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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자루루] Rest In Peace
사망네타 아님. 이게 2011년 사망 캐릭터 온리전에 냈었던 책이네요 제가 연도를 착각한 거 같아요
전혀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오늘 10주년 이벤트에서 후속작 네타가 터져서 기념으로 올려봅니다.
지금도 좋은 글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엄청 어렸네요...놀랍다.....
0.
“아 그러고보니 아직도 해바라기 좋아해? 왜, 그 때 내가 커다란 해바라기 밭이 있다고 가자 그랬더니 되게 귀찮은 척 했으면서 같이 한 번 간 뒤엔 몰래 혼자서도 간 적 있었잖아. 솔직하게 좋다고 그랬으면 같이 가줬을 텐데.”
─ …그런 건 좀 잊어버리는 게 어때?
“싫어. 솔직하지 못한 성격 좀 고쳐.”
─ 담력테스트 하자면서 혼자 묘지에 향 피우고 오기 내기했었는데 막상 안 온건 어디의 누구시더라?
“에, 그건… 그 날 일이 있었으니까!”
─ 거짓말은 안 통해. 그 다음날 너희 어머님이랑 대화했었다고.
“모, 몰라. 기억 안나. 그러고보니 그 숲에 우리 비밀기지도 있었는데.”
─ 불리하면 말 돌리는 버릇은 여전하네. 기억나. 셋이서 자주 거기 같이 갔지.
“사자자리 유성군이 떨어진다고 했을 때 밤중에 몰래 나가서 구경하기로 했었는데.”
─ 네가 너무 깊이 잠드는 바람에 못 볼 뻔 했지.
“어쨌든 봤으니까 된 거 아냐? 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 인상 깊은 장면이긴 했어. 전에 살던 데에서는 별이 잘 안 보였으니까.
“그 때는 새벽까지 버티는 것만으로도 고난과 역경의 모험!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피곤하단 생각밖에 안 들어.”
─ 뭐, 지나간 시절이란 거지.
더 이상의 대화를 허용하지 않는 듯한 단호함은 어쩐지 지금까지의 온화했던 세계를 단번에 부수고 의식을 현실로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순간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의식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너머의 그도 아무 말이 없다. 우리는 결국 그 수많은 추억들을 되돌릴 수 없는 걸까.
뭐라고 말해야 될 지 대화의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입을 달싹거리면 저 편에서 조그마하게 후우── 하는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조그마한 소리가 심장을 이렇게 후벼팔 수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 미안. 일이 좀 밀려서 말이야. 먼저 전화 끊을게.
뚜─ 하는 무감동한 단절음을 들려주는 수화기는 더 이상 들고 있기엔 너무 차가워서 결국 스자크도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1.
불현듯 사람을 찾아오는 그리움이란 게 있는 법이다. 시간이란 정말 이상해서 가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수업시간에 주고받았던 쪽지, 방과 후에 꼭 한 번씩 들리던 문방구의 불량식품 코너,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도 모르게 놀았던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생각나는 지겨운 방학숙제, 메뉴에 투덜거리면서도 항상 다 먹고도 아쉬웠던 점심 도시락, 당연하다는 듯이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일상적인 등· 하교길.
언제나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어느 새 추억이 되어버린 걸 깨달았을 때 기분이 무척이나 이상했다.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람이 어쩜 그렇게 도려내듯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는건지 스자크는 새삼 놀라웠다. 발단은 전기세나 수도세 같은 고지서 외에는 올 일이 없는 낯선 우편물. 빳빳한 종이에 인쇄된 내용은 간략했다. ‘27회 졸업생 동창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장소는 근처의 가까운 호텔. 꽤 많은 애들이 오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초대장을 버리려고 했을 때였다.
문득, 거기 가면 자신이 아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생각해보았다. 그래봬도 지방 명문교였으니 분명 도심으로 나온 사람은 많을 터였다. 그리고 무심코,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자크.’
나지막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그는 언제나 미소 짓고 있었다. 곱슬이어서 언제나 제멋대로 삐쳐나가는 자신의 머리카락과는 달리 차분한 검은 머리, 선명한 아메지스트, 살짝 올라간 입꼬리.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 처음 웃는 얼굴을 보았을 때 느꼈던 희미한 희열, 그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기분 나쁠 때의 표정, 불편한 일이 있으면 약간 입술을 깨물고 있는 버릇, 안녕- 이라고 말할 때의 그, 목소리.
“를르슈.”
왜 잊고 있었을까? 를르슈 란펠지는 스자크와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였다. 태양이 작열해서 아스팔트가 달아오르고, 매미가 요란하게 울던 여름 날 그는 이웃이 되었다. 하교하는 길, 한동안 비어있던 앞집이 무척이나 분주하여 기웃거리면 낑낑거리며 이삿짐을 나르는 소년이 있었다. 팔도 다리도 무척이나 가늘어서 이삿짐에 깔려버리지 않을까, 스자크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커다란 박스를 안고 걷다가 정원 한 구석에 있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려는 걸 잡아주었다. 처음으로 들은 목소리는 ‘고마워.’라고 말했다.
어딘가로 밀어 넣었던 기억들이 끄집어내져 해일처럼 덮쳐온다. 뒤죽박죽, 한꺼번에 쏟아진 기억들을 모두 반추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다시 그 기억이 밀어넣어졌던 곳을 채우기라도 하듯이 맹렬한 상실감이 밀려왔다. 모처럼이니 친구들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며 책상을 뒤지던 손길이 필사적으로 변했다. 방을 모두 뒤엎고 한 쪽에 몰아두었던 풀지 않은 박스들을 뒤져서야 그래도 갖고 가야 한다고 어머니가 밀어 넣어준, 마지못해 들고 왔던 졸업앨범이 보였다. 당시엔 무겁게 뭐하러 들고 가냐고 투덜댔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앨범부터 착실하게 살펴보고 싶었지만 우선은 전화번호가 급했다. 기억하고 있었다. 를르슈 란펠지. 3학년 B반, 출석번호 21번. 앨범 맨 뒤의 주소록 란을 펼쳐서 빽빽한 활자들을 손가락 끝으로 훑어내리며 익숙한 이름을 찾아냈을 때 스자크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름의 옆으로 손가락 끝을 옮기며 읽으면 일정하게 인쇄된 주소록 사이에서 그 공간만은 빈 칸이었다. 다른 것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는데도 가장 중요한 사실만을 자신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를르슈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었다.
쿠루루기 스자크는 침대에 털썩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빛나는 형광등에 눈이 부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스자크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딱, 9년이었다. 를르슈와 같이 다녔던 그 날들도, 를르슈와 헤어지고 나서부터도.
-미안. 그만두자. 잘 있어, 스자크.
졸업식 때의 우리는 어떠했더라.
조금은 곤란한 듯이 웃으며 를르슈는 그렇게 얘기했다. 나나리의 병원 때문에 좀 더 큰 도시로 갈 생각이야. 대학도 그 쪽에서 다니기로 했어. 그러니까 끝내자.
어이없을 정도로 쉬운 이별선언이었지만, 한편으론 납득할 수 있었다. 이런 불안정한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지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둘 다 진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스자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래, 라고 대답했다. 9년을 같이 지낸 단짝이었지만 그 시기엔 반이 달라 각자 수험공부 하느라 자주 만나지도 못했을 뿐더러 스자크가 속해있던 검도부가 큰 대회를 앞두고 있어 훈련이 더 급선무였다. 무언가 어영부영한 채로 대답했을 때의 를르슈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사주셨다는 조금 큰 노란색 더플코트는 어쩐지 를르슈를 어린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나나리가 짜주었다는 갈색 목도리를 목에 칭칭 둘러매어 하얀 얼굴은 목도리에 파묻혀 있었다. 검은색을 좋아하는 를르슈는 노란색 더플코트는 맘에 안 들지만 어머니가 사준 것이기 때문에 입는다고 했다. 나나리가 목도리를 짜고 싶다고 얘기해서 같이 짜주었는데 자신이 선물 받았다고,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뿌듯한 감정으로 얘기했던 것도 기억나는데 정작 중요한 그 때의 얼굴만큼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 때까지 본 적 없던 아리송한 표정이었던 것 같았다.
한 번 고개를 든 집착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때부터 동창회가 있는 날까지 스자크는 내내 진정하지 못했다. 보고서를 쓰면서도 몇 번이고 활자나 숫자가 틀렸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혼내려고 불렀던 상사는 오히려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다. 우습게도 그랬다. 지난 9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생활 전부를 잡아먹었다. 그 때부턴 꿈을 꿔도 를르슈에 관한 꿈이었다. 나나리와 셋이 놀러가거나, 시험공부를 하거나, 혹은──
헐떡이는 갈라진 숨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던 그 날 아침, 스자크 이러다간 정신이 어떻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동창회 날을 기다리고 막상 장소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아는 얼굴이 많이 보였다. 친하게 지내던 동급생들, 규율이 꽤나 엄격했던 동아리의 선배들도 있었다. 그러나 를르슈 란펠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2차를 갈 때까지도 오지 않아서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모른다고 했다. 졸업하고 한 번도 연락이 안됐어. 몇 명한테 물어도 그랬다. 딱 한 명에게 간신히 실낱같은 희망을 잡을 수 있었다.
- 를르슈? 아아. 전에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봤어. 우리 형, 지방에서 병원하거든. 거기 를르슈 동생이 자주 다닌다더라. 왜, 나나리, 다리가 안 좋았잖아. 눈도 그랬고. 이야, 얼굴 그대로더라. 솔직히 그 얼굴이 어디 시간 지나면 잊을 수 있는 얼굴이냐. 남중, 남고까지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데서 살던 놈들이.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아마 그 얼굴 반찬 삼던 애들 많았을걸. 누가 봐도 색기가 넘쳐흐를 때가 있었으니까. 연락처? 명함. 명함 받았었는데…
순간 주먹이 올라가려던 걸 명함을 뒤적거리는 친구 앞에서 참아야 했다. 패는 것도 명함은 받고 난 다음이다. 게다가, 스자크도 지은 죄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누굴 나무랄 처지는 아니었다.
- 아, 여깄다.
지갑 안에서 약간은 구깃해진 명함을 받았다. 회사는 대기업의 지사로 지역명은 한 번에 어디인지는 몰랐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위치는 차로는 세 시간, 기차로는 네 시간 정도. 갈 수 있을까? 아니. 확인도 해보기 전에 만나는 생각은 너무 성급했다. 일단 연락 먼저 하고 꾸준히 통화를 하다가 나중에 약속을 잡고, 만나다 보면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기억만이 남고, 실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스자크는 연결점을 찾아낸 것만으로 착각했다. 만나기만 한다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착각.
2.
몇 년 만에 타는 기차 안은 뒤로 빠르게 넘어가는 풍경에도 거세게 바람을 가르거나 철로 된 바퀴가 덜컹거리며 미끄러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한 여름의 땡볕이 순식간에 사그러든 9월의 쌀쌀한 온도에 기차 안에는 약간의 훈풍이 틀어져 있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이 꿈인 게 더 좋았을까? 지금이라도 다음 역에서 내려 다시 돌아가는 표를 끊을까? 의미 없이 한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려보지만 연락은 오지 않고 연락을 할 용기도 없다.
동창회는 이제 막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5월이었다. 첫 통화는 6월 초. 그 뒤로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꼬박꼬박 전화를 걸었었다. 그저께 통화했을 때 오늘은 별 일이 없다고 했다. 큰 프로젝트가 끝나서 아마 정시 퇴근을 할 거 같다고. 스자크는 당장 월차를 내고 기차를 예약했다. 다행히 평일 기차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자. 다음 일은 기차에 내려서 생각해도 늦진 않을 것이다. 눈을 감는다. 창문 너머는 이상하게 날이 흐려 하늘이 회색이었다.
길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택시를 탔다. 10분 정도 지연돼서 도착한 시간이 좀 빠듯하긴 했지만 다행히 퇴근시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띄엄띄엄 빠져나오는 회사원들을 보니 이제 막 끝난 모양이었다. 건물 앞에 서성거리면서 사람들을 자꾸만 살피는 스자크를 수위아저씨가 곁눈질했지만 스자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 변했을까. 알아볼 수 있을까. 알아봐주기는 할까. 온갖 생각들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스자크는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많아지고, 적어졌다. 날이 흐려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바라보다 문소리가 나면 다시 한 번 시선을 올린다.
- 설마 오늘은 조금 빨리 갔나?
자신이 택시를 잡으려고 헤맬 때, 기차에서 막 내릴 때, 기차 안에서 선잠을 잘 때. 아무리 시간을 거슬러도 를르슈는 그저 유유히 가버린다. 어쩐지 불안해져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을 만져본다. 그냥 전화를 할까. 스자크가 여기까지 오면서 를르슈에게 전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 스자크 본인도 잘 몰랐다. 처음엔 너무 오랜만의 연락이라 낯설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전화는 10분을 넘질 못한다. 전화도 언제나 스자크가 를르슈에게 먼저 거는 쪽으로 ‘다음에는 내가 연락할게.’라고 를르슈는 늘 말했지만 그 말이 지켜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시라도 걸린 전화를 놓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씻으러 갈 때도 스자크는 전화기를 챙겼다. 진동만 오면 깜짝깜짝 놀라고, 전화기의 액정만 들여다보는 스자크를 보며 사무실의 누군가가 말했다.
- ‘스자크 씨, 애인 생겼어요?’
순간 그녀의 목소리와 겹친 소리가 들려 스자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회전문이 빙그르르 돌아가며 한 쌍의 남녀가 나오고 있었다.
“루루! 요즘 애인 생겼어?”
“무슨 소리야, 샤리.”
“계속 휴대폰만 보잖아. 오늘 모처럼 일찍 끝났으니까 맛있는 거라도 먹을까?”
“리발은 어디갔어?”
“사무실에 우산 두고 왔대. 리발도 오랜만에 저녁 먹자는데 어때?”
여자는 키가 제법 컸지만 귀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긴 머리가 여성스러우면서도 목소리는 활기찼다. 곤란한 듯이 웃는 상대는, 정말로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키는 좀 컸을까. 여전히 체격은 말라있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나마 붙어있어 어려 보이던 느낌을 주던 볼살도 빠져 조금 성숙한 느낌을 주지만 그 외에는 여전했다.
“를르슈!!”
크게 이름을 불러 손을 흔들면 상대방을 향해있던 무심한 얼굴이 자신에게로 향한다.
“스자크?”
깜박- 자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약간의 당혹스러움과 어색함이 섞인 목소리는 전화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매끄러웠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희미한 위화감이 들어 스자크도 뻣뻣하게 손을 내렸다. 통화를 할 때마다 느껴진 태도에서 어쩌면 반기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스자크를 꺼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추억은 미화된다는 건지 분명 를르슈에 관한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반응이 전과는 달랐다. 미묘한 침묵이 내려앉은 사이 를르슈 옆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루루, 아는 사람?"
"아. 고등학교 동창이야.“
낯선 상대를 탐색하는 듯 조심스러운 태도였지만 그녀의 말에 겨우 상황을 정리한 건지 를르슈도 입을 열었다.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오늘 월차 냈거든. 할 일도 없고 여행이라도 할까 하다가 네가 여기 산다 그런 게 생각나서. 너 프로젝트도 끝났다 그랬으니까 한 번 얼굴이라도 볼까 했지.”
“그저께까지 아무 얘기 없었잖아.”
“나도 갑자기 생긴 휴가거든. 보고 싶어서 왔는데, 싫어?”
쿠루루기 스자크는 를르슈 란펠지에게 있어서는 여동생인 나나리를 제외하고 언제나 다른 이들보다는 우선순위에 있었다. 모든 게 달라졌다 하더라도 이 위치만은 변하지 않았으리라고, 마지막 남은 스자크의 보루였다.
를르슈의 눈동자가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 응? 를르슈, 제발. 한 번 더 조르듯이 말하면 를르슈가 깊게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미안. 샤리. 오늘은 보다시피 갑자기 일정이 생겨서 안될 거 같아.”
“아냐.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인데 오히려 운이 좋은 거 아냐? 저녁은 나중에 먹지 뭐.”
“응. 먼저 갈게. 리발한테도 얘기해 줘. 가자, 스자크.”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죄송해요.”
가볍게 목례한 뒤 스자크는 를르슈의 팔을 잡아끌었다. 다행이다. 아직까지는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는 더 우위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자크는 왠지 모를 안도감과 우월감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3.
“오랜만에 봤는데 별로야? 왜 이렇게 표정이 이상해.”
“아니… 너무 뜻밖이라서. 너한테 전화가 왔을 때도 그랬지만. 연락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김이 오르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를르슈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랜만에 봐서 되게 좋은데. 갑자기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안 나가던 동창회도 나가고 기억해? 그렉이라고 널 병원에서 봤다더라. 걔가 다행히 네 명함을 갖고 있어서 너한테 연락할 수 있었어. 넌 나 안 보고 싶었어? 매정하다, 정말.”
“글쎄. 정말로, 너랑은 다시는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거든.”
대화의 맥이 자꾸 끊긴다. 10분을 넘기지 못하던 통화와 마찬가지로 를르슈는 결코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결국 스자크는 특단의 조치로 대화의 방향을 바꿨다.
“그러고보니 나나리는 어때?”
“여전해. 지금은 대학에 다니고 있어. 이것저것 공부하고 싶은 게 잔뜩 있다면서 점자책으로 공부 중이야.”
“친구들은?”
“믿을만한 친구들도 많아. 무슨 일이 있으면 친구들이 꼬박꼬박 전화도 해주니까.”
“그렇구나. 나나리는 아직도 날 기억할까?”
나나리는 를르슈에게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소중한 여동생이다. 여동생에 대한 자랑을 하자면 정말 하루종일 할 수도 있는 를르슈였으니.
“걱정 마. 나나리는 충분히 너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요즘도 종종 얘기해. ‘스자크 오라버니와는 연락하시나요?’, ‘스자크 오라버니 같은 사람이네요.’, ‘이건 스자크 오라버니가 좋아하셨는데.’ 라고. 네 이름이 끊이질 않아. 나나리에게 좋은 친구의 기준은 너인가봐.”
나나리를 대화의 방향으로 선택한 것은, 나나리에겐 조금 죄책감이 들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를르슈는 이런저런 얘기를 끄집어냈다. 간신히 현재의 를르슈가 과거의 를르슈와 닮아간다.
“이 참에 나나리도 보러갈까? 집에 있지? 그리고 나 좀 재워주라. 나 돈이 한 푼도 없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겨우 편하게 조성됐던 분위기가 급격하게 냉각된다. 잘못 건드린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스자크는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이대로 가면 영영 전과는 같아질 수 없다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응? 안될까?”
본인은 모르지만 를르슈는 은근히 매달리는 사람을 매정하게 쳐내질 못했다. 버림받은 강아지 마냥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면 를르슈는 언제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넌 정말 못 당하겠어. 그래, 나나리도 혼자 있을테니까 집에 가자. 대신 방은 없으니까 넌 거실에서 자.”
거봐. 스자크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스자크 오라버니?”
“안녕, 나나리.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나나리의 얼굴도 변한 것이 없었다. 키도 크고 성숙해졌지만 얌전하면서도 어쩐지 말괄량이 같은 이미지는 그대로다. 나나리가 있으니 아까와 같은 어색한 기류는 더 이상 감돌지 않았다. 이런저런 과거의 추억들을 얘기하면 나나리는 즐거운 듯이 맞장구치고 를르슈는 그저 웃으면서 지켜본다. 셋이서 나란히 책을 읽거나 피크닉을 가거나 하던 그 때처럼. 안온한 분위기에 젖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 새 자정이 가까워졌다.
“나나리, 벌써 12시야. 내일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벌써요?”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서 주무세요, 아가씨. 피부 나빠져.”
“오랜만에 스자크 오라버니도 오셨는데. 아쉬워요.”
“여기서 자고 갈 거니까 내일 아침에 나가기 전엔 볼 수 있을거야, 걱정 마.”
스자크가 나나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면 나나리가 발그레하게 웃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오라버니, 스자크 씨.”
버릇처럼 를르슈와 스자크의 뺨에 굿나잇 키스. 나나리의 방문을 닫고 를르슈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와 거실에 깔았다.
“자, 그럼 너도 잘 자.”
“이걸로 끝이야? 우리끼리 더 재밌는 얘긴 안 해?”
“안해.”
“그래. 그럼 너도 잘 자, 를르슈.”
나나리가 키스했던 반대편 뺨에 키스하면 를르슈의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좋아. 모든 것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잔뜩 꼈던 어제와는 달리 하늘은 쾌청하게 맑았다. 찬바람도 불지 않고 돌아가는 기차 안은 어제와 같이 조용하고 스자크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전화를 먼저 할까, 말까. 시간을 보면 역까지 배웅해 준 를르슈가 슬슬 집으로 돌아가서 한 번 정리를 할 때가 됐다. 너무 깊숙히 숨겨놨나? 꼼꼼한 를르슈라면 분명히 소파 밑 정도는 살펴볼 텐데. 몇 번을 번호를 찍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스자크가 간신히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데 전화기가 진동했다.
“를르슈? 웬일이야.”
─ 너, 시계 두고 갔어.
“정말? 어, 진짜네. 그거 선물 받은건데.”
─ 주소 불러. 보내줄게.
“아냐, 됐어. 나중에 찾으러갈게.”
─ 여길 다시 오려고?
“다음에 휴가 받으면 셋이서 놀러가자. 나나리도 분명 기뻐할거야, 그렇지?”
4.
차가운 겨울바람이 에이듯이 몰아친다. 지난주에 피크닉을 다녀온 건 천만다행이었다. 일주일만에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에 스자크는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시계를 핑계로 그 다음달 즈음에 한 번 더 내려갔다. 그 다음엔 수첩을 두고 오고, 떠나기 전에 나나리에게 소풍을 가자고 약속했다. 그 다음엔 전화해서 날이 추워지기 전에 얼른 소풍을 가자고 독촉하고. 오랜만의 외출은 정말 즐거웠다.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하면 그러나, 연말정산을 위한 지옥같은 스케쥴이 몰아치고 있었다.
“으아. 힘들어서 죽을 거 같다 스자크.”
“나도 그래. 도대체 우리 팀은 왜 영수증 정리를 하나도 안해둔거야!”
“도대체 영수증을 어디다 모아놨는지 기억이 안나서 진짜 서랍 다 엎었다.”
회사 동료인 지노와 죽을 상이 되어 며칠에 걸쳐 영수증을 정리하면 그 다음엔 신년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된다며 본사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인사고과에 들어간다며 엄포를 놓는 바람에 급하게 있지도 않은 팀을 짜고, 억울하니 연말회식 날짜라도 하잡자고 부장에게 탄원을 하고, 어찌됐든 미칠듯이 바쁜 일정이 흘러갔다. 계속되는 야근에 꼬박꼬박하던 나나리와 를르슈에게의 전화도 하질 못했다.
“여보세요. 죄송하지만 지금은 업무중이니 나중에 걸어주시면…”
스자크는 시선은 모니터로 고정한 채로 전화기를 들었다. 연말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여기저기서 전화가 들어온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으면 약간의 침묵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미안. 바쁜가보네.
“어? 르, 르, 를르슈?”
─ 다시 전화할게.
“아냐 잠깐, 잠깐, 잠깐, 잠깐!!!!!!! 아냐!! 괜찮아!!”
지금까지 한 번도 먼저 연락을 하진 않았던 를르슈였다. 조용하던 사무실에 갑자기 울린 스자크의 고성에 사무실 내의 모든 동료들이 따갑게 쏘아봐 스자크는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설마 전화가 끊기진 않을까 잠깐, 잠깐만을 연발하며 한적한 복도로 나가면 수화기 너머에서 를르슈가 조금 웃었다.
“웃지 마.”
─ 나중에 통화해도 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
“그거야 를르슈가 먼저 전화를 걸어줬으니까 그렇지.”
─ 아, 그런가.
“그래. 그렇다니까. 너한테서 온 전화는 처음인데 놓치기 싫어.”
아차. 말을 잘못 꺼냈나. 수화기 너머의 정적에 약간의 후회가 들었지만 솔직한 감정이었으니 별 수 없었다.
─ 그런 말은, 연인한테나 하도록 해.
“나 여자친구 없어. 나한테 우선 1순위는 언제나 너야.”
─ …본론만 얘기할게. 이번에 그 쪽으로 연수갈 일이 생겼는데 언제 한 번 만날래? 나나리가 너 주려고 목도리 떠놨어. 연수간다고 하니 꼭 전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아, 정말? 나야 당연히 좋지. 언제인데?”
─ 다음주에 가는데 금요일 쯤에 시간이 될 거 같아.
머릿 속으로 빠르게 일정을 계산해본다. 오늘은 월요일이니 일주일도 넘게 시간이 있는데다 급하게 처리하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비울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 스자크는 일을 몽땅 지노한테 떠넘기고 퇴근할 생각이었다.
“좋아. 괜찮아, 를르슈. 나나리의 목도리라니 기대된다.”
─ 그럼 그 때 봐, 스자크.
“응. 기다릴게. 아 근데 정말 를르슈가 먼저 전화해주니까 너무 좋다.”
─ …여자친구한테나 하라니까. 끊는다.
전화는 매정하게 끊겼다. 뭔가 좀 아쉽긴 했지만 를르슈가 먼저 전화를 걸어준데다 약속을 잡다니 그것만으로도 이 전화의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심이었는데.”
스자크에겐 를르슈 란펠지가 가장 소중했다. 나나리가 를르슈에게 가장 소중하듯, 스자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보다도 를르슈였다.
겨우 하나를 끝내면 다시 다른 일이 나타나고 다시 또 다른 일이 나타났다. 야근에 야근에 야근. 깨도깨도 끝이 없는 퀘스트를 계속하는 것 같다. 선택지는 Yes 혹은 OK. 어느 쪽을 선택해도 지옥이었다. 그나마 다음주 금요일이라는 보상이 있어서 그렇지, 그게 아니었으면 스자크는 진즉 어디론가 도망쳤을 지도 모른다. 출근하자마자 달력에 빨간 엑스자를 치는 스자크에게 지노가 말했다.
“드디어 D-Day네. 도대체 뭐야. 여자친구?”
“아냐. 지방에 사는 친한 친구가 올라오기로 했거든.”
“흐음? 그런 것치고는 두근두근하면서 매일 엑스자를 치는 게 심상치가 않았는데. 그 날 스케쥴 비운다고 일도 평소보다 두 배는 빨리하고, 신경질 팍팍 낼 일도 웃으면서 넘어가질 않나. 사랑에 빠진 소녀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그랬어?”
“그랬다니까. 무슨 사랑에 빠진 소녀도 아니고 세상의 중심이 온통 그이와의 데이트 일정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잖아.”
“뭐,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친구거든.”
‘친구’라는 단어에서 희미한 위화감이 들었지만 스자크는 그저 웃었다.
사건은 퇴근 두 시간 전에 터졌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정리하던 여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모르고 전원을 꺼버렸다. 오늘까지 기한이었던 백업되지 않은 자료가 고스란히 날아간 것이다.
“어떡해요, 죄송해요. 아 진짜 어떻게 해. 거의 다 했었는데.”
“백업은 어디까지 됐는데?”
“오늘 점심까지요.”
어떻게 해도 방법이 없었다. 부서 직원 전원이 달라들어 일을 분담했지만 정시 퇴근이 물건너 간 것은 뻔한 결과였다. 결국 를르슈에게 일이 있어서 조금 늦을 거 같다는 전화를 하니 ‘기다리지, 뭐.’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일단 사무실에 와서 기다릴래?”
─ 몇 층이야?
“11층.”
─ 알았어. 한 10분이면 갈 거야.
간신히 전화를 끊으면 휴게실엔 어느 새 사고를 친 여직원이 와서 울고 있었다.
“죄송해요, 스자크 씨.”
“아냐, 괜찮아. 곧 끝나겠지. 괜찮아.”
“이런 제가 싫으시죠. 맨날 사고만 치고.”
“아니야. 괜찮아. 에리 씨는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데 이번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 나는 그래도 책임지고 일하는 에리 씨가 좋아.”
“죄송해요 진짜. 너무,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하다 어깨를 도닥이면 그대로 안겨들어 눈물을 펑펑 흘린다. 를르슈가 올 때가 다 됐는데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맘에도 없는 위로를 계속한다.
“아냐, 누구나 에리 씨를 좋아해.”
“이렇게 맨날 사고만 치는데도요?”
“그래그래. 나도 에리 씨를 좋아한다니까.”
그리고 문득 시선 끝에 익숙한 인영이 잡혔다.
“를르슈?”
“미안. 타이밍 잘못 잡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를르슈는 멀어졌다. 갑자기 불륜현장을 들킨 남편이라도 된듯한 기분으로 스자크는 소리쳤다.
“잠깐, 를르슈! 미안, 에리씨 나중에 얘기하자.”
복도를 뛰어가면 이미 엘레베이터의 문이 닫혀 내려가고 있다. 비상계단을 날아가듯이 내려가면 저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를르슈!! 잠깐만 를르슈!!!”
대답도 없는 를르슈를 뛰어가서 붙잡으면 를르슈가 냉정하게 말했다.
“너는 언제나 그랬어. 언제나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지.”
“아니야, 를르슈, 잠깐만 내 말을 들어!”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해. 이제 그만하자. 전화도 하지 말고, 찾아오지도 말고 어디 가서 내 얘기 묻지도 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그게 되긴 되더라. 너는 그냥 향수병 같은 거에 걸린거야. 갑자기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과거의 나한테 집착 하는거야. 휴가 내고 집에 가서 좀 쉬어. 그러면 나 따윈 기억도 나지 않을테니까.”
“내 말 좀, 들으라고!!”
따박따박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잇던 를르슈의 어깨를 낚아챈다. 겨울의 찬바람에 빨갛게 얼은 얼굴이 울 것처럼 잔뜩 일그러져 있으면서도 입꼬리만은 압핀으로 고정된 듯 올라가 있었다. 아. 드디어 기억났다.
- 그만두자. 잘 있어, 스자크.
그 말을 할 때의 를르슈는 분명 이런 얼굴이었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얼굴. 를르슈는 결국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 외모도, 습관도, 표현방식도 전부.
“이번엔 놓치지 않을게.”
“무슨 소리야.”
“미안. 나는 정말로.... 아니 변명은 안 할게. 미안해.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 나는 너를 좋아해. 네가 좋아하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해놓고서야 스자크는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정의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구나. 옛날에도 지금도, 자신은 를르슈를 좋아하고 있었다. 한 번 말을 하고 나니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부풀어오를 듯 폭발했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그러니까 가지 마.”
얼어붙은 얼굴에 뜨거운 물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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