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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켄사쿄] 달려라 사코다 켄!
이치사쿄 전제의 켄→사쿄. 이치는 마키타 이치로입니다. 은천회 다각관계 맛있게 먹고 있는 지옥의 사쿄른.
전제가 되는 이치사쿄도 언젠가는 쓸 예정.
기본적으로 A3!는 기타 잡지 기사나 매체를 접할 여력은 없고 라이트한 신인 감독인데다 무과금 주의자이므로 모든 백스테를 열 수도 없고 일본어도 못해서 해석도 무리입니다. 고로 이래저래 날조가 많고 말투도 적절한 번역이 어려우므로 혹시 정보에 따라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오 컵라면 새로 나왔네. 이건 무슨 맛이냐? 출출한데 하나 살까. 야끼소바빵? 여긴 별로였는데. 초콜릿. 음 초콜릿은 괜찮지. 딸기? 우유? 쿠키앤크림? 아몬드? 아몬드라고 하면 역시 페레로로쉬인가. 좋아좋아. 그리고 자일리톨 껌 하나랑…….
사코다는 바구니를 들고 편의점을 세 바퀴쯤 돌았다. 온갖 물품을 들었다놨다 하면서도 별 의욕이 없어보이는 손님에게 점원의 눈이 꼿꼿이 향했지만 사코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리 돌아도 더 이상 먹을 건 더 이상 살 게 없어서 생활용품코너까지 가서 다시 세 바퀴를 돌아 괜찮아 보이는 걸 바구니에 던져넣고는 사코다는 물건을 다시 계산대 앞에 와르르 쏟아냈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삑삑대는 바코드 소리가 끊기기를 기다리다가 "아아! 그리고 저기 저거. 핑크색. 아 왜 확-한 거 있잖냐 저 쪽에." 사코다는 카운터 너머 긴 진열장을 가리키며 마지막 물품을 구매했다. 성의 없이 확인창에 YES를 누르고 "수고하십셔!" 우렁차게 외치고 나오면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아 겁나 추워! 초등학생처럼 콧물이 나오는 걸 훌쩍대면서도 사코다는 밤길을 느리게 걸었다. 가장 가까운 집 앞의 편의점을 두고도 멀리 역 앞의 번화가까지 나왔다. 번화가라고는 해도 시간이 늦어 가게의 간판은 모두 꺼져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뒷골목엔 이자카야의 붉은 등같은 것만이 깜빡였다. 춥고 어두운 날은 언제나 쓸쓸한 감상을 자아내기 마련이었다.
아니지. 밝고 빛나는 날에도, 덥고 습한 날에도 쓸쓸한 때가 있다. 왜냐하면 처음엔 분명 여름이었으니까.
냉동실에 하나 남은 소다맛 아이스바를 빨아먹으면서 사코다는 부지런히 사쿄의 책상 위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사코다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숫자놀음은 까막눈이고 잘하는 건 큰소리 치는 것, 운전(중장비 포함)은 자신있지만 실내에선 그다지 그 실력을 뽐낼 일이 없다. 없어야 되지만. 사코다는 형님들의 잡다한 심부름을 도맡아했고 혹은 연락책이었으며 그 외에 하는 일은 인상을 찡그리고 구부정한 자세로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사쿄의 책상을 정리하거나, 책상 위의 빈 잔에 물이나 커피나 차를 채우거나 간식을 가져다주거나 사쿄의 주의를 환기시켜 쉴 시간을 만들거나 하는 일뿐이었다. 조직 내에서 사코다를 경멸하는 쪽은 '후루이치의 개'라고 불렀고 호감이 있는 쪽은 '충견'이라고 불렀지만 어느 쪽이든 개라는 데는 변함 없었고 사코다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 말이 못내 마음에 안드는듯 사쿄는 진지하게 "어이, 사코다. 너도 슬슬 일을 하나 줄까?" 말했지만 재주가 없는 건 사쿄도, 사코다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형님의 충견이 될 수 있으면 영광임다!" 씩씩하게도 답하는 사코다를 보고 사쿄는 더 이상 얘기는 하지 않았다만, 지금도 넌지시 가끔 사코다를 바라보는 게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사코다 켄,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남자 중의 남자이며 순정과 의리를 모두 형님에게 바쳤으니 충견이 될 수 있다면 영광이라는 그 말엔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제아무리 후루이치의 개, 사코다 켄이라도 조금은 심심했는데 사무실의 에어컨이 고장나 사쿄의 아파트로 옮겨왔기 때문이었다. 단 둘이서. 사코다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킬 형님들은 에어컨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빠르게 휴일을 선언한 사쿄의 말에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사쿄의 곁을 떠나기 싫은 사코다만이 사쿄의 집에 있었다. 사쿄의 뒷바라지를 하러 왔다지만 방에서 일하고 있는 사쿄를 방해할 순 없으니 졸지에 사코다는 남의 집에서 빈둥대는 신세가 되었다.
"여어, 오늘도 고생이군 개."
"마키타 씨 오셨슴까."
그런 사코다를 구제해 준 것은 마키타 이치로였다. "사무실 문 닫았길래 보니 에어컨 고장나서 집에 갔다더라고?" 마키타는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들어가 냉동실의 문을 열고 부스럭대는 아이스크림 한 뭉치를 집어넣었다. 사코다가 먹고 있는 소다맛 아이스크림이었다.
"용건이 있으면 전화로 끝내, 마키타."
"오, 후루이치. 꼼짝않고 방에 있을 줄 알았더니 용케 나왔네."
"닥쳐. 용건은?"
"그렇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정도로 건조한 사이 아니잖아."
한번 집중하면 주변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사쿄가 어쩐 일로 금방 방에서 나왔다 싶었더니 한번 마키타가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헤에. 뭐 때문에 나오는지 모를 감탄사를 흘리며 사코다는 다 먹은 아이스바의 나무막대를 질겅질겅 씹었다. 마키타 이치로는 사쿄보다 4살이나 어리지만 사쿄에게 반말을 쓴다. 얻어 듣기로는 마키타가 사쿄보다 먼저 조직에 들어왔다고 했고 혹자는 사쿄가 조직에 들어오기 직전 신나게 두드려 팬 게 마키타라는 얘기도 했다. 마키타 개인에게 악감정은 없으나 경애하고 존경하는 형님을 비오는 날 먼지나게 때린 사람이라고 하면 조금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 과거야 이런 조직에선 발끝에 채일만큼 흔한 얘기고, 당사자인 사쿄도 전혀 신경쓰지 않으니 사코다가 그 까마득한 과거의 일에 대해 감정을 드러낼 일은 없겠지만 가끔은 좀 그랬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마키타가 사쿄에 귓가에 무어라 친근하게 속삭이는 지금.
조직의 말단인 사코다가 들어서는 안되는 얘기는 언제나 있었다. 외부의 일을 맡고 있는 사쿄와는 달리 마키타는 내부의 사람이었다. 조직 간의 항쟁이나 후계자 싸움이라든가 하는 드라마같은 거창한 얘기는 아니지만, 영화에 보면 있지 않은가. TOP SECRET, 붉은 도장 쾅쾅. 그것을 들을 짬은 사코다에겐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다.
"어때? 남은 얘기는 방에서 하자고."
"뭐, 잠, …마키타!"
막무가내로 사쿄의 손목을 잡아채고 방으로 들어가는 마키타에 놀라서 사코다는 빈둥대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님?! 놀란 사코다의 외침에 사쿄의 얼굴이 사코다 쪽으로 휙 돌아갔다. 방황하는 시선으로 마키타와 사코다를 둘러보던 사쿄는 한번 혀를 차고는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뒤져 꺼냈다.
"사코다."
"부르셨슴까, 형님!"
"담배 한 갑만 사와라."
"담배…임까?"
"아."
그러고는 사쿄는 마키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당장이라도 울리는 퍽-하는 소리가 손속이 없어 마키타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하게 명치에 들어오는 사쿄의 주먹은 한동안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아프다. "으, 우와, 진짜――." 제아무리 옛날옛적에 사쿄를 때려눕혔다던 마키타도 기습공격엔 당해낼 수 없다. 비틀거리며 상체를 굽힌 마키타의 종아리를 한 번 더 차면서 사쿄는 방으로 마키타를 밀어넣었다.
"―사코다."
"다, 다녀오겠슴다!"
방문을 닫기 전 저를 매섭게 째려보는 사쿄의 시선에 사코다는 후다닥 신발을 신고 문을 나왔다. 그렇게 나오고 나니 가장 중요한 것을 까먹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담배?"
편의점에서 파는 담배의 종류는 넉넉잡아 100개는 될 것이다. 사쿄가 흡연자였나 생각하면 아니었으나 세상에는 아주 가끔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었으니 모를 일이었다. 사쿄가 흡연자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쿄는 사코다에게 담배를 사오라고 시켰고 사코다는 그 기대에 부응하여 충실히 심부름을 완수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반쯤 쫓겨나듯 나온, 사코다의 존재가 무언가 방해가 되어 내보냈을 사쿄의 의지를 거스르고 집에 다시 들어가는 것은 과연 옳을까. 아니 이쯤되면 사실 사코다도 알고 있었다. 제가 궁금한 건 사와야 될 담배의 품목이 아니라 사쿄와 마키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가 궁금해서였다. 그저 방에 들어가는 걸로는 되지 않아서 사코다를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할 이유가 뭘까. 입에 물고 있는 나무막대가 물렁해지도록 질겅대던 사코다는 결국 단 한 번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사코다 켄이 죽을 때까지 모시고 살 후루이치 사쿄는 퍽 박학다식했다. 심심하면 이런저런 잡다한 얘기를 사코다에게 제법 해줬는데 그가 해준 얘기 중엔 무슨 신화 얘기가 있었다. 신에게서 항아리를 선물받은 여자는 동시에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말도 듣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항아리를 열어버린다. 그 안에서는 갑자기 무언가 쏟아져 나오고 여자는 놀라 황급히 항아리를 닫지만 이미 세상은 혼돈이라. 그 후 인류는 온갖 질병과 재난, 가난, 전쟁, 슬픔과 같은 재앙에 휩싸이게 되었다, 고.
그 항아리 안엔 쓸쓸함도 있었을 게 분명하다. 시기나 질투 같은 것도.
그 날 그 문을 열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사코다는 10분이면 되는 거리를 기어이 25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중간에 뭘 잃어버린 것 같아서 길을 다시 한 번 돌았고, 괜히 골목을 누볐으며, 길고양이와 눈싸움도 벌였다. 그러면서도 차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차가운 손잡이를 잡은 손은 곱아서 잘 구부러지지가 않았다.
"어이, 사코다."
"혀, 형님?!"
"어딜 싸돌아다니다 지금 들어와?"
"죄송함다! 마키타 씨는 가셨슴까?"
"당연한 소리."
그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몸이 노곤해지는 것이 밖이 꽤나 춥긴 한 모양이었다. 사코다는 실실 웃으며 사쿄의 옆에 앉았다.
"뭐냐."
테이블 위에 비닐봉지를 턱하니 얹어둔 사코다에게 사쿄는 짧게 묻는다. 사코다는 일단 봉투를 뒤져 핑크색 상자를 꺼냈다. "부탁하신 담배 사왔슴다." 사쿄는 마키타가 오면 늘 담배를 핑계로 사코다를 내보냈지만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사쿄가 사온 담배는 대체로 마키타에게 간다는 사실을 사코다는 잘 알았다. 마키타가 피우는 담배는 알고 있다. 중후한 맛에 깔끔한 패키지를 자랑해, 멘솔인데다 핑크색인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쿄도 그 앳된 분홍색에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눈을 가늘게 떴지만 비흡연자가 알 도리는 없고, 이런 심부름을 시킨 직후의 사쿄는 필요도 없는 심부름에, 하필이면 미성년자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는 죄책감에 유독 말수가 줄어들곤 했다. 그 죄책감을 한껏 이용하며 사코다는 자일리톨 껌과 휴대용 양치 세트, 구강청결제, 탈취제 같은 걸 우르르 쏟아냈다.
"요즘은 이런 게 매너라는데요, 형님."
검소, 절제, 절약. 아끼는 것만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사쿄의 미간이 지나치게 좁혀져 사코다는 내심 움찔했지만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냄새가 나잖슴까." 냄새가 나긴 뭘 나. 비흡연자인 사쿄는 도무지 쓸 일이 없지만 어쨌든 사코다가 사왔으므로 누구에게 주지도 못할 것이다. 선물 받은 걸 남에게 주는 매너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리고 이 쓸모없는 잡동사니를 보며 무언가 경각심을 갖게 되겠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런 심부름을 시키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사코다의 최종 목표였다.
"…수고했다."
전혀 고맙지 않은 표정으로 사코다를 보는 사쿄의 얼굴에 사코다는 그저 웃었다. 항아리를 열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사코다는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희미하게 붉어졌던 얼굴, 조금은 가빴던 숨, 감은 눈 끝에서 하늘하게 흔들리던 속눈썹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단 낫지. 사코다는 그렇게 위로한다. 언젠가 자각할 연심이었다면 빠를 수록 좋았고, 어차피 차일 것이라면 헛된 희망에 앓는 일 없이 빠르게 차이는 게 좋았다. 물론 자각과 동시에 깨지는 건 너무 무참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형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뭐든지 함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사코다 켄은 후루이치 사쿄에게 순정과 의리를 모두 바쳤으니 그저 충견만 되어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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