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아직 제목 없음
디님의 썰을 빌려서 카피본...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책의 인트로.
맥길리스와 가엘리오가 어영부영 해피웨딩하는 원작이랑 아무 상관 없는 얘기로 대략적인 소재와 스토리는 디님에게서 빌려왔습니다.
가엘리오 보드윈은 끔찍한 두통과 함께 일어났다. 상쾌함과는 거리가 먼 기상에도 불구하고 시각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으로 여기서는 아직 해도 뜨지 않을 시각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치미는 울렁거림에 손을 뻗어 침대 옆의 물을 마시고 보니 입에 닿는 컵의 촉감이 평소와는 다르단 사실을 깨달았다.
아하?
널찍한 트윈베드룸, 옆 침대에서 조용히 잠든 친우의 금발이 조금 흐트러진 것을 보고 가엘리오 보드윈은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또 사고쳤군.'
그렇다. 또다.
보드윈은 술에 강하다. 입에 잘 대지는 않지만 가벼운 식전주로 와인 한 병을 비울 수 있는 어머니와 젊은 시절엔 밤새 탁상공론을 하며 양주 한 병을 스트레이트로 비울 수 있던 아버지. 보드윈의 계보를 올라가면 와인 농가를 했다는 집도 있다지만 이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양친의 상태가 그러하니 보드윈이 술에 강한 것은 유전자로 증명된 명백한 사실이다. 가엘리오도 그랬어야 했으나 어디에서 유전자 배열이 꼬인 건지 술은 잘 마셔도 어딘가에서 필름이 끊겨버리는 술버릇이 있었다. 이 사실을 처음 안 건 사관학교 시절로, 엄격하게 주류 반입이 금지된 기숙사에 누군가 몰래 술을 가져와 치기 어린 술 게임을 했을 때 알았다. 평소엔 세븐스타즈 도련님들이라며 묘하게 벽을 치던 동기들이, 혹시 사감에게 걸려도 세븐스타즈가 끼어 있다면 걸려도 덜 혼날까 싶어 말을 걸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가엘리오는 그 사실이 기뻤고 그래서 냉큼 맥길리스도 불렀다.
그게 잘못이었다.
가엘리오는 둘째치고 맥길리스는 첩의 자식이네, 양자네, 이러저러한 소문도 많은 편이었다. 운 좋은 녀석이라며 맥길리스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단 사실을 가엘리오는 깜박 잊어버렸던 것이다. 집요하게 술게임의 표적은 맥길리스가 되었고, 아직 열일곱. 가벼운 과실주나 몇 잔 음미해 본 경험이 있는 그에게 과할 정도의 알콜이 주어졌다. 가엘리오는 본인의 실수라고 자청하며 계속 맥길리스의 잔을 뺏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아침이었다.
'좋은 아침, 가엘리오.'
반사적으로 좋은 아침, 이라고 말하려다 가엘리오는 채 상체를 반도 일으키지 못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생전 처음 겪는 아찔한 숙취에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진 가엘리오를 보고 맥길리스는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조금 쉬는 게 좋겠어. 어젠 무리했으니까.'
커튼을 쳤으나 사이로 스미는 빛은 분명 가엘리오가 일어나던 시각의 것은 아니었다. 주말이라 다행이었다. 방은 분명히 맥길리스와 같이 지내는 제 방이고, 옷은 어느 새 잠옷으로 갈아 입혀져 있었다. 숨쉬기도 버거운 울렁임 속에서 가엘리오는 제가 방으로 들어와 옷까지 갈아입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의 과정을 상기해보려 했으나 컵 가득 따라진 증류주를 억지로 들이켜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생각만으로도 식도가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잔뜩 메인 깔깔한 목으로, 어떻게 된 거야, 맥길리스. 가엘리오가 숨을 고르며 물으면 맥길리스는 그저 웃었다.
'취하면 기억이 안 나는 게 술버릇인가 봐, 가엘리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해.'
교과서에서나 나올 것 같은, 참으로 맥길리스 파리드다운 대답이었다. 남의 시선도 있고, 그런 시선이 아니라도 반듯한 성정의 맥길리스를 그런 데 끼어들였다는 죄책감에 가엘리오도 그 뒤는 더 묻지 않았다. 만취해 기억을 잃은 본인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동기들은 그 뒤로 가엘리오와 더더욱 명백하게 벽을 두었고, 가엘리오는 그것을 뼈저린 교훈 삼아 다시는 그렇게 술을 안 마시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다짐은 언제나 부질없다.
푸른 빛을 띄는 연한 보랏빛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가 그렇듯, 보드윈의 애주가 특성 또한 유전이라 가엘리오는 슬프게도 위스키와 드라이한 레드 와인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렇다고 항상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만취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맥길리스와 둘이 마시면, 마음이 편한 탓인지 꼭 이렇게 되고 만다. 매번 맥길리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맥길리스는 괜찮다고 웃어 넘기지만 취객을 부축해 데려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가엘리오는 본인이 취한 다음에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도 모른다. 걸음은 걷긴 하는지, 누구에게 시비를 걸진 않는지, 아예 기절해버리는 건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행동은 하는데 기억에만 없는 건지. 일어나면 몸에 특별히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안도 깨끗이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는 것 같으니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지만 그렇다고 해도 음주의 뒤처리가 온전히 친우의 몫으로 돌아가는 건 백 번 사죄해도 모자른 일이다.
맥길리스가 일어나기 전에 간단한 조식이라도 주문해 놓을까 생각하며 가엘리오는 방에 비치된 룸서비스 책자를 펼쳤다. 지금까지 여기가 어디인지도 몰랐는데 호텔 이름을 보니 감이 온다. 자주…까지는 아니고 두어 번 와 본 곳이다. 임관 이후 작은 일탈을 하고 싶을 때마다 가엘리오와 맥길리스는 빈골프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무래도 전장 10km 밖에 되지 않는, 모두가 가엘리오와 맥길리스의 얼굴을 알고 있는 곳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먹으면서 한 잔, 자리를 옮겨서 한 잔, 키핑해 둔 와인이 생각나서 한 잔, 그 다음엔…….
음. 자리를 옮긴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이 가물가물한 것을 보니 거기가 기점인 모양이다. 가엘리오는 새삼 사유물을 확인했다. 옷걸이에 단정하게 걸려있는 어제 입었던 셔츠는 약간 구김은 있지만 얼룩이 묻은 곳은 없다. 어두운 색의 청바지 밑단에는 약간 흙이 묻어있지만, 어젠 내내 추적추적 비가 왔으니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주머니의 휴대용 단말기도 멀쩡-, 멀쩡해 보였다. 어디 금 간 데도 없지만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걸 보니 밤새 배터리가 방전됐나 보다.
가엘리오는 단말기의 배터리를 충전하며 룸서비스 버튼을 눌렀다. 샌드위치, 팬케이크, 에그 베네딕트, 커피 두 잔, 맥길리스가 먹을 초콜릿이랑 또……. 여전히 숙취의 울렁임이 남아 있었지만 아침만 먹으면 모두 해결된다는 괴상한 진리가 통하는 가엘리오에겐 오히려 위장에 뭐라도 밀어 넣는 게 이득이었다. 신나게 눌러놓고 나니 금액이 꽤 나온다. 어쩔 수 없지. 오랜만의 휴가이기도 하고, 맥길리스에겐 어제 폐를 끼쳤으니 사죄하는 의미에서!
실컷 합리화를 해두고 가엘리오는 결제를 위해 단말기를 켰…는데,
“우, 왓, 잠―”
켜지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하게 쏟아지는 알람에 가엘리오는 황급히 전면 스피커를 손으로 막았다가, 후면 스피커를 막았다가, 그래도 안되겠어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슨 알람이 이렇게 우다다다 울리는지 무음으로 돌리는 와중에도 알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간신히 평화를 되찾은 조용한 방 안에서 가엘리오는 슬쩍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맞은 편 침대에 옆으로 돌아 누운 친우의 등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가엘리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왔다. 부재중 전화가 60통에 메시지가 34건, 음성메시지가 1건. 뭐야 간밤에 전쟁이라도 났나? 테러? 가엘리오는 바닥을 기어 내려가 커튼을 들춰봤지만 밖은 멀쩡했다. 이제 막 밝아오는 사위에 바다가 태양을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하고 따뜻한 날씨라 어제 저녁의 계획대로 산책 좀 하고, 알미리아에게 줄 선물을 사서 돌아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가엘리오는 창에 기대 바닥에 주저앉아서 메시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부재중 전화 예순 통 중에 다섯 통은 모르는 번호, 스물세 통은 집, 서른 통은 카르타…. 뭐야. 카르타가 왜 전화 해?
가엘리오는 의아함을 가득 품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렇게 급하면 문자로 용건이나 남겨주면 좋으련만 다들 쓸모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연락요망’이라든가 ‘어디니?’라든가 ‘오빠 제일 싫어!!!’, ‘너 ㅐ체 뭐ㄹ ㅎ거 싸돌앋ㅏ녀’, …….
…거기까지 읽으니 가엘리오는 퍼뜩 몸이 굳는다. 지은 죄가 없다기엔 가엘리오는 지난 여덟 시간의 기억이 통째로 없었다. 설마 술 마시고 아는 사람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한 시간씩 떠들어 댔나?! 가엘리오는 기나긴 통화목록을 내렸지만 이쪽에서의 발신 내역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누구랑 싸움이라도? 민간인 폭행은 아무리 세븐스타즈라도 최소 영창행이다. 아니, 오히려 세븐스타즈라는 이름 하에선 가중처벌이나 안되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제 몸 어디에도 타박상은 없고 옷은 멀끔했다.
그럼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사실 이 때까지도 가엘리오는 ‘술주정’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는데 설마 이제 와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은 안전 불감증이었다. 호텔은 익숙한 곳이고, 하나뿐인 친우가 옆에 있었으며, 분실한 소지품은 아무것도 없고, 크게 상처가 나거나 다치지도 않았고, 옷엔 찢어진 부분도 없다. 이상이 있다면 배터리 전력이 다 떨어진 단말기뿐이지만, 만약 일반 통신이 아니라 위성 통신으로 카르타에게 연락 했다면 사용요금이 어마무시하게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정체를 모르는 지난밤에 대해서 가엘리오는 크게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다만 어느 쪽으로 연락해도 잔소리가 된통 쏟아질 것 같아서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될지, 그것만이 고민되었다.
사실 진상을 규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맥길리스에게 묻는 것이지만.
가엘리오는 무슨 일일지 몰라도 어젯밤, 저 때문에 고생 꽤나 했을 것 같은 친우를 더 이상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저와는 달리 맥길리스는 늦게 자고 아침에는 유독 힘들어하는 타입이었다. 그의 명석한 뇌는 아무리 수면을 충분히 취해도 기상 두 시간 후부터나 제대로 돌았다. 새벽 늦게 들어왔다면 일반적인 기상 시각을 넘긴 지금도 그에겐 무리가 될 것이고, 모처럼의 휴일에 느긋한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는 건 일상 최대의 비극이다.
가엘리오는 제게 남겨진 통화목록 중 가장 잔소리를 덜할 아버지를 골랐다. 마침 조식도 끝나고 한가롭게 아침 뉴스를 볼 시간이었다. 용건만 간단하게 말할 줄 아는 아버지 쪽이 매를 맞더라도 훨씬 편할 것이다. 근데 아침부터 걸려온 이 모르는 번호 다섯 통은 뭘까. 스팸인가?
가엘리오는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발신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들리는 건 맑은 음색의 「지금은 연결이 되지 않아—…」로 시작하는 수신 불가 알림음이었다. 뭐지? 가엘리오는 의아하게 여기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이도 마찬가지, 저택의 공용전화는 아예 선이 뽑혀져 있는지 먹통이었다. 가엘리오는 점점 찜찜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다음 타자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알미리아의 개인 회선은 살아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신호음은 끊기지 않았다.
“아, 알미리아. 오빠인데 어ㅈ”
「오빤 바보에요!!!」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알미리아는 왁왁대며 온갖 욕을 다한다. 해삼! 멍게! 말미잘!! 그게 뭔지나 알고 말하는 건가. 해산물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요상한 소리나 하고 있는 알미리아는, 그러나 명백한 이유로 화가 나고 속상한 게 분명했다. 평소에는 온갖 예쁜 척은 다 해가며 집안에서도 새초롬하게 꾸미고 있을 알미리아의 얼굴은 벌써 한참을 울었는지 코와 눈시울이 아플 정도로 빨갰다.
대체 내가 뭔 짓을 저질렀길래?!
평소에야 시끄럽기 짝이 없는 귀찮은 여동생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혈육인데 저 정도로 낙심해 있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법이다. 가엘리오는 제 죄도 모르면서 일단 알미리아에게 사과부터 했다.
“알미리아, 오빠가 그러려던 건 아니고, 응? 뭔지 몰라도 실수했,”
「그건 더더욱 실망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런 걸 실수로 할 수가 있어요! 오라버니가 그렇게 경망스러운 사람이었다니! 어떻게, 어떻게 그런 무례하고 긍지 없는―!」
“어, 아니, 그럼 실수, 실수는 아니고!”
가엘리오가 빠르게 태도를 바꾸자 알미리아가 화면 너머에서 사라졌다. 요란하게 코푸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가 겹쳐 울린다. 아, 뭐야 진짜.
가엘리오는 시곗바늘을 돌려 어젯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뭔지 몰라도 처음부터 기절시켜서 호텔 방에 던져 주는 게 모든 일을 무마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럴 방법은 도저히 없으니 일단 알미리아부터 잘 달래고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하는 게 낫겠다. 가엘리오는 알미리아가 제발 빨리 진정하기를 기도했다. 한참을 훌쩍이던 알미리아가 결연한 의지를 품고 다시 화면 너머로 나타났다.
「진심이었다는 건가요? 그게 정말 진심이었다는 거지요?」
“아? 어, 아, 그래 진짜야. 무심코, 그러니까 술 마시니까 해이해져서 그만 본심이 나와 버린 거다. 하지만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그럼 아버지께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저도… 오라버니가 그러시다면…….」
그러고 나서는 또 크으응- 하고 코 푸는 소리가 난다. 아직 애는 애지. 레이디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두드리면서 알미리아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가엘리오는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알미리아. 그 얘긴 내가 직접 할게. 아버지와 연결해주겠어? 집에 계시지? 어머니는? 자택에 통신이 전부 끊겨 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돌고 돌아 드디어 본론이다. 별 얘기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진이 빠지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게 이제야 슬슬 뭔가 사고를 쳤다는 긴장감이 오나보다.
「아버지요? 당연히 집에 안 계시죠.」
“왜 당연히 집에 안 계셔? 오늘 쉬는 날이잖아?”
「그거야 바보 같은 오라버니가 친 사고 때문이죠. 아마 곧 있으면 기자회견이 시작될 텐데.」
“기자회견?”
기자회견이라고? 아니 기자회견은 또 뭐야? 예상치도 못한 스케일에 가엘리오의 목 뒤에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잊고 있던 숙취가 몰려오는 아찔함이, 일이 잘못 돼도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분명했다.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절대중립의 걀라르호른, 인류를 멸망시킬 뻔한 액재전 이후 3세기 동안 걀라르호른을, 세계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일을 해왔던 보드윈의 이름에 먹칠을 할 정도의 사고를 쳐버렸단 말인가. 게다가 그 불명예를 아버지의 이름으로 수습해야 한다니, 이 이상의 수치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나?
가엘리오는 끔찍한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알미리아와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 알았어. 알미리아. 오빠가 저지른 일은 오빠가 수습할 테니까,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곧 들어가서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전해줘.”
「알겠어요. 맛키…도 잘 부탁해요, 오라버니.」
“응? 어, 아. 그래. 그래야지…….”
알미리아의 마지막 말에 잊고 있던 친우가 생각났다. 제가 어제 무슨 짓을 벌였다면 맥길리스에게도 상당한 피해가 갔음은 분명했다. 제 명예뿐만 아니라 친우의 명예마저 망쳐버리다니! 까맣게 꺼진 화면을 두고도 가엘리오는 패닉 상태에 빠져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후- 하- 후- 하-
긴 심호흡 끝에 간신히 굳은 마음을 먹은 가엘리오는 포털사이트 어플리케이션을 열었다. 기자회견이 필요한 수준이라면 분명 저에 대한 기사가 잔뜩 올라와 있을 것이고, 그럼 과거의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누구의 입을 더럽히며 들을 필요도 없었다. 단두대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눈을 질끈 감았던 가엘리오는 눈을 똑바로 뜨고 단말기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가엘리오의 푸른 눈동자에 보인 것은,
“우와아아아악!!!”
『맥길리스 파리드 – 가엘리오 보드윈, 결혼?』
대문짝만하게 걸린 충격적인 헤드라인이었다.
'Orphans > 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맥가엘] 리퀘박스 황제 가엘리오와 맥길리스 (0) | 2017.03.09 |
---|---|
[맥가엘] 오활한 당신 (0) | 2017.03.06 |
[맥가엘] 궤도추적 (0) | 2016.12.27 |
[맥가엘] Carta (0) | 2016.12.08 |
[맥가엘] 『はじめまして』 (0) | 2016.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