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을 쓰고 가만히 있으면 세상이 고요하다. 플레이어에 전원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들리는 저 기계너머의 소리. 테이프가 돌아가고 시작되는 노래에 곧 묻혀버리고 잊혀지는 정적.
후시미는 그 정적을 좋아했다.
"뭘 듣고 있어, 사루?"
"아무것도."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가 빈 교실에서도 후시미는 느긋하게 홀로 앉아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흘긋 야타를 보고도 다시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는 후시미의 태도에 야타가 냉큼 한 쪽 귀의 이어폰을 뺏어 귀에 갖다 대었다.
"…고장났어?"
"아냐."
"신종 허세?"
야타의 말에 기분이 나쁜듯 인상을 찡그리고 다시 한 쪽을 낚아챈 후시미는 워크맨에서 이어폰을 분리하고 대충 말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후시미가 늘 들고 다니는 워크맨을 열어 보면 그 안에는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 듣고 있다고 얘기했잖아."
"그럼 이어폰은 왜 끼고 있어? 아무것도 안 들리잖아?"
"아무것도 안 들리는게 좋은거야."
무슨 개소리야? 야타가 인상을 찡그리면 후시미가 푸- 하고 바람빠지는 소릴 내며 설핏 웃었다. 긴 앞머리가 한 번 들썩이고 후시미는 턱을 괴고는 중얼거렸다.
"기다리고 있는 거야."
"뭘."
"소리가 들리기를."
"무슨 소리."
"글쎄."
"사람이 얘기를 하면 좀 알아듣게 얘기해라!"
"네가 멍청해서 못 알아듣는 거겠지."
바- 보-
소리없이 움직이는 입술에 무슨 말인가 싶어 쳐다보다 뒤늦게 이해한 야타가 야!!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 후시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야타의 머리를 꽉 눌렀다.
"하지마!!"
"너랑 나랑 키 차이가 몇 이었더라?"
"야!!!"
"10cm?"
처음 만났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느 새 쑥 커버린 후시미가 내려다보는 시선이 퍽 거슬려 야타는 후시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퍽- 내리쳤다.
"야- 잠깐, 이건…."
생각보다 좀 세게 들어갔는지 어지간해선 반응도 없는 녀석이 반사적으로 옆구리를 부여잡고 반쯤 주저앉는다. 미안하긴 하지만 이제와서 사과하기도 뭣하니 야타는 대신 후시미의 손을 잡고 냉큼 일으켰다.
"그러니까 누가 남의 머리 함부로 잡으랬냐. 됐어. 매점이나 가자."
"싫어."
"샌드위치에서 야채는 다 내가 먹어줄 테니까."
"아 그건 좀 괜찮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퉁명스럽게 야타를 바라보다 뒷말에 사르르 녹는다. 하여튼, 녀석도 단순하지. 중학생이나 돼서 야채 편식이 뭐람. 골라먹기 싫어서 어쩔 땐 급식을 아예 먹지 않는 후시미는 그렇다고 본인이 따로 뭘 먹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야타는 매일 식단표를 확인하고 빈 교실에 남아있는 후시미를 챙겨야만 했다. 귀찮아 죽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뒤에서 얌전히 따라오고 있는 그가 귀여워 야타는 후시미가 좋아할만한 빵이 매점에 아직 남았을까 헤아렸다.
기다리고 있는 거야.
소리가 들리기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정적의 바다에 잠긴다. 치이이이익- 하는 희미한 기계 너머의 소리. 호무라에 있을 때면 후시미는 늘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하루종일 끼고 있는 이어폰에 가끔 타타라나 쿠사나기가 뭐라 해도 후시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고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후시미는 어떤 소리를 듣고있었을까. 락? 힙합? 클래식? 음악은 가리지 않았으니 아마 날마다 바꿔서 들었겠지. 혹은, 기다리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어떤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고는 말한 적이 없었기에 야타는 여전히 후시미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덜컥- 하고 앨범이 다 돌아갔다는 신호와 함께 마침내 그 희미한 잡음도 사라진 세계에서 야타는 기다리고 있다. 책상에 누워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헤드폰 속에서 무언가가 들리기를. 아. 혹시 너도 이런 걸 기다리고 있었을까.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창 밖을 보던, 아니면 바 구석의 스툴에 앉아 숙이고 있던 등을 떠올려 본다. 이름을 부르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던 얼굴.
미사키.
아무리 싫다고 해도 고집스럽게 불러대던 이름을, 야타는 기다리고 있었다. 헤드폰 너머의 정적은 아직 깨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