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집이 잔뜩 난 렌즈 너머로 일그러져 바라보는 눈동자와 이죽이는 입꼬리를 확 때려버리고 싶다고, 야타는 생각했다. 얼마나 거하게 뒹굴었는지 깨끗했을 셔츠와 바지는 온통 흙투성이에 먼지투성이, 시퍼렇게 멍이 올라 부은 입가를 마디마다 찢겨나가 똑같이 부어오르고 피가 거무죽죽하게 말라붙은 손으로 문지르는 게 퍽 가관이었다. 그 꼴로도 싸울 힘이 남아있는지 시비조로 쏘아붙이는 끝이 갈라진 목소리는 늘어졌으면서도 나즈막하고, 그러면서도 불퉁하고 뾰족하게 날이 서 있다. 누가봐도 빈정대는 꼬라지에 열이 뻗쳐 이걸 진짜 한 대 패 말아 고민하는 사이 바라보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녀석은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볼 일 없으면 꺼져."
그 때 그냥 한 번 걷어차고 갈 길을 갔다면 야타 미사키는 후시미 사루히코를 그저 어느 날의 성격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며 잊었겠지만 무슨 심정이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일단 좀 씻자. 더러워."
그 말에 끈 떨어진 인형처럼 늘어져 있던 후시미가 벌떡 일어나 야타의 다리를 걷어찼고 순식간에 땅바닥에 쳐박힌 야타는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나 후시미가 문지르던 부어오른 볼을 한 대 또 날려버렸다. 누군가 와 뜯어말릴 때까지 개처럼 싸워대고 둘 다 양 팔을 붙잡혀서도 어떻게든 한 대라도 더 치려고 바둥거렸다. 이 녀석하고는 죽어도 친해질 수 없을 거라고,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이, 야타. 저거 셉터4 녀석들이지?"
창가에 앉아 다 마신 커피의 얼음만 와그작와그작 씹어먹고 있으려면 옆에 있던 녀석이 야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반사적으로 바짝 날이 서 퉁겨오르듯 늘어져 있던 허리를 피고 일어나 어디? 어디? 하고 두리번거리면 저기, 하고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가면 확실히, 있었다. 거무칙칙하고 보기만 해도 숨 막히게 갑갑한 딱 달라붙는 푸른 제복, 구시대의 유물같은 긴 검을 찬, 제멋대로 뻗친 머리를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한낮의 태양에 인상을 찡그리는 후시미 사루히코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건지 가로변 건물 틈새의 그늘에 숨어 그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에 녹아내릴 것 같다는 듯 축 늘어져 있으면서도 세상만사 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잊지 않는 듯 온 몸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표정은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바가 없었다.
다만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눈동자가 어딘가로 향하다가 불현듯 슬쩍 둥글게 누그러지는 순간, 미사키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 싫어. 여름 따위 왜 존재하는 거지."
나름대로 냉동고 제일 안 쪽에서 꽝꽝 얼어있는 걸 골랐거늘 벌써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후시미는 중얼거렸다.
"너, 겨울에도 그 얘기 했어."
"겨울도 싫어."
툭 내뱉은 말은 아스팔트에 들러붙은 껌딱지 같이 주욱 늘어져 있어 야타는 그냥 웃어버렸다. 처음 만났을 땐 이 목소리가 진짜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드물게 풀어진 목소리라는 걸 야타는 금방 눈치챘다. 평소에 말할 땐 자기 주장이 강한 말투를 구사했고 필요하다면 언성을 높이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그래도 어딘가 귀찮은 듯한 구석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느슨해져 있는 건 오직 자신 앞에서일 뿐이라고 깨달았을 때 야타는 묘하게 기뻤다.
"그만 웃어. 뭐가 그렇게 웃기냐."
아이스크림을 입 안에서 우물거린 채 후시미는 툭 쏘아붙였지만 그 끝에 여전히 남아있는 늘어짐에 야타는 웃었다.
"너, 나 많이 좋아하는 구나."
"뭔 소리야."
"아니. 좋았어, 오늘은 이 형님이 가서 볶음밥이라도 해줄게, 사루!"
아스팔트가 이글이글하게 익어가도록 더운 날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수직상승, 하이텐션으로 후시미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소리치면 후시미가 미간을 팍 찡그리고 미사키를 쏘아보더니 이내 또 능글맞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 자세 불편하지 않아, 미사키?"
미사키, 라는 이름에 꼬박꼬박 악센트를 주어가며 어깨라도 낮춰줄까? 하고 덧붙이는 얼굴은 여전히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재수 없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야타는 알고 있다.
"입 닥치고, 파인애플 괜찮지? 오늘은 햄 말고 특별히 돼지고기도 넣어주마."
"아. 그거 나쁘지 않지."
풀어져서 희미하게 올라가는, 햇볕에 하얗게 반사되는 부드러운 미소를 야타는 정말로 좋아했다. 비밀기지에서 발견한 보물과도 같은 미소는 자신에게밖에 보이지 않고 그래서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랬는데.
후시미는 건물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 걸어갔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을 보면 거기엔 또 충분히 익숙한 얼굴, 청의 왕이 있었다. 둘 다 썩 맘에 들진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어라 대화를 하다 걸었지만 그 어깨는 나란했고 여름의 환한 태양 밑에서 걸음마다 자국을 남기는 희미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해, 야타?"
"…냅둬. 멍청이냐, 너는. 옆에 있는거 왕이라고. 우리따윈 상대도 안돼."
목이 메어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내 대답하고 미사키는 유리창에서 시선을 떼었다. 고개를 저어 애써 지워보려 해도 그 희미한 미소가 확실한 궤적을 띠고 야타의 눈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 전부 과거다.
야타는 눈을 꾹 감고 되뇌었다.
야타의 옆에서라면 절대로 입지않았을 꽉 죄는 제복을 입고 키는 전보다 더 커있었다. 머리는 좀 더 길고 전에는 잡아본 적도 없는 긴 검을 우아하게 다루는 녀석따위 모른다. 풀어지고 느슨한 목소리로 아무리 난리를 쳐도 꿋꿋하게 '미사키'라고 불러주거나 뭐가 그리 아까워서 열 번의 비웃음 다음에 한 번이나 겨우 제대로 웃어주던 그 녀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소가 너무 좋아서 지리하고 유치한 말싸움에 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자신도 전부 과거였다. 그 녀석은 과거에 진즉 사라졌고,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를 향해서 저렇게 웃는 후시미 사루히코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