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에서 리퀘받았는데 솔직한 심정으론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다 저기요 저 그런거 진짜 못쓰는데 엉엉엉엉ㅠㅠㅠ 님의 기대치가 무한대라면 나는 0에 수렴한단 말야!!!! 녹황 좋은데 이런 알콩달콩하기만 한 건 쓸 수가 없는 더러운 시리어스앵슷취향. 근데 자기가 쓰고 싶은 것만 쓰려면 애초에 리퀘를 받지 말았어야 되는거고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썼지만 실패한 거고......
리퀘주 죄송합니다.... 사과의 말씀.....
이제 K만 기다리자 K 시름시름...... 진짜 녹황 좋은데 미도리마 말투 때려주고 싶음.
기온 25℃, 습도 10%, 바람은 약함, 하늘은 맑음, 구름 없음, 오늘 게자리의 운세는 최고에 럭키아이템인 파란색 가방도 챙겼다. 나름대로의 대사도 준비해놨고 순서도 경우의 수에 따라 클리어. 이런 날을 고른 자신에게 퍽 흡족해하며 밖으로 나가려던 미도리마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휴대전화를 꺼냈다.
「미도리맛치 오늘 저 안나가면 안될까여ㅠ」
「무슨 일 있는건가? 없으면 그냥 나오는 거다.」
「미도리맛치는 괜찮은 거에요? 저 만나는거?ㅠ」
무슨 소릴 하는거지? 키세의 문자는 어쩐지 영문 모를 말이라서 미도리마는 잠시 고민을 하다 간결하게 문자를 보냈다.
「지각이라면 죽는거다.」
기온 25℃, 습도 10%, 바람은 약함, 하늘은 맑음, 구름 없음, 오늘 게자리의 운세는 최고에 럭키아이템인 파란색 가방도 챙겼다. 거울을 보면 모든 게 완벽한 데도 키세의 문자는 찝찝하기 짝이 없었다.
"미도리맛치. 여김다~"
약속장소인 역 앞으로 나가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키세가 청바지에 흰 프린팅 티셔츠, 모자를 뒤집어 쓰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심플한 복장이지만 역시 현직 모델이라는 건지 주변에서 누구라도 한 번쯤 뒤돌아 볼 정도로 스타일은 좋았다. 오늘의 목적은 일단은 쇼핑. 쇼핑도 겸사겸사 데이트… 라는 생각이지만 글쎄. 키세는 별로 그런 데까진 생각하고 있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미도리맛치? 뭐 사려구요?"
"아아, 농구화랑 티셔츠 정도…."
"그럼 나도 살래요!"
"충동구매는 안 좋은 거다."
"뭐 어떻슴까. 저도 마침 옷 사려고 했으니까 괜찮아요. 그럼 저 쪽에 쇼핑몰 갈까요?"
그렇게 말하며 키세는 성큼성큼 앞장 서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상하군. 어딘가 묘하게 평소와는 다른 기분을 느끼며 미도리마는 키세의 뒤를 따라갔다.
"미도리맛치, 이거 예쁘지 않아요?"
이건 어때요? 이건? 이것도 예쁨다. 우와 이번에 새로 나온 거래요!
기분 탓이었나. 쇼핑몰에 들어가자마자 키세는 잔뜩 들떠서 미도리마에게 이것저것 권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해서 가격대만 맞으면 대충 고를 모양이었지만 키세는 전혀 아니었다. 이것저것 골라서 미도리마에게 한 번씩 신으라고 부추기고는 이것저것 어울린다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도리맛치는 어떤 게 제일 맘에 들어요? 역시 하얀색?"
"그것도 괜찮지만…."
"그럼 이거?"
"나쁘지 않군."
"뭡니까, 미도리맛치. 좀 더 의견 피력을 확실히 해줬음 좋겠슴다. 어렵잖아요."
"너는?"
"제 걸 사는 게 아니니까요."
"네가 골라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무심코 그렇게 말하면 약간의 공백 끝에 키세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됨까?"
"뭐가?"
"아니… 역시 미도리맛치가 신을 거니까 미도리맛치가 고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별로 상관없는 거다."
그렇게 말하면 키세는 조금 주저하다 이게, 괜찮은 것 같슴다 하고 한 켤레를 골랐다. 미도리마의 눈에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미도리마는 주저없이 결제했다.
아니, 오늘의 키세는 역시 이상하다.
아침의 감은 틀리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하며 미도리마는 반 발자국 앞서가는 키세를 쳐다보았다. 운동화부터 시작해서 옷을 고르는 것도 평소라면 분명 이것저것 잔뜩 권하며 골라주거나 부추겼을 텐데 어쩐지 소극적이었다. 게다가 이 거리.
키세의 등 말고는 모자를 눌러 써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키세는 늘 다른 사람과 보폭을 맞춰 옆에서 걸었다. 바짝 옆에 달라붙고는 무슨 일이 있다면 손이나 팔을 잡아끄는 것 같은 행동도 서슴치 않았을 텐데.
- 그러고보니 오늘은 닿은 적도 없었나?
무심코 미도리마는 왼쪽 손을 내려다보았다. 키세는 체온이 높은건지 손 끝만 닿아도 테이핑 너머로 그 온도가 느껴졌었다. 처음으로 키세가 손을 잡았을 때 깜짝 놀랐을 정도였으니까. 손 잡아도 됨까? 울면서 고백한 끝에 키세는 눈물을 훔치고는 그렇게 말했다. 눈물 범벅으로 축축한 손은 생각보다 기분 나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따뜻해서 좋―
아니아니아니. 아닌거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순간 이상한 쪽으로 빠져든 생각에 미도리마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미도리맛치, 뭔 일 있슴까?"
뒤에서 따라오지 않는 미도리마가 의아했는지 고개를 돌아본 키세가 갸웃거리며 묻는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거다."
"그렇슴까. 이제 살 건 다 산검까?"
"그런 거 같군."
미도리마의 손에 들린 건 오늘 산 운동화와 티셔츠. 일단 소정의 목표는 달성했는데 그 다음, 다음이 문제다. 머릿 속에서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키세가 좋아하는 디저트류가 맛있는 카페가 근처에 두 곳, 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영화는 한 시간 후에 시간이 있고 저녁은…
"그럼 돌아갈까요?"
어젯 밤까지 인터넷을 뒤지며 숙지한 계획을 키세는 완벽하게 깨뜨려 놓는 말을 꺼냈다.
"왜, 왜인거다?"
당황한 미도리마가 소리치면 키세도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쇼핑 다 한 거 아님까?"
"넌 오늘 진짜 쇼핑만 하려고 했던건가."
"그게 아니면 뭠까?"
여전히 모르는 듯한 키세의 눈초리에 무어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여긴 길 한복판에 그런 말을 미도리마의 입으로는 꺼내기가 민망했다. 일단 키세를 끌고 큰 길에서 인적 드문 골목으로 빠지면 키세는 의아해하면서도 얌전히 따라왔다. 뭐에요, 미도리맛치? 빤히 쳐다보는 얼굴은 알면서 그러는건지 모르면서 그러는 건지. 할 말은 많은데 뭣부터 얘길 꺼내야 할지. 말을 하려면 할수록 부끄럽고 민망한 기분이라 미도리마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는 지난주에 분명 나한테 고백을 한거다, 키세."
"그…랬죠."
"그리고 나는 괜…찮다, 고 대답을 한 거다."
고르고 고른 단어인데도 어쩐지 얼굴로 열이 잔뜩 쏠리는 것 같다. 가을이라고 해도 아직은 따가운 태양에 체온이 잔뜩 올라 얼굴이 홧홧해졌지만 할 말은 해야했다.
"그…그런 것치고는 네 태도가 문제인 거다 키세."
"네?"
"연애 같은 거 잘 안해봐서 모르지만, 서로 그… 어쨌든 그런 사이가 됐는데 둘이 만나는 건 데이트가 아닌건가?"
"…."
"무슨 일이 있는건가? 아침엔 만나지 말자고 문자를 보내질 않나, 평소에는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걸 텐데 말도 잘 안하고 보폭도 전혀 맞추지 않고 앞서 나가는 거다. 문제가 있다면 똑바로 얘기해."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날카롭게 나간 말에 키세의 고개가 점점 숙여지고 챙을 푹 눌러쓴다. 그 태도에 아차 싶어 미도리마도 입을 다물었지만 키세는 바닥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공백이 내려앉은 이후 키세가 발로 괜히 맨 땅을 두어번 툭툭 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미도리맛치."
"왜?"
"오늘 오하아사 봤죠?"
"당연한 거다."
"저 무슨 자리게요?"
"쌍둥이 자리."
"알고는 있네요."
"당연한 거다."
"그럼 그것도 알겠네요. 오늘 게자리랑 쌍둥이 자리 궁합은 최악임다."
뜬금없이 오하아사 얘기로 흘러가더니 키세는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도리맛치, 엄청 신경 쓰잖아요. 예전에는 아예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했고. 나름대로 미도리맛치한테 고백하고 나서 처음으로 둘이 나가는 거니까 데…이트…가 아닐까 해서 어젯밤 내내 맛집이나 이런 거 검색해놨는데 아침부터 그렇게 나오니까 쇼크였슴다. 그래서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도리맛치는 안 나오면 죽는다고 문자 보내고 나오긴 했지만 저만 들떠있고 미도리맛치는 쇼핑만 하면 진짜 헤어질 것 같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키세는 민망한 건지 계속 모자챙만 만지작거리면서 얼굴이 보이지 않게 꼭꼭 눌러썼다. 그러고보니 오늘 오하아사에 그런 내용이 있긴 있더랬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던 부분이라 오히려 키세가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게 당황스러웠지만 생각보다 별 일 아니라서 미도리마는 조금 긴장하고 있던 맘을 풀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키세."
"네?"
"나는 원래 운이 좋은데다 오늘 게자리의 운세는 최고인거다. 럭키 아이템도 챙겼고."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임까."
"네 불행이나 최악의 궁합같은 건 간단히 물리칠 수 있다는 거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이다. 모든 일은 진인사대천명, 노력은 할 만큼 했고 그에 상응해 하늘의 뜻이 더해져 성공하는 것.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네까짓 걸로 천명이 흔들릴 리가 없는거다, 키세. 게다가."
그렇게 말하며 아직까지도 꽉 누르고 있는 키세의 모자를 벗기면 겨우 오늘 처음으로 키세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이 쪽이 훨씬 낫군. 모자에 눌린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어 있는 게 우스워 보이긴 했지만 키세는 얼굴을 내놓고 다니는 편이 훨씬 나았다.
"내가 누군가랑 사귀게 된다면 당연히 거기엔 하늘의 뜻도 포함되어 있는거다."
"…미도리맛치, 자만심이 하늘을 찌름다."
당연한 말인 거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오늘 하루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 맘에 들지 않아 불퉁하게 대답하면 키세는 실실 웃으면서 다시 되물었다.
"그래도 저 방금 굉장한 고백 받은 거 맞죠? 미도리맛치한테 그런 말 들을 줄 꿈에도 상상 못해서 엄청 기쁨다."
뺨이 발갛게 상기된 키세가 환하게 웃으면서 미도리마가 앞서 한 말을 그대로 읊어주면 미도리마는 잊고 있던 열이 다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라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면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키세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그럼 저 오늘 미도리맛치 옆에 붙어 있어도 되는검까, 우리 영화 봐요! 아님 카페? 밥이라도 먹을까요? 어때요, 미도리맛치? 신이 나서 날아다닐 것처럼 붕붕대는 게 정신 없을 지경이었다. 뭐, 소심하게 있는 것보단 이 쪽이 훨씬 키세다운 얼굴이었지만.
"뭐든지 적당히 하는 게 좋은 거다, 적당히."
"뭐가 말임까?"
"너무 들떴다는 거다."
"그치만 미도리맛치랑 첫 데이트인 검다. 들뜨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요? 어디로 갈까요. 카페?"
"맘대로 하는거다… 아, 그러고보니 저 쪽 골목에 케이크가 괜찮은 카페가 있다던데."
"그럼 거기서 좀 있다가 저녁?"
'첫 데이트'란 말에 미도리마의 머리도 겨우 다시 제기능을 하게 되었다. 어제 쭉 뽑아놨던 일정과 리스트를 상기하며 미도리마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미도리맛치."
"또 무슨 일인거냐, 키세."
"손 잡아도 됨까?"
겨우 나란히 선 키세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미도리마에게 묻는다. 닿지 않아도 키세의 들뜬 체온이 느껴진다. 희고 긴 손가락이 얽어들어오는 감촉과 고동을 미도리마는 알고 있었다.
"…그런 건 묻지 않아도 당연한 거다."
맨 손으로 잡는 기분도 분명 좋겠지. 조금 있다 시간이 나면 한 번 테이핑을 풀어보자. 오늘 게자리의 운세는 최고고 사람이 서로가 맘이 맞아 사귀게 될 확률은 극히 적은 확률이라고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이렇게 사귀게 되었다면 거기엔 매일의 운세보다 더 강력한 하늘의 뜻이 따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