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이미지가 확실치 않아서 모처에서 리퀘를 받았었는데 미도리마 말꼬리 진짜 으아아아아아아!!!
키세는 귀엽고 미도리마는 안경인데 왜 안 흥하는 거죠, 녹황? 이해할 수 없어ㅠ 미도리마 이 고자야ㅠㅠㅠ
"미도리맛치~"
미도리맛치~ 미 도 리 맛 치 ?
슬쩍 눈동자를 위로 돌려 바라본 키세의 입술이 조그맣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미도리마를 불러댔지만 미도리마는 다시 눈을 아래로 내렸다. 귀찮은 거다, 이 녀석은. 속으로 중얼거려봤자 타인의 태도에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기분대로 휘둘러야 만족하는 녀석이기에 포기하진 않겠지만 소중한 독서시간을 방해받는 것은 질색이다. 몇 번을 불러도 미동이 없는 미도리마의 태도에 키세는 심심한 지 눈 앞의 잡지를 몇 장 슬슬 넘겨보다가 이번에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노트와 펜을 꺼낸다.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몹시도 신경쓰여 미도리마는 전혀 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도서실에서 자꾸 꿈지럭거리면 민폐인 것이다!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다시 한 번 키세를 슬쩍 바라보면 키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노트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이내 고개를 든 키세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책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도 키세에겐 딱 걸린 모양인지 키세가 환하게 웃고는 노트를 쭉 찢어 접더니 미도리마에게 접어 던진다.
「미도리맛치 우리 아이스크림 먹어요>///<」
쪽지와 키세의 싱글생글한 얼굴을 번갈아 보다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책으로 내리면 키세는 또 꼬리내린 강아지 표정. 시무룩한 얼굴에 마음이 흔들리긴 하지만 이젠 오기가 생겨 나갈 수가 없다. 어떻게든 다 읽고 도서실을 나가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책에 열중하고 있으려면 키세는 잡지를 책장에 꽂아놓고 다른 책을 들고 온다. 이번에는 소설. 제법 인기있는 로맨스 소설이었지만 키세가 볼 리는 만무하고 그냥 제목이 끌리는 대로 가져왔을게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표지 넘기고 목차 넘기고 열 장 읽더니 키세는 책상에 푹 퍼져버린다. 온 몸으로 심심해요, 미도리맛치! 라고 외치는 것 같지만 애초에 심심하면 오질 말았어야지!
톡톡, 톡톡, 긴 손가락이 일정한 리듬을 그리며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하고 긴 다리가 책상 밑에서 버둥대며 자꾸 미도리마의 무릎에 닿는다.
"가만히 있어, 키세."
한 번도 열리지 않던 미도리마의 입이 열리자 키세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퍽 기쁜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책상에 엎어져 있던 상체를 들고 키세는 소리없이 왁왁거리며 함박웃음을 짓고 또 소리없이 미도리맛치! 미도리맛치! 하고 외쳐댄다. 외면하기에는 키세가 너무 하이텐션이라 미도리마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혹시 몰라 책장 사이에 작은 책갈피를 껴두었다.
도서관에 와서 인사할 때를 빼고 키세가 맞은 편에 앉아 온갖 짓을 할 때까지 제대로 고개 한 번 들지 않던 미도리마가 고개를 들고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 게 기뻤는지 키세가 상체를 앞으로 쭉 빼고는 헤헤, 하고 시덥잖은 웃음을 흘리며 묻는다.
"미도리맛치 무슨 책 읽슴까?"
"미스테리."
"누구?"
"미야베 미유키."
"재밌슴까?"
"재밌어."
"나랑 노는 것보다 더?"
키세의 당돌한 질문에 미도리마는 순간 허, 헛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 녀석이랑 말을 섞느니 차라리 신경 쓰이더라도 계속 무시하고 책이나 읽을 것을.
"당연한 것이다."
딱 잘라내는 말에 키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지만 미도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책 읽을거니까 너도 조용히 있든가 할 일 없으면 집에 가든가."
그렇게 단칼에 잘라내고 미도리마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키세가 다시 의자에 털썩 앉는 소리를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기면 스토리는 제법 중요한 국면으로 다다르고 있어 미도리마는 곧 키세는 잊어버리고 겨우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책에 집중했다는 건 착각이었던 것 같다.
한 부분 고비를 넘기고 주인공이 약간 숨을 돌리게 되었을 때였을까 문득 시선 끝에 키세의 자리가 공석이라 정말로 집에 갔나? 생각하고 있으려면 저 끝에서 여자애들의 꺅꺅대는 소리와 함께 키세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소곤대는 소리였지만 조용한 도서관에서 들리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헤에, 그래서 키세 군은 농구도 하고 모델일도 하는 거에요?"
"굉장하다. 힘들지 않아요?"
"별로? 농구는 처음 해보는데 재밌슴다."
"키세 군 손 한 번만 봐도 돼요? 손이 되게 큰 거 같아서요."
"상관없슴다. 이케요?"
고개를 들어 소리의 근원지를 찾고 있으면 저 쪽 책장 끝에서 키세가 몇몇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농구부니까 당연하지만, 키도 크면 손도 크기 마련이다. 게다가 상대가 여학생이라면 당연히 맞대 볼 필요도 없고 단지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는 구실임을 뻔히 아는지 모르는지 키세는 거리낌없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주변 여학생들이 순간 조그맣게 꺅꺅거렸지만 불행히도 이를 제지할 새학기에 우중충하게 도서실에 쳐박혀 있는 사람은 미도리마 뿐이었다. 까짓거 그냥 무시하자 싶었지만 여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키세의 즐거운 듯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미도리마의 귓가를 울렸고 아무리 책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활자가 키세의 목소리와 함께 들떠 춤추고 있었다. 어쩐지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다 안경을 밀어올리고 키세를 보면 키세는 놀랍게도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도리마와 눈이 마주치자 키세가 조그맣게 혀를 쏙 내밀었다 넣고는 천연덕스럽게 여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무슨 얘길 하는지 여학생들과 고개를 맞대곤 소곤대다, 웃고, 다시 한 번 미도리마를 보면서 혀를 내밀어 메롱.
저, 녀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면 의자가 드륵 밀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키세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오는 미도리마의 얼굴에 눈만 껌벅거린다.
"키세 료타."
"왜, 왜요… 미도리맛…치…?"
지은 죄가 있으니 키세도 반쯤 겁먹고 혀를 길게 빼고 귀여운 척 뒷머리를 긁으며 웃지만 여학생들이라면 몰라도 미도리마에게 당연히 그런 게 통할 리가 없다. 주변에서 떠들던 여학생들도 갑작스런 미도리마의 등장에 입을 꾹 다물고 심상찮은 기운을 눈치챘는지 뒤로 스물스물 물러나더니 어느 새 쏙 빠지곤 도서실 밖으로 후다닥 달아난다. 사서를 빼고는 드디어 조용해진 도서관이었지만 어차피 키세가 있으면 미도리마가 더 이상 책에 집중하지 못할 것은 뻔했다. 이제 책은 100페이지도 안 남았지만 미도리마는 키세만 없었다면 적어도 지금쯤 다 읽고 깔끔한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미도리맛치…?"
부글부글 끓는 속마음을 꾹꾹 누르며 빤히 바라보는 키세에게 미도리마는 최후의 추방령을 내렸다.
"당장, 도서실에서 짐 싸서 나가."
"엣? 자, 잠깐만요? 너무함다, 미도리맛치!"
"시끄러. 네가 있으면 정신산만해서 도저히 집중이 안되는 거다. 할 일 없으면 그냥 집에 가, 노닥거리지 말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미도리마가 친절하게 책상 위에 놓여있던 키세의 노트와 필통도 전부 가방에 쓸어넣고 건네주면 키세는 울멍울멍한 눈으로 너무해요, 너무해요, 미도리맛치! 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런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미도리마에겐 통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고개를 든 사서에게 눈인사를 하고 미도리마는 문을 열고 키세를 밖으로 쫓아낸 다음 문을 도서실의 미닫이문을 닫아버렸다.
도서실의 들뜬 공기가 겨우 고요하게 가라앉았지만 미도리마의 마음은 영 가라앉질 않았다.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고 주인공이 범인을 쫓아 긴박한 순간임에도 전혀 그 페이스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오늘 안에 다 읽고 가려던 책을 대여하고 문을 열고 밖에 나오면 순간 미도리마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앗, 아파요, 미도리맛치!"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키세가 예기치 못하게 미도리마의 발에 차인 허리를 짚으며 울상이다.
"아직 안 가고 있었나?"
"안가요!"
"왜?"
"그야 오늘은 미도리맛치랑 같이 가고 싶었으니까요!"
"왜?"
"그야…!"
"그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다 키세의 말문이 갑자기 닫힌다. 그야… 그거야, 그… 그러니까…. 더듬거리며 입을 여는 키세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키세가 입을 뻐끔거리다 눈을 꾹 감고 소리쳤다.
"어, 어쨌든 오늘은 미도리맛치랑 같이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슴다! 그러니까 같이 가요!"
양 손으로 미도리마의 팔목을 붙잡고 질질 끌고 가는 키세의 겁 먹은 얼굴에 미도리마는 갑자기 풋-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 손 놔."
"싫어요!"
"불편해."
"놓으면 그냥 갈거 잖아요!"
"안 가. 어차피 가는 방향은 같으니까 같이 가도록 하지."
괜시리 큼큼거리며 미도리마가 입을 열면 땅바닥만 보고 가던 키세가 팟- 하고 얼굴을 든다. 그 갑작스런 반응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미도리마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이스크림 사줄게."
거기까지 말하자 이제는 정말 키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조금 풀 죽어 있던 얼굴이 다시 완벽하게 살아나자 아까부터 미묘하게 술렁이던 가슴이 겨우 좀 가라앉았다. 미도리마는 무의식적으로 키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들떠서 왕왕거리는 키세를 보고 생각했다. 우울하거나 시무룩한 얼굴은 키세 료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