아니라 반대로 그를 옭아매고 있는 듯 했다. 그리하여 무나카타는 그의 이유없는 불안, 이유없는 확신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고 싶었다.
열두살이 된 이후부턴 키가 1년에 10cm씩 컸다. 무나카타는 남들이 성적표를 받고 좌절하는 만큼, 성장기록부를 보며 좌절했다. 키 크지 않는 법을 검색했다. 나올 리가 없었다. 반대로 키 크는 법을 검색했다. 성장호르몬이 활발하게 분비되는 10시부터 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우유는 마시지 않았다.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은 무나카타는 본디 밤잠이 없었기 때문이고, 우유는 그가 좋아하지 않아 냉장고에 있던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키는 이대로 멈출까.
꼭 맞게 떨어지는 소매를 보며 무나카타 레이시는 생각한다. 작아질 수는 없으니 더 커지면 되겠지만, 길이가 딱 맞게 된 교복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은 크지도 않을 것 같다. 상념을 떨쳐내고 무나카타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소매에 의식이 묶여 있던 시간은 의외로 길었는지 시간은 평소보다 5분쯤 늦어 있었다. 무나카타는 프라이팬에 버터를 바르고 빵을 굽는다. 어린애처럼 야채는 입에도 대지 않는 남자를 생각하며 샐러드는 조금만, 서니업사이드 하나와 제가 먹을 완숙프라이 하나, 우유 대신 오렌지주스를 각각의 잔에 따르고 무나카타는 방문 앞에 선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 일단은 그런 관계일터인데, 죽어도 그 말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긴장하고, 망설이고, 문을 두드리고, 열고, 무나카타는 컴컴한 방의 커튼을 걷으며 말한다.
"후시미 씨."
그를 그렇게 칭할 때마다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무나카타는 다른 대체어를 찾지 못하고 매일 그렇게 부른다.
싫은 건 아니었다. 가족의 정이라기엔 뭔가 탐탁치 않지만 그는 무나카타를 키워주었고 여전히 함께 살고 있었다. 살가운 대화가 오가는 건 아니지만 그가 무나카타에게 신경을 쓰는 것도 분명했다. 무엇보다 무나카타는.
"일어나세요, 후시미 씨."
청량한 가을의 아침햇살 밑에서 얇은 눈꺼풀이 들어올려진다. 엷은 회색의 홍채는 햇살 속에선 가끔 엷은 파랑으로 빛나곤 했다. 제 목소리에 응해 일어나, 잠에서 덜 깬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저를 응시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