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오랫동안 지켜봐왔지. 우리가 공유한 시간만큼, 누구나, 서로를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나만큼 너를 잘 아는 사람도, 너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지. 키는 그 시절부터 훌쩍 커 있었지만 속은 그 어리고 풋내나는 중학생이던 시절을 전부 봤어. 이제 막 싹을 틔운 풋풋한 여린 잎이 매일 양분을 받고 자라는 것도, 마디가 굵어져 봉오리가 움트는 것도, 그리고. 그리고 너무 이른 봄에 계절을 잘못 알아버린 꽃이 채 펴지 못하고 다시 불어 온 한파에 얼어 말라 비틀어지는 것도, 전부, 전부 보고있지.
"그래서. 슬퍼, 료타?"
침대를 바꿀까. 한밤중에 벨을 눌러 쳐들어 오는 것도, 제 집 마냥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드러눕는 것도 익숙해졌지만 원체 키가 큰 그에게 1인용 싱글침대가 맞을 리가 없다. 작은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천장을 본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 천장을 바라보는 너는 어째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의아했다. 이제 료타는 모든 걸 체념한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키세 료타는 아오미네 다이키를 사랑한다. 거기에 대해선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다. 사람의 몸이 70%의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과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지구가 공전하며 태양의 주변을 도는 것처럼 그저 당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서 왜 물이 70%를 차지하고 있는지, 중력이 왜 존재하는지, 지구가 왜 도는지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까? 사람은 왜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식물은 왜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지 감히 인간의 영역으론 짐작도 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릴 수 없는 당연한 전제에 대하여 이유를 물을 수 있을까? 키세 료타는 단지 아오미네 다이키를 사랑할 뿐이다. 다이키가 료타에게 특별했던 건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인 거다.
"왜 울지 않아?"
"…아카싯치는, 꼭 이럴 때 그런 걸 꼬치꼬치 물어야 돼요?"
"내 침대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정도는 물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내려가든가."
"바닥에서 자면 허리 아픔다."
"그럼 그냥 말해 봐."
들어줄 사람도 없잖아? 그렇지만 말하고 싶지, 료타?
그 말도 안되는 이유에 빌붙어 나는 키세 료타를 사랑한다. 다만 저 한심하고 멍청한 꼴을 그대로 답습하고 싶진 않아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외롭고 불쌍한 키세 료타. 언제나 웃어야 하는 키세 료타. 속에서부터 서걱서걱 말라부스러지는 네 옆에서 나는 아주 가끔, 이렇게 물을 뿌린다. 말하고 싶지? 웃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는데, 억지로 웃어야 되는 불쌍한 료타. 나에게만 말해 줘. 나에게만 기대 줘.
머뭇거리던 입술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온다. 겨울의 찬기를 머금은 숨이 방 안에 얼음처럼 퍼진다. 얼음의 조각을 끌어안고도 아름다운 너를 보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너는 죽어서도 이토록 아름다울까.
"…슬픈,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럼?"
"슬프다는 건 아니에요. 사실, 슬퍼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이건 화가 난다. 난 화가 났어요."
"뭐에?"
"피임교육은 질리게 들었을 텐데 제대로 처리도 못한 아오미넷치의 멍청함과 마찬가지로 피임 생각 안 한 그 멍청한 여자가 한심해서, 한심해서 정말 질릴 정도로 화가 나요! 화가! 멍청한 것들! 나이가 몇인데! 지들이 뭘 한다고!!! 아무것도 없으면서!! 아오미넷치는 아직 더 갈 수 있는데! 그 창창한 앞길을 멍청하게 날려버린 그 멍청함에!! 가슴만 밝히니까 그 꼴이 되는 거 아냐!!! 바보같은 자식!! 멍청한 새끼!!!"
"그리고?"
"그리고요? 그리고라고? 그래요, 나한테도 화가 나지. 저 멍청한 새끼를 그래도 좋다고 좋아하고 있는 나한테도 화가 나지. 화 나요. 짜증나고, 당장 목을 졸라서 죽여버리고 싶어. 거울을 보면, 오늘 나한테 씻고 자라고, 그런 개소리 하지 말아요 아카싯치. 거울을 보면 말이죠, 한심한 얼굴이라서 진짜 당장 어디 갖다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리고 싶어요. 지금 당장!"
아아. 민원 들어올 지도. 힐끗,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새벽 한시, 십칠분. 민원 들어오겠지. 평일인데. 주말도 아니고. 핏발 선 키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다 제풀에 지쳤는지 다시 드러눕는다. 가지런히 누운 너는, 순식간에 생기를 잃어 관에 누운 시체가 되버린다. 그래. 그 작은 침대에 억지로 몸을 구겨넣고 가만히 누운 너는 시체같다. 작은 관에 갇힌 불쌍한 너. 아름다운 너.
"잘 거야?"
"잠들겠죠. 피곤하니까."
"불 꺼줄게."
"옷 벗고 자란 말은 안해요?"
"료타는 어린 애가 아니니까. 그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
불을 끄기 위해 손으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내면 물끄러미, 네 시선이 박힌다.
"아카싯치는, 이런 저를 도대체 왜 좋아해요?"
"네가 다이키를 좋아하는 이유를 나에게 설명할 수 있어?"
"……."
"그런 거야. 난 좀 더 있다 잘 거니까 내 자리는 비워둬. 너같이 덩치 큰 녀석을 구석으로 몰아넣기엔 나는 보다시피."
으쓱 어깨를 한 번 올리면 네가 꾸물꾸물 벽 쪽으로 딱 붙어 눕는다. 덩치는 나보다 배는 큰데 그러고 있는 꼴이 우스워 한 번 픽 웃으면 샐쭉하니 눈꼬리를 올려 불만스런 표정으로 쳐다본다.
"잘 자, 료타."
"아카싯치가 올 때도 깨어있을 것 같지만 일단 미리, 아카싯치도 잘 자요. 내일 아침에 뵙겠슴다."
꾸벅 인사를 하고 너는 다시 천장을 바라본다. 우리 집 천장에는 하나하나 세어 볼 무늬도 없는데.
불을 끄고, 눈을 감은 너를 본다. 작은 침대에 몸을 우겨넣고 가지런히 누워있는 너. 꽉 찬 그 침대는 너의 관이다. 말라비틀어져서 네가 마지막으로 돌아올 곳은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