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안로드엔 풀페이스의 가면을 쓴 남자가 있다. 피부 한 조각 보이지 않는 군복이 장신을 감싸고 손조차 흰 장갑으로 꽁꽁 싸맨.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군복 위로도 드러나는 단단한 흉갑과 단련된 팔다리, MS 파일럿, 전함에 익숙한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원래부터 군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었다. 얼굴을 보이지 않으니 혹여 그가 여성이 아닐까 하는 낭설도 있었지만 - 더불어 그런 이유로 러스탈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헛소리도 - 그의 장신과 신체적 특징을 보면 그렇진 않고, 전신에 흉측한 상처가 있다든가 하는 소문도 있지만 그가 얼굴을 보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줄리에타 쥬리스는 그런 그를 전혀 믿지 않지만, 때로 아리안로드의 최고 지휘권자인 러스탈 에리온이 그를 작전회의에 참여시키거나 그의 의견을 채택하기도 하고, 쿠잔의 당주인 이오크와 동등한 취급을 하는 등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 배신은 하지 않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러스탈 에리온의 결정은 그녀에겐 절대적인 것이므로 그 이상의 불신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인간적으로 줄리에타도 그에 대해서 궁금증은 갖고 있다. 가면 때문에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대하기가 껄끄러우면서도 약간은 편했다. 아이러니한 노릇이다. 의식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때때로 다른 이들이 보이는 경멸이나 얕잡아 보는 표정은 꽤나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최소한 그는 그녀와 대화할 때 그녀를 경멸하거나 얕잡아 보는 표정은 짓지 않는 것 같았다. '같았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는 전투에 들어갔을 땐 기뻐하는 것 같았고, 속으로 웃기도 하고, 누군가에 대한 얘기를 할 땐 약간 애정을 담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은
'당황하고 있군.'
명백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줄리에타보다 위로는 머리 두 개 만큼, 옆으로는 1.5배만큼 커다란 남자는 아무도 없는 격납고에 앉아 조그만 상자를 앞에 두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줄리에타는 안다. 커다란 자허토르테다. 러스탈 에리온이 자택의 요리사에게 부탁해 만든 것으로, 실컷 고기를 먹고 난 뒤에 줄리에타도 한 조각을 거뜬히 먹어 치운 초콜릿 케이크. 디저트에는 별 관심이 없는 러스탈이 무슨 연유로 우주까지 저 케이크 조각을 들고오나 했더니 저 남자를 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줄리에타는 러스탈의 편애를 받는 이 남자가 조금 부럽기도 하고, 저 덩치에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하는 건가 의외의 식성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그래서 그를 보고 있었다.
신주단지 모시듯 그는 케이크 상자를 앞에 두고 5분이 넘게 그러고 있었다. 줄리에타가 보고 있던 것만 5분이니 그 전에도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러스탈 님이 주신 걸 먹지 않는 건가요?"
그래서 결국 짜증이 난 건 줄리에타였다. 기껏 챙겨왔는데 선물 받은 쪽은 손도 안 대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위다. 무엇보다 러스탈 님이 직접 주신 건데!
"아……."
정말로 그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아니, 표정일 것이다. 탄식에 가까운 신음이 탁한 기계음으로 변조되어 가면 밑에서 흘러나왔다.
"러스탈 님이 직접 준비하신 건데요."
"그런가."
"그걸 알면서도 먹지 않는 건가요? 그 가면을 쓰고서는 당연히 먹을 수 없겠지만."
"에리온 공이 특별히 신경썼다는 건 나도 잘 알아. 그렇지만 이건……."
너무 달아.
한숨처럼 터져 나온 푸념은 줄리에타에겐 뜻밖의 것이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부모님한테 혼나긴 싫지만, 싫어하는 걸 먹을 수는 없는 편식하는 어린애 같았다. 그런 어린애는 딱 질색인데도, 그렇게 덩치가 큰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 고작 케이크 한 조각에 고뇌하는 것을 보니 동정심이 절로 든다. 마치 전투 중의 이오크 쿠잔을 보는 듯 했다. 물론 그는 동정할 가치도 없는 무능력한 바보지만 이 남자는 전투만큼은 우아하게 해낼 줄 아는 파일럿이 아닌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 건가요?"
"좋아하지 않아. 특히 초콜릿은, 싫어."
그의 단호한 대답에선 어떤 종류의 분노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왜 러스탈 님은 특별히 준비했을까요? 당신을 놀리려고 그런 건 아닐텐데."
"에리온 공이 오해했을 수도 있지. 아마… 오해일 거다. 싫어하지만,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으니까. 에리온 공도 아마 그랬겠지."
줄리에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이토록 명백하게 싫어하는데 어떻게 착각을 한단 말인가?
"예전에 같이 다니던 파트너가 초콜릿을 꽤나 좋아해서."
"꽤나 순정적이었네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한기가 줄리에타의 목덜미를 스치고 갔다.
"그 사람이 복수의 대상인가요"
"…글쎄."
약간의 침묵 후에 나온 대답은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이었다. 남들한테 오해를 살 정도로 믿었던 파트너에게 실컷 배신 당한 모양이었다. 그 멍청함이 한심하다가도 줄리에타는 더 비꼬는 대신 마음을 바꿨다.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을게요."
"그래주겠나?"
남자는 금방 화색을 띈 목소리로 답한다. 정말로 싫었나보다.
"착각하지 마세요. 러스탈 님이 주신 맛있는 케이크가 버려지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게 싫을 뿐이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건 만들어준 사람에게도 실례지."
그의 대답에선 진지함이 묻어 나온다. 음식 남기는 것도 엄청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빈민가 출신인 줄리에타에게 음식을 남기는 건 대단한 사치였다. 지금은 보급이 끊일 일이 없어도 습관처럼 싹싹 긁어먹는데 이 남자도 그런걸까. 의외의 동질감을 느끼며 줄리에타는 그가 내민 케이크 상자를 받아들였다.
용케 무너지지 않은 작은 케이크를 일회용 포크로 쿡 찍어 먹으면서 줄리에타는 제게 닿는 시선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뭘 봐요?"
"아니. 잘 먹는구나 싶어서."
"칭찬인가요?"
"칭찬이다."
"고마워요."
줄리에타는 약간 들뜬 기분으로 케이크를 크게 한 입 떴다. 뜻밖의 디저트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