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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기노] 불행한 일주일
닛시님 생일 리퀘! 기노자가 아파서 코가미가 걱정하는 걸로 코우기노 받았습니다...만 그닥.....
15.04.30
대체 무슨 마가 낀 건지, 그 주의 기노자는 몹시도 불행했다.
월요일엔 무엇 때문인지 생전 안 자던 늦잠을 잤다.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해,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미묘한 시선이 기노자에게 머물렀다. 다들 입을 달싹이다 한숨을 내뱉고, 애써 시선을 외면하고, 그러다가 쳐다보고. 이유를 깨달은 건 그 직후 잠시 들렀던 아오야나기 때문이었다.
"어라, 기노자 오늘 늦잠 잤어?"
뺨에 눌린 자국이 있는데. 머리도 삐쳤잖아?
깔깔대면서 폭소하던 아오야나기는 휴대폰을 들이댔다. 이런 건 남겨둬야지! 그, 그만 둬!! 안 봐도 얼굴이 불그죽죽하게 달아오른 건 확실해서 기노자는 화장실로 피신했다. 거울을 보니 뺨에 눌린 자국이 선명해 기노자는 괜히 벅벅 문질러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화요일은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를 찧었다. 순간적인 아픔에 윽 소리가 나는 걸 어떻게든 참았는데 그 직후에 쿠니즈카와 눈이 마주쳤다. 기묘한 걸 봤다는 표정의 쿠니즈카는 고민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선 괜찮으신가요, 감시관? 같은 소리를 들으면 더 죽고 싶을 것 같았다.
수요일은 비가 왔다. 일기예보에 있긴 했으나 그게 하필이면 막 출동한 직후일 줄은 아무도 몰랐음이라. 비는 이 계절엔 보기 드문 폭우라 나가자마자 속옷까지 푹 젖을 지경이었다. 오래 신은 구두의 밑창이 미끄러워 범인을 잡으러 뛰다가 물웅덩이를 잘못 밟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괜찮아, 노부치카?"
이 사소한 불운들은 어째서 꼭 남이 보는 앞에서만 일어난단 말인가. 엉덩방아를 찧은 아픔보다도 앞에 있던 사람이 하필이면 마사오카라는 점이 놀랍도록 수치스러웠다. 하긴, 넌 옛날부터 묘하게 조심성이 없어 자주 넘어졌지. …입 다물어라, 집행관. 입술을 꽉 깨물고 지끈거리는 엉덩이를 문지르지도 못한 채 일어났다. 그 뒤로 하루종일 욱신거리더만 집에 가서 보니 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목요일은 아침부터 손목이 욱신거렸다. 타이핑을 하려고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뻐근해서 영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카라노모리는 "염좌 아냐?" 하고 물었지만 그 정도로 아프지 않아 기노자는 그냥 상비용 파스를 하나 받아오는 걸로 무시했다. 이런 건 병원을 가라고. 오늘도 가늘고 긴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귀찮은 듯 말하는 카라노모리에게 기노자는 귀찮아…라고 드물게 솔직하고 나태한 답변을 내뱉었다. 무릎에도 멍, 엉덩이에도 멍, 손목에는 파스를 붙이고 여전히 찌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어기적거리면서 기노자는 일을 계속했다.
그 외에도 아끼던 개 모양의 키홀더를 잃어 버린다던가, 커피를 엎는다던가, 셔츠 단추가 하나 떨어져 하루 종일 재킷을 껴입고 다녀야 했다던가. 수요일의 주범이었던 구두는 결국 버렸고 어디서 걸렸던 건지 집에서 입는 아끼는 가디건은 올이 늘어나 있었다. 내내 우중충하게 비가 오던 날씨 때문인지 정신 차리니 히아신스는 구근이 썩어 있었고, 바뀐 자재과 과장은 대하기 까다로운 상대라 코가미의 스파링 드론 파손에 대해 몹시 깐깐한 태도를 보였다. 협력수사를 나간 3계의 감시관과는 사사건건 부딪혔고 출동을 나갔다가 돌아오려니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아 또 멍청히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지쳤어, 다임……."
목요일 퇴근, 기노자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애완견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다임은 오늘따라 낑낑대며 위로도 안해주고 싫은 듯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더니 결국 손목을 한 번 툭 치고는 쌩하니 러그 깔린 방 구석으로 가버렸다.
아, 파스…… 손목의 파스 냄새가 너무 독해서 그런 게 분명했다. 사랑하는, 유일하다시피 한 가족에게도 거부 당하니 이젠 눈물이라도 날 것 같다. 손목의 파스를 떼고 신경질적으로 쓰레기통에 처박은 기노자는 간신히 세수를 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온 몸이 늘어진다. 무겁고 피곤했다. 이대로 한 24시간쯤 깨지 않고 자고 싶었다. 직업적성고사 직전의 일주일도 이렇게 피곤하진 않았다. 아니 신체적으로는 그렇게 힘들진 않은 것 같은데 정신적으로 매우 지쳤다. 카가리는 또 보고서를 밀렸고, 쿠니즈카는 쉰다는 핑계로 은근슬쩍 분석실로 가 안 돌아오기 일쑤였으며, 마사오카는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1계의 집행관은 넷. 카가리, 쿠니즈카, 마사오카, 코가미. 그래 코가미는…….
기노자가 온갖 불운을 겪는 일주일 동안 코가미와 기노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별 트러블이 없는데다 코가미는 뻑하면 어딘가로 가버렸으니 - 그래봤자 서고라든가 자료실이라든가 겠지만 - 다른 사람들이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눈치채지 못했다기 보단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걸지도.
기노자와 코가미가 어린애 같은 싸움을 계속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용케 10년이나 친구였구나 싶을 정도로 코가미와 기노자는 성격이 맞지 않았다. 코가미는 이제 사무실에서도 담배를 뻑뻑 펴대는 헤비스모커였고 기노자는 여전히 기관지가 약해 코가미가 사무실에 있는 날이면 환기팬을 아무리 돌려도 목이 조금 부어있었다. 둘의 관계는 대체로 기노자의 고집을 코가미가 굽히고 받아주는 식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코가미가 거부하기 시작하면 그대로 끝이었다. 지난주의 어느 날, 마키시마 건으로 또 한바탕 해버린 게 코가미의 심기를 건드린 게 분명했다.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집행관 주제에 감시관의 명령을 거부하겠다고?"
"쉬는 시간에 뭘 하든 그건 내 자유지."
"환상 속의 망령을 쫓느라 업무를 소홀히 하는 건 맞지 않아, 코가미 집행관."
"환상?"
"그래. 환상이다."
그러고는 또 뭐, 온갖 얘기가 오갔겠지. 너는 옛날부터 그렇게 꽉 막혔다느니, 그러는 너는 확증도 없는 사람을 쫓는다느니, 넌 형사의 자질이 없다, 너라고 제대로 된 형사일 것 같느냐…….
"넌 매정해, 기노."
"안되니까 인신공격이라는 건가?"
"자기 안위만 생각하느라 부하의 억울한 죽음은 신경도 쓰지 않는 너한테는…."
아니, 말을 말자.
코가미는 제 할 말만 하고 돌아가버렸지만 기노자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턱 밑에 카운터 펀치라도 먹은 기분이었다. 매정? 실망? 내 안위만 생각했다고? 그럼, 내가 당장 국장을 이겨먹고 독단으로 사사야마의 수사를 계속하기라도 해야만 했단 말야? 너처럼 잠재범이라도 되어야 했다고?
사사야마를 마지막으로 토마 코자부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건은 그대로 종결이라고 국장이 지시를 내렸다. 그것 말고도 기노자에겐 할 게 너무 많았다. 한 명이 사라진 감시관의 공석은 도저히 메워지지 않아 기노자의 일은 두 배가 됐다. 네 명의 집행관 중 제대로 맘에 드는 건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매정하면, 너는 인정이 넘쳐 흐른다 이거야?
그 점에 대해선 기노자도 할 말이 많았다. 애써 잊고 있었던 것들이 물밀듯이 흘러넘친다. 그 끔찍한 시체를 본 건 코가미 혼자만이 아니었다. 기노자도 봤다. 가끔은 꿈도 꿨다. 집중 테라피를 3개월이나 받았다. 범죄계수는 느긋하게 올라 20대를 유지하던 게 벌써 아슬아슬하게 40을 오갔다. 색은 늘 비 오는 하늘처럼 우중충했다. 조금이나마 상승한 범죄계수를 보고 국장은 오늘도 '잠재범의 유전요소에 대해서 아직 알려진 바는 없지만……' 같은 소리를 운운했다.
생각하면 기분은 끝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아니, 잊자. 잊어버려라, 기노자 노부치카.
지금까지 안 좋은 일은 많았다. 이런 피로는 일상이었다. 속이 쓰리고 머리도 아프고 목도 칼칼했다. 차마 색상을 체크할 엄두는 나지 않아 기노자는 제산제와 색상보조제를 먹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지. 나아지겠지. 뒤척일 때마다 엉치뼈와 고관절이 뻐근하고 손목은 욱신거렸다. 모르고 누른 허벅지의 멍든 부분도 아팠다. 이번 주의 불행이 차례대로 생각나 기노자는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길. 내일만 지나면 주말이었다. 이번주는 내내 비번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기노자는 까무룩히 잠에 들었다.
온 몸이 나른하다. 조도를 낮춘 실내의 천장은 낯설었다. 눈이 뻑뻑해 무심코 손을 들어 비비려다 손등에 꽂힌 주사바늘에 기노자는 당황했다. 시선을 쫓아가면 중간에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팩들이 나무에 열린 열매 같았다.
"일어났어, 기노?"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코가미였다. 일주일만에 제게로 향한 코가미의 목소리가 낯설어 기노자는 그를 부르다가
"코…가미?"
잔뜩 메마르고 쉰 제 목소리에 더 당황하고 말았다. 몸을 일으키려다 순간 머리가 띵해 기노자는 도로 누워버렸다. 직전까진 몰랐는데 뇌가 느릿한 진자추가 되어 끊임없이 두개골을 건드리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무리하지 마. 가벼운 뇌진탕이래."
천천히 침대를 세운 코가미가 차가운 물을 따라 기노자에게 건넨다. 얼떨결에 받아 마시고 보니, 꽤 목이 말랐던 모양인지 기노자는 물 한 컵을 다 마셨다. 후끈후끈하게 열이 올라 건조했던 목과 혀에 조금 물기가 돌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기억 나?"
"아마……."
기노자 노부치카의 불행한 일주일은 기어이 입원으로 마무리를 지은 모양이었다. 금요일 아침의 몸상태는 최악이었다. 가벼운 미열. 수요일에 비를 쫄딱 맞고 목요일엔 차가 고장 나 그대로 지원팀을 기다릴 때까지 밖에 있었던 게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손목이나 엉치뼈가 아니라 이젠 온 몸이 욱신거렸다. 손의 감각도 묘하게 둔했고 한숨이 끊임없이 나올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카가리가 네 번째 보고서를 보낸 순간 기노자는 정말 책상 위에 있는 화분을 집어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에어리어 스트레스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면 아마 기노자는 정말 집어던졌을 것이다. 이미 손은 화분을 쥐고 있었다.
출동했더니 원인은 시시하게도 - 이런 말은 하면 안되지만 - 웬 남자 둘의 싸움이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언성을 드높이며 치고 박고……. 치정싸움이라도 되는 모양인지 중간에 일행인 듯 끼어있는 여자는 새파랗게 질린 안색이었다. 도미네이터를 쓸 건수도 못되는 구만. 마사오카는 그렇게 탄식했고 코가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쿠니즈카는 비번, 카가리는 보고서 기한이 임박해 데려올 수 있는 게 둘 뿐이었다. 둘이 제 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명치 끝이 욱씬거렸다. 돌아가자마자 약부터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기노자가 앞으로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기노자의 의식은 거기서 블랙아웃.
작정하고 나온 모양인지 한 쪽이 휘두른 벽돌이 그대로, 정말 불행의 끝을 달리던 기노자의 머리를 빗겨 나가고 말았다.
"천만다행이야. 관자놀이가 찢어져 피가 줄줄 나는데, 아저씨는 완전 사색으로 달려가고 남자들도 놀라서 싸움을 그치고, 거기 있던 사람들 전부 놀라서 에어리어 스트레스는 더 올랐지, 일단 구급 드론은 불렀지만 감시관이 쓰러졌으니 우린 꼼짝도 못하고…… 정말 난장판이었다고."
"그 다음은…?"
"아오야나기가 와서 이 쪽으로 옮기고 일단 사건은 해결. 알고 보니 치정 싸움이 아니라 3계에서 쫓던 사기사건 용의자인 모양이야. 덕분에 3계에선 또 난리더군."
기막힌 우연의 일치에 기쁘기보단 한숨부터 나온다. 3계의 감시관은 사사건건 기노자에게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이었다. 돌아가면 얍삽하게 공적을 가로채갔네 뭐네, 집행관 관리도 못하고 꼴사납게 현장에서 나자빠진 감시관이란 소리를 족히 세 달은 들을 터였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건 머리를 맞은 탓인지, 감기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기노자는 손으로 주변을 더듬었다. 이쯤 어딘가에 너스콜이 있을 터였다. 오늘 출동으로 일이 세 배는 되었으니 밤이라도 새지 않으면 주말은 쉬지도 못할 게 뻔했다. 어질어질한 머리에 눈을 감고 벽을 더듬는데 손 끝에 걸린 건 벨이 아니라 따뜻한 체온이다. 기노자의 손과는 다른 두텁고 거친 손가락에 조금, 아니 많이, 어깨가 튀어오를 정도로 놀랐다. 다른 사람의 체온에 이렇게 놀라게 될 줄은 기노자도 생각하지 못했다.
"퇴원하게?"
"일이 산더미인데… 나보고 여기 처박혀 있으라고?"
"그러지 마, 기노. 뇌진탕은 하루는 더 상황을 봐야 되고, 손목도 아프대며. 밥은 제대로 먹고 있어? 들쳐 업었는데 주머니에서 약이 우수수 떨어져서 더 놀랐잖아. 열도 있고. 걱정되니까."
"걱정?"
걱정이라고?
"누가 누구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일주일치의 불행으로 쌓였던 분노가 기노자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비단 일주일치만이 아니다. 이건 코가미의 나쁜 버릇이다. 상대는 신경 쓰지도 않고 제멋대로 호의를 베푼다. 그래놓고 가늠할 새 없이 멀어졌다가 또 가까워지고. 이전에도 몇 번씩 그런 식으로 휘말렸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코가미가 치료센터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코가미의 책상을 정리한 건 기노자였다. 사사야마의 방을 정리하고 코가미의 짐을 가져다 놓은 것도 기노자였다. 집행관 적성 통보를 하러 갔을 때도 코가미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고 자연스럽게 기노자의 옆이 아니라 앞에 앉았다. 코가미에게 집행관 적성 검사 제안서를 올린 건 기노자였다. 코가미는 기노자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실내흡연은 금지라고 누누이 얘기해도 재떨이는 치워지는 법이 없었다. 자재과와 경비과에 들러 코가미가 파손한 것들에 대해 사과하고 협상을 벌이는 것도 질렸다. 일이 밀려 하루 종일 일하고 밤을 새다 보면 절로 옆자리에 눈이 갔다.
"내일은 지구가 자전 방향을 바꿀 모양이지?"
"기노."
"내 걱정을 해준다니 고마워서 눈물 날 것 같아, 코가미."
냉막한 목소리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충분히 빈정대고 있었다. 배배 꼬인 심사는 가만히 누워 있다간 온 몸을 뒤틀어버릴 것 같았다. 기노자는 기어이 코가미의 손을 뿌리치고 벨을 눌렀다. 무슨 일이세요? 환자분 깨어나셨나요? 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에 기노자는 짧게 퇴원 의사를 내비쳤다. 의사가 곧 갈 거라며 대화가 끝나자마자 기노자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땅에 다리를 딛는 순간 머리가 아찔하게 돌아 휘청였다.
"거봐. 아직 무리…."
"손 떼."
숨이 가빠왔다. 코가미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받쳐주고 있는 코가미가 없다면 솔직히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몸은 늘어지는데도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소리 없이 열린 자동문에 인기척이 더해져 기노자는 굳건히 마음을 먹고 돌아섰다. 그 순간 또――.
말썽쟁이, 고집불통, 독선적이고 쓸데없이 깐깐하다.
파리한 얼굴은 죽은듯이 고요했다. 피곤하면 입술을 쥐어 뜯는 버릇을 여즉 고치질 못했는지 마른 입술은 군데군데 예민하게 붉어 도드라져 보였다. 막무가내로 퇴원하겠다는 걸 억지로 눕혀 놓고 의사에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주말 내내 진정해야 되니까요. 의사의 말이 그토록 고마울 데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기노자의 불운에 대해선 코가미도 익히 들었다. 지각하고, 넘어지고, 찧고, 손목에 무리가 가고, 감기기운도 있고, 기노 씨 점심 먹는 것도 못 봤어. 카가리는 넌지시 코가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매번 기노자와 투닥대는 카가리지만 그래도 걱정은 됐던 모양이었다. 입도 짧은 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대로 위로 오니 어련할까 싶었다.
손 떼.
무서울 정도로 서늘한 눈초리는 동시에 격정적이었다. 분노로 타들어가는 눈동자는 누구도 아닌 기노자 자신을 태우고, 좀먹고 있었다. 기노자는 놀랄 정도로 강하다. 책임감과 의무감, 코가미가 모르는 그의 생이 빚어낸 어떤 것들이 늘 기노자를 붙들어 매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그 어떤 외압과 불운, 부조리에도 똑바로 그를 지탱했고 그래서 가끔은, 얽어 매는 것 같아 보였다. 지금도 그랬다. 지금 그를 붙잡아 맨 건 무엇일까.
그렇게 화가 났으면서도 기노자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것. 코가미도 알고는 있었다. 코가미의 책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자리에 가져다 두고, 사사야마의 방을 정리하고 코가미를 위해 남겨두고, 또 많은 걸 하고 있겠지. 감시관이 한 명 밖에 없으니 단독 수사는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코가미와 분담하던 걸 혼자서 해내야 되는 기노자가 노골적으로 코가미를 원망하고 비난하더라도 할 말은 없었지만, 기노자는 끝끝내 말로는 하지 않았다.
"너는 강해."
코가미는 기노자의 거칠고 마른 손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예전엔 이렇게 만지면 부끄러운 듯 손을 꼼지락대다 겨우 맞잡아 주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빼버린다.
"그렇지만 과신하지는 말아줘."
무너지는 등을 보며 코가미는 순간 시공간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아득하게 멀었고 동시에 느릿했다. 기어이 손이 닿지 않아 차가운 바닥에 쓰러지고만 기노자의 머리에서 선혈이 낭자하게 흘렀을 때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피가 통하지 않아 손끝이 저릿했다. 들쳐업은 기노자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더 무서웠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신체는 원래 평소보다 더 무거운 법이라 영영 기노자가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가 둔중한 무게로 다가왔다.
작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께만이 위안이었다. 입술은 코가미가 기억하는 것보다 거칠었다. 퇴원하면 입술보호제라도 하나 넌지시 건네볼까, 밤새 코가미 신야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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