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
"덥슴다, 미도리맛치."
"한 번 더 샤워해."
"샤워실에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나가기 싫어질 것 같아요."
"물낭비군."
"하지만 덥단 말이에요. 죽어도 이 밖으로 나가기 싫어!!!"
"하계훈련은 어떻게 하는 거냐. 집에는 가야만 되는 거다."
"으아아아아 싫어요!!!! 그건 어떻게든 됐지만 여기 그냥 있고 싶어!!!"
등치는 산만한 중학생이 탈의실 바닥에 누워 땡깡 부리는 건 결코 좋은 광경이 아니다. 미도리마는 눈쌀을 찌푸리며 바닥에 딱 붙어 징징대는 키세를 한 대 찰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래봤자 키세는 아프다고 또 징징대고 10분이고 20분이고 시간을 끌 게 분명했다.
"…난 갈거다. 알아서 해."
가방을 집어들고 탈의실 문을 여는 미도리마의 말에 키세가 울상이다.
"너무해요, 미도리맛치! 친구를 이렇게 버리고 가다니 미도리맛치는 애정결핍이에요!!"
"그딴 걸로 이상한 타이틀 붙이지 마."
"으으 가기 싫어. 근데 미도리맛치랑은 같이 가고 싶어…."
"그럼 일어나든가. 10초 안에 안 일어나면 버리고 갈 거다. 10."
"아이스크림 사줘요, 미도리맛치."
"내가 왜. 9. 8."
"하나만 사주면 안돼요? 저 오늘 땡전 한 푼 없단 말임다."
"7, 6, 5…"
"알았어요, 가요, 간다니까요."
여전히 울상인 얼굴로 키세가 가방을 챙겨 나오면 미도리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내가 이런 보모 같은 짓을 해야되는 건가. 1on1은 아오미네랑 하면서 같이 가는 건 이상하게 자신을 고집하는 키세의 모습에 여전히 미묘한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미도리마는 키세를 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세등등하게 나오긴 했지만 사실 30도가 넘는 땡볕에 아스팔트의 복사열, 습한 바람이 겹쳐지니 미도리마는 죽을 맛이긴 했다. 조금 걷자마자 땀이 나 흘러내리는 안경을 밀어올리고 있으면 키세는 이미 흐물흐물해져서 걸어가는 건지 기어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키세가 이렇게 더위를 많이 탔던가? 어쩐지 조금 죄책감이 몰려오고 있으려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키세가 입을 열었다.
"미도리맛치 지금 절 되게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니."
뜨끔한 구석이 없잖아 있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해 줄 필요는 없었다.
"왜요? 이렇게 잘 생기고 멋진 제가 더위에 죽어가고 있는데 왜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거에요? 미도리맛치는 감정결핍임까?"
"너 어디서 '결핍증'이란 단어 보고 멋있다고라도 생각한 거냐."
"엇? 어떻게 알았슴까?"
그럼 그렇지. 미도리마가 혀를 쯧, 하고 차면 키세가 다시 미도리마의 팔을 붙잡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뭐가 어쨌든 좋으니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미도리맛치! 저 진짜 먹고 싶다구요, 하겐다즈 바닐라!"
"얻어먹기엔 범위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진 않는 거냐."
키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미도리마에게 얻어먹는 아이스크림인 것 같고 마침 앞에는 매일 가던 편의점도 있었다. 짤랑거리는 벨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편의점으로 들어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좀 살 것 같았다.
"고르는 거다. 하겐다즈는 빼고."
"으아? 정말요? 정말 사주는 거에요, 미도리맛치?"
"그냥 나가도 상관없다만."
"아니, 아님다! 고르겠슴다! 얏호, 신난다!"
갑자기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린 미도리마의 태도에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따라 온 키세지만 미도리마의 말에 신이 나서 냉장고 안을 뒤적이며 뭘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졸라대더니 정작 사준다고 하니 고민하고 있는 걸 보면 미도리마가 정말 사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키세가 고른 것은 다행히도 하겐다즈 바닐라가 아니라 평범한 소다맛 아이스크림이었다. 키세가 내민 아이스크림과 자신의 것을 들고 가 계산하고 문을 열면 뒤에서 키세가 답싹 매달렸다.
"미도리맛치, 아이스크림 고맙슴다! 잘 먹을게요!"
키세의 숨이 닿는 목 뒤가 후끈후끈 간지럽다. 미도리마는 등 뒤를 타고 오는 근지러운 기분에 미도리마는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며 키세를 떼어냈다.
"더운데 더 덥게 만드는 건 사양인거다."
아이스크림을 까고 입에 물면 냉기가 입 안으로 사르르르 올라왔지만 키세가 떨어진 지금에도 어쩐지 목 뒤가 자꾸 신경쓰여 미도리마는 목을 잠깐 쓸어내렸다.
"그나저나 미도리맛치 그거 팥맛임까?"
하늘빛 소다색의 아이스크림을 물고 키세가 희안하다는 듯 묻는다.
"그렇다만."
"미도리맛치 진짜 입맛 이상함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단팥죽에 아이스크림까지 단팥이라니."
"너한테 그런 핀잔 들을 이유는 없다고 보는거다."
"애늙은이 같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다고 하는 거다."
"미도리맛치는 10대의 풋풋함이 없어요."
"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당연하죠. 저처럼 풋풋한 중딩이 세상에 어딨슴까?"
그러면서 한 바퀴 빙 돌더니 와그작 아이스크림을 깨물며 윙크하는 키세가 어이없으면서도 동시에 왜 모델을 하는지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확실히, 키세는 얼굴은 둘째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둘째치더라도.
"그래서 왜 내 아이스크림을 먹는 거지?"
잠시 들고 있었더니 어느 새 키세가 와서 미도리마의 아이스크림을 깨물어 삼켰다.
"맛없슴다."
"맛없으면 먹질 마. 너 때문에 내 아이스크림은 1/5이나 줄어든 거다."
"미도리맛치가 먹길래 무슨 맛인가 했죠! 그걸 무슨 맛으로 먹슴까? 역시 미도리맛치는 늙었어요."
"얻어먹고 뺏어먹는 주제에 비난하는 건 아닌거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검다! 맛 없는 건 맛 없는 거에요! 미도리맛치는 늙었다니까요!"
빼액- 소리를 지르고 앞으로 종종 튀어나가는 키세의 말에 미도리마는 어이가 없어 헛숨을 내뱉었다. 애늙은이 같은 미도리맛치랑 완전 풋풋한 나는 진짜 안 어울리는데 왜… 라고 중얼대는 키세의 말은 그 사이에 여름의 열기 속으로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