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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엘] 궤도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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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이야기. 가엘리오는 공식적으로 화장되었고 맥길리스는 그의 장례식엔 참가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에 전부 날조가 되었습니다.
궤도 추적
맥길리스 파리드가 보드윈 가를 방문하는 빈도는 정확하진 않지만 그가 자의로 파리드 가에 들어가는 일보다는 잦았다. 맥길리스는 처음엔 그것이 가엘리오의 초대에 마지못해 응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같은 화목함을 자랑하는 보드윈이 가족행사를 치르고 나면 으레 찍는 단체사진을 아홉 번쯤 같이 찍은 뒤 그런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열 살 때 여름 휴가인가? 아, 이건 졸업 기념 스키캠프. 이건 처음으로 카운트다운에 성공한 해다. 보이지, 뒤에 시계? …미안한데, 사실 난 그 전에도 카운트다운 봤어. 거…짓말. 진짜? 어떻게 나를 빼놓고 그럴 수가 있어? 넌 지금도 일찍 자는 타입이니까 너무 억울해하진 말았으면 좋겠군. 그으래애. 그건 일단 넘어가고, 이건….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돌봐주던 유모가 아주 집으로 간대서 네가 울고불고 매달리던 크리스마스 아냐 가엘리오? 아, 음……. 기억력 좋구나, 맥길리스. 그런 건 좀 잊어줘도 좋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맥길리스는 이 집을 '도피처'로 명명하기로 결심했는데, 그래봤자 달라진 건, 그 전까지는 가엘리오를 통해 이미지 파일 한 장을 받았다면 그 뒤로는 가엘리오와 똑같은 사진전용 슬라이드 프레임을 선물 받고 연도와 날짜별로 정리된 폴더를 갖게 되었다는 점 뿐이었다.
육아 - 뿐만 아니라 사실 맥길리스와 관련된 모든 것 - 엔 도통 관심이 없었던 이즈나리오 대신 맥길리스의 성장기록은 그리하여 보드윈이 선물한 저 프레임 속에 쌓이게 되었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란다. 어리고 가는 팔다리가 근육과 뼈의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발그레하고 통통한 젖빛 뺨도 각자의 색으로 여물어갔다. 이마, 단단한 콧대, 깊어지는 눈매, 다부진 입매, 턱선, 어깨, 팔, 다리. 시간의 흐름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늘지고 약간은 수척하며, 배타적인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내던 냉막한 소년은 어느 순간부터 부드럽게 웃을 줄 알게 되었고,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소년은 호쾌하게 웃게 되었다. 어색한 거리감으로 나란히 서있던 사진 속에서 피사체들의 간격은 해가 갈수록 가까워졌다. 처음엔 한 명이 눈에 띄게 컸으나 사관학교의 제복을 입는 시점에선 키가 엇비슷해졌고 임관 무렵엔 미세하지만 작았던 한 쪽이 더 커졌다.
서로가 서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가엘리오는 그의 하나뿐인 친우에 대하여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약간의 사교적인 거짓말은 할 줄 알았지만 악의적으로 상대를 왜곡하거나 비방하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으며, 거짓 칭찬을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유능하니까요, 맥길리스는.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서류를 검토하는데 정확함도 빠질 수가 없답니다. 네. 그에게도 슈발베가 필요하죠. 지휘관기 그 이상으로, 일반적인 기체로는 그의 반사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그만한 인재를 단순한 사무직으로 썩히는 건 너무 아깝잖습니까.
입에 발린 말을 줄기차게 해대면서도 그 안에 약간의 진실성을 담는 것은 정말로 가엘리오만이 할 수 있던 특기였다. 아주 내성적이진 않았으나 사람과 부대끼는 걸 즐기지 않았던 그의 어린시절을 맥길리스가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해도 이젠 아무도 믿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너에 관한 말은 거짓이 아닌걸, 맥길리스."
정말이야. 걀라르호른에서 가장 잘생긴 20대 장교 님.
아아. 저건 뭐였더라. 걀라르호른 내 2·30대 여성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특집 앙케트랬나. 휴게실에 비치되어 있던 잡지를 들고 와 맥길리스의 앞에 그 페이지를 쫙 펴 내밀던 가엘리오는 숨이 넘어가게 웃고 있었다. 그 후로 가엘리오는 잊을만하면 그 얘길 들먹이곤 했다. 정작 그 앙케트의 상위권에 본인 이름이 있었던 건 기억도 못할 거면서.
긴 한숨을 뱉으면서 맥길리스는 고개를 들어 눈을 두어번 깜박이고, 스트레칭을 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사위가 어둑했다. 빼꼼 열린 문틈으로 알미리아가 고개를 내민다. 그 인기척에 집중력이 흐려졌던 것인지, 마침 그녀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맛키, 저녁 안 먹어? 아까부터 불렀는데."
"알미리아."
"준비 다 됐다고 내려오래."
"미안."
맥길리스 파리드가 보드윈 가를 방문하는 빈도는 정확하진 않지만 그가 자의로 파리드 가에 들어가는 일보다는 잦았다. 이즈나리오가 없어도 그 집은 언제나 껄끄러운 모양이고, 따라서 가엘리오가 없는 보드윈 가는 여전히 그의 도피처로 남았다.
샹들리에의 은은한 불빛, 활기찬 공기, 왁자한 사람의 소리들은 모두 과거의 영광으로 스러져 지금은 적막하기 짝이 없는 저택. 그래도 회복이 빨랐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고, 이 걀라르호른이 역사의 패자가 될 때까지 영원히 재기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핼쑥하게 내려앉았던 구성원의 면면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당장 알미리아의 얼굴도 그랬다. 말수는 줄었고 예전만큼 말괄량이는 아니었으나 대신 얼굴에는 성숙함이 깃들었다. 보드윈의 유전자를 증명하는 것처럼 점점 성숙해지는 알미리아의 얼굴 어딘가에선 희미하게 가엘리오의 어린시절이 보이기도 했다.
맥길리스는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사진들을 기억했다. 그의 오라비는 열셋부터 급격하게 키가 컸다. 얼굴의 젖살이 빠지기 시작한 건 그 다음해였고 지금의 얼굴에 가깝게 된 건 열일곱이었다. 아마 알미리아도 그 즈음부터 본인의 얼굴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맥길리스는 제 자리에 앉았다.
본디 가엘리오가 앉았어야 할 자리다.
*
맥길리스 파리드는 알미리아 보드윈의 약혼자이자 파리드의 당주로서, 그리고 가엘리오 보드윈의 오랜 친우였던 과거에 힘입어 보드윈 가 내에서 가엘리오가 마땅히 해야할 것을 대신하곤 했다. 그의 집에 가고, 그의 방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고, 그의 자리에 앉는 것이 묵인되었다. 그것들은 아직까진 가엘리오 보드윈의 빈 자리였으나 이윽고 맥길리스 파리드의 자리가 될 것이다. 꽤나 흡족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맥길리스는 어딘지 부족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 때 양아버지의 것이었던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잔을 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서류를 보며 든 잔에선 으레 생각한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무언가 문제라도, 준장?"
맥길리스의 의아함을 기민하게 눈치 챈 것은 새로 들어온 부관이다. 맥길리스의 시선은 무심코 그의 머리 끝을 향했다가 겨우 눈높이로 내려왔다. 이스루기 카미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감사국에서도 손 꼽히던 유능한 인재였다. 물론 상관의 커피를 타는 것도. 맥길리스의 책상 위에 있던 수 종의 틴케이스를 모두 치우고 로스팅 된 커피 원두를 올려둔 것도 그였다. 물론 맥길리스가 지시한 것이다. 맥길리스는 가만히 잔 안의 내용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금 휴식을 갖지. 이 서류는 나중에 보내줄테니 나가보도록 해."
깍듯한 경례와 함께 뒤돌아 나가는 이스루기의 뒷모습을 보며 맥길리스는 서랍을 열어 초콜릿을 하나 꺼냈다. 금박의 포장지를 벗겨내며 입 안으로 밀어넣으려니 문득 서랍의 바닥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집무실의 첫 번째 서랍에는 늘 작은 초콜릿이 한 봉지 이상 들어있었고, 한 번도 떨어진 적 없었는데…….
그러고보니 초콜릿을 제가 사다 넣은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맥길리스는 바스락거리는 빈 포장지를 작게 접어 구기고는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렇군.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그걸 채워넣었던 건――. 그렇게 생각하니 입에 들어있는 초콜릿도 익숙한 맛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입 안에 엉기는 단 맛이 텁텁하기 짝이 없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셔도 생각했던 맛이 아닌지라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다. 새로운 자리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가끔 생각지도 않게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있곤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함에 희미하게 밀려오는 초조함이 있었다. 죄책감? 그런 건 아니었다. 솔직하게 내면을 들여다봐도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상상했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천장이 높고 푸른 카펫이 깔려있던 커다란 집무실은 맥길리스의 것이 되었다. 금빛 늑대의 휘장 밑에 앉게 된 것도 맥길리스가 되었고, 영면한 친우는 상상 이상으로 감상적인 정경을 환기시켰다. 그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도 이 이질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맥길리스는 흘끔 옆을 쳐다보았다. 예전 맥길리스의 집무실 한쪽에는 소파가 놓여있었다. 그 소파는 방의 주인인 맥길리스보다 가엘리오가 더 자주 썼다. 가엘리오는 하루의 스케줄이 기계처럼 정확한 사람이었다. 성실하다는 건 아니고, 쉬는 시간을 잘 지켰다는 얘기다. 특히 티 타임을. 그는 때가 되면 잘 우러난 차를 들고 와서 맥길리스의 책상 위에 내밀었고, 본인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누가 보기에 좋은 꼴은 아닌데, 가엘리오.
맥길리스가 타박을 주면 가엘리오는 소파 팔걸이에 누인 목을 뒤로 젖히고 맥길리스를 보며 답하곤 했다. 언제나 정갈한 머리카락이 중력을 못 이기고 흐트러져 쏟아져 내렸다. 살짝 처진 눈꼬리가 거꾸로 맥길리스를 훑었다.
너는 싫어하지 않잖아.
그렇게 단언하는 가엘리오에게 무얼 어쩌겠는가. 서류 작업이 많다느니, 감사기간은 질색이라느니, 책상에 앉아만 있다간 뱃살이 늘어날 것 같다며 투덜거리면 맥길리스는 그 맞은 편으로 옮겨가 어쩔 수 없이 강제적인 휴식을 가져야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보드윈 도련님을 버릇없는 근무태만자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저도 어울리는 척은 해야지.
긴 팔다리가 소파에서 늘어져 땅에 닿는 것도 가엘리오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 다음엔 무얼 했더라. 그 뒤가 흐렸다. 거기에 앉아서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을 텐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언제나 그런 식으로 낭비되었다는 사실만이 기억났다.
맥길리스는 마른 세수를 했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 탓이다. 지금은 이 넓은 방엔 소파는커녕, 어디에도 타인이 앉을 곳은 없다. 철저하게 상대에게 계급을 상기시키는 방식이다. 이 곳에 누군가 들어온다면 그들은 서있거나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쉬고 싶군."
맥길리스는 문득 본인은 한 번도 쓰지 않은 소파가 그리워졌다. 그 소파의 색이나 모양도 기억나지 않는데.
*
그 뒤로 맥길리스의 입맛은 조금 더 변했다. 초콜릿의 브랜드를 바꿨지만 어느 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커피는 어디 빠지는 데 없이 완벽했지만 언제나 무언가 어색했다. 보다 말수가 적고, 키가 작은 부관에도 맥길리스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색함을 잔뜩 안고 퇴근하는 나날이었다. 맥길리스는 자연스럽게 그의 도피처로 가는 일이 잦아졌다. 아무도 없는, 완전하게 그를 위해 준비된 자택보다 남의 집이 익숙하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곳은 도피처였다. 예전에도 지금도.
맥길리스가 보드윈 가에 출입하는 일이 전보다 훨씬 잦아진 것을 남들은 이상하게 보곤 했지만 한편으론 이상할 것도 없었다. 맥길리스와 가엘리오는 정말 오래된 친우였고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있는 게 훨씬 익숙했다. 죽은 친우를 그토록 오래 애도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맥길리스는 속으로 코웃음쳤지만 대외적으로는 그런 이미지인 게 나았으니 내버려뒀다. 가엘리오의 방은 주인이 없어도 늘 청결하게 유지되었다. 그의 방엔 여전히 세 송이의 흰 칼라꽃이 시드는 일 없이 놓여있다.
아무도 없는 빈 방, 가엘리오가 앉던 의자에 맥길리스가 앉는 것도 당연하게 되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고 의아하게 여기는 이도 없었다. 그의 침대에서 자고 가는 일은 없었지만 맥길리스를 위한 방 또한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보드윈의 하녀들은 특별히 요구가 없어도 맥길리스에게 적당한 다과를 가져다 주었다. 다만 여기서는 늘 그렇듯 커피가 아니라 수색이 엷은 홍차였다. 적당히 우러나 투명한 오렌지빛을 띄는 차를 음미하면서 맥길리스는 한 때 여기에 앉아있던 남자를 생각했다.
질리지도 않게 사진을 보고, 그의 방에 놓인 사유물을 훑어본다. 먼지 한 톨 얹혀지는 일 없고,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방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맥길리스가 기억하던 온기는 사라지고 있었다. 잊혀지고 있는 것이다. 맥길리스는 이 방의 문이 잠기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맥길리스가 알미리아와 결혼할 즈음이 되면 그럴지도 몰랐다. 꽃병엔 아무것도 놓이지 않고, 이 모든 사유물에 먼지가 쌓이고 그의 얼굴은 흐릿해져 사진을 보아도 낯설어질 것이다.
목덜미를 스치는 스산함에 맥길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찬 바람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발코니로 향하는 하나뿐인 창은 분명 굳게 닫혀있었다. 그걸 보면서도 맥길리스는 걸음을 옮겼다. 그 창 옆에는 맥길리스와 가엘리오가 앉아 담소하곤 했던 작은 테이블이 있다. 그 날, 이 테이블에 앉아 가엘리오를 생각했었다. 무채색의 상복마저도 빛나게 어울렸던 그를 보며 그를 이해하려고 하다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죽음을 생각했다. 맥길리스는 어쩐지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 그랬었다는 사실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이미지가 흐렸다.
맥길리스는 황급히 앨범을 펼쳤다. 수십 장의 사진 속에서 성장하는 가엘리오가 보였다. 아홉 살, 열 살, 열 한 살, 열 세살, 기초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 열 일곱 살에 갔던 휴가, 둘이 갔던 캠핑, 연말 파티, 카운트다운 불꽃, 사관학교 제복, 첫 임관. 그러나 그 다음이 없었다. 아무리 뒤져도 그 다음이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이 여기 있었다. 있는데, 그만이 없었다.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어색함과 이질의 원인이 여기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아마. 맥길리스 파리드를 맥길리스라고 부르는 건 가엘리오 뿐이었다.
"가엘리오?"
맥길리스는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만큼은 아직 낯설지 않았으나 당연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화답이 오지 않았다. 이 자리에 앉아서 그를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을 맥길리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방금 전까지 앨범을 보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기억나지 않다니. 저녁이 된 방에 분명 전등은 켜있었으나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았다. 굳게 잠긴 창에선 여전히 찬 바람이 스몄다.
필사적으로 그를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저를 부르던 목소리를, 그 남자는 여기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이해가 필요했다. 맥길리스는 한 번도 그를 이해하려 해 본 적 없으나 그는 맥길리스를 이해하고 있었다. 맥길리스에게 무의미한 감상을 강요하지 않았고, 서랍에 초콜릿을 넣어주는 배려도 있었다.
사무치게 명징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애정, 우정, 신뢰에 대하여 갑작스럽게 맥길리스는 확신을 잃었다. 모든 기억이 혼란스러운 탓이다. 망각은 이토록 빨랐고, 그래서 맥길리스는 당황하고 말았다. 제가 여기 앉아서 그를 생각했던 것, 그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었나.
"……가엘리오."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른다. 그 이름만은 분명하게 실체가 있었으나 답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밀도 높은 공허만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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