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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엘] 사랑의 인사
언제나 시도하는 최애캐에게 빨간 구두 신기기. 1기 이후 가엘리오가 맥길리스에게 감금되었다는 설정.
아직까진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기에......
무결함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맥길리스 파리드는 생각했다. 어린 시절엔 그것이 선천적인 줄 알았다. 타고나기를 그런 사람만이 순수로 남는 것이라고. 전장 10km의 섬에서 난처럼 키워진 아이들의 무지를 맥길리스는 비웃었으나 속으로는 부러워 마지 않았다. 순수한 호의로 다감하게 웃어주는 미소를 보며 맥길리스도 그렇게 웃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잖이 바랐다. 그러나 어정쩡한 미소만이 그가 지을 수 있는 전부였다.
물론 그들도 평생을 알력 다툼 밑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답게 영악했다. '세븐스타즈'라는 타이틀을 단 이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는데 가엘리오는 그 운명에 아주 딱 맞춰진 남자였다. 그는 감정의 기복이 심했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나 웃는 낯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그 쾌활함이 가장된 것 같지 않았다. 그를 싫어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가엘리오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의 가벼움이 타고난 경박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맥길리스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 붙어있지 않았다면 그도 몰랐을 것이다.
가엘리오는 때때로 무거운 돌처럼 침잠했다. 그 무게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워졌다. 맥길리스는 그래서 가엘리오가 우울해 할 때가 좋았다. 가엘리오는 제 감정의 기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을 아주 질색했으나 맥길리스만은 예외였다. 맥길리스는 그의 우울을 공유할 자격을 갖고 있었다. 가엘리오는 위로를 바라진 않았지만 설마 옆에 있는 맥길리스가 그의 우울을 마음껏 즐기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엘리오."
그 우울의 순간이 자연적으로 찾아오길 바랐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방 안의 구조는 완벽했다. 보드윈 가에 남아있는 가엘리오의 방과 똑같았다. 둘이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던 테이블, 고풍스러운 책상, 부드럽고 푹신한 침대, 청결한 이불과 시트, 원래의 등은 너무 눈부셔 아늑한 것으로 바꿨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한 쪽엔 식물을 가져다 놨다. 햇볕을 받지 않아도 청량한 녹빛을 유지할 수 있게끔 개조된 품종이었다. 가엘리오가 손 닿는 곳에 있는 건 모두 집어던지는 바람에 가구는 모두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고 잡다한 것들은 하나도 없어 살풍경해보이는 게 아쉬웠으나 맥길리스는 그 상태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름을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 가엘리오의 옆에 앉아 맥길리스는 눈을 감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각별히 신경썼지만 요즘은 자잘한 일이 많아 때를 놓친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건 이거대로 나름의 맛이 있다. 머리를 기르게 해서 묶어볼까.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맥길리스는 조심스럽게 가엘리오의 앞머리를 쓸어올려 주었다
"―손대지 마!"
자는 척 하더니 1초도 버티지 못하고 가엘리오는 맥길리스의 손을 쳐낸다. 찰싹 소리는 매서웠으나 예전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진 충격량이었다. 행동반경이 방 하나로 한정된 데다 부상의 후유증도 있어서였다. 오일과 부동액이 넘쳐흐른 콕핏에서 정신을 잃는 바람에 그대로 독성에 노출되었다. 캡슐 속에서 꽤 오래 있었으나 한 번 망가진 면역체계는 잘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약간만 무리해도 고열을 내며 앓아누웠고, 파충류처럼 체온조절이 되지 않아 그토록 좋아하던 목욕도 오래 할 수 없었다. 근육이 도드라지던 선이 굵었던 신체는 이젠 한 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얄쌍해졌다. 조심성 없어 늘 자잘하게 생기던 상처들도 찾아볼 수 없었고, 햇볕에 건강하게 그을렸던 피부는 창백하고 투명하게 반짝인다.
그는 이제 경박을 연기하지 않는다. 언제나 우울하고 그래서 우아했으며 아름다웠다. 이제 저를 쳐다보는 눈동자는 예전처럼 다정하지 않다. 살이 빠져 날카로워진 얼굴 윤곽 속에서 엷은 청자색의 눈동자가 분노로 형형하게 빛났다.
맥길리스는 그 때마다 사랑스러움을 참기가 힘들었다. 뱃 속이 뜨거워진다. 당장 명치를 후려치고 언제나처럼 허덕이게 만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는 맥길리스가 언제나 참고 있던 욕망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듬어지고 무결해지고 있었다.
"오늘은 선물을 가져왔어, 가엘리오."
"뭐가 됐든지 필요 없어!!"
뜨겁게 달아올라 벌써부터 바짝 마르는 목을 애써 축이는 맥길리스의 이성을 붙잡은 건 아직까지 손에 들고 있던 가벼운 쇼핑백의 손잡이였다. 별다른 장식도 없이 브랜드명과 로고만 박힌 종이백이지만 거기 적힌 이름은 현재 최고로 잘 나가는 디자이너의 이름이었다. 무도회에서 신기엔 너무 높았고 군인이 신기엔 너무 화려해 걀라르호른 내에선 지양되고 있었으나 그의 구두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순식간에 매진된다고 했다.
이번 시즌 신작으로 나온 11cm의 날카로운 스틸레토 힐은 누구의 시선이라도 사로잡을 검붉은 색이었다. 덩굴처럼 은으로 장식된 뒤축엔 아주 작게 세공된 다이아몬드가 7개 들어가고, 매끈하게 가공된 어린 소가죽에 맨발로도 가볍게 피부에 밀착한다 - 고 했다. 여전히 숙녀가 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알미리아가 맥길리스에게 장장 한 시간에 걸쳐 설명해준 얘기였다. 알미리아는 최근 들어서 더욱 더 높은 굽의 신발과 허리 다트가 꽉 잡힌 드레스 같은 것에 눈길을 주곤 했다. 그녀 개인의 열망과는 달리 보드윈의 후계자 자리를 메워야 된다는 수군거림 때문인 것 같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그 신발이 누구라도 사로잡을 매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맥길리스도 첫 눈에 시선을 사로잡혀, 반나절을 고민하다 부랴부랴 주문을 넣었으니까. 그에게 다른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이런 식으로도 유용했다.
원래 가격에 세 배를 얹어 맞춘 것으로도 모자라 원래 들어가는 다이아몬드 대신 미리 적절하게 가공한 블루 다이아몬드를 건넸다. 그리하여 완성까지 다시 세 달, 상단으로 수신해 다시 맥길리스의 손으로 들어오기까지가 2주나 걸렸고, 받아놓고도 시간이 없어 갖고 있던 게 한 달이었다.
정말 가상한 노력이 아니지 않을 수 없었으나 구구절절하게 설명해봤자 가엘리오가 이해할 리는 없었으므로 맥길리스는 그냥 말없이 박스를 열었다. 얇은 종이에 쌓여져 있는 물건이 너무 뜻밖이라 가엘리오는 순간 얼이 빠진 모양이었다. 잠깐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쳐다보던 가엘리오는 이내 "미친……." 이라고 말을 흐리다가 본격적으로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너 돌았지! 어디까지…, 어디까지 사람을…! 발버둥치는 기세에 손과 발에 걸린 사슬이 쩔그럭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살갗이 닿는 수갑 안 쪽에는 두툼한 가죽을 덧대놓았으나 이러다간 사슬에 걸려 다른 부분의 피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가벼운 찰과상이라도 낫는 데는 예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고 세균 감염의 위험성도 있었으므로 맥길리스는 재빨리 그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네가 안 신으면 이건 알미리아에게 갈 텐데."
알미리아. 그녀는 여전히 가엘리오의 약점이었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다 클 때까지 원한다면 맥길리스는 그녀에게도 똑같은 구두를 사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제 오빠의 사이즈로 맞춰진 커다랗고 높은 구두를 받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할지는 맥길리스도 몰랐다. 가엘리오도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발버둥은 순식간에 그쳤다.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질근질근 마른 입술을 씹는 가엘리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맥길리스는 흠 하나 없는 아름다운 구두를 꺼내 가엘리오의 양 발에 신겼다.
"미친 놈…. 너는 진짜 미친 놈이야, 맥길리스."
메이는 목으로 가엘리오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언제부터 미쳐 있었을까. 언제부터 너를 사랑하고 있었을까. 갑작스럽게 등장한 아인 달튼의 존재와 예상치 못하게 생겨난 그들의 유대감을 이용하자고 생각했을 때도 그를 사랑한다는 자각은 없었다. 찢어진 콕핏 안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꺼내온 것도 반은 충동이었다. 의료팀을 붙이고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하루에 한 번씩 받는 보고는 의무적이었고 충동에 대한 후회도 가끔 들었다. 골칫덩이를 떠안아 버렸다고 생각했고 가엘리오가 눈을 뜰 때까지 지겹다고도 생각했다. 이대로 캡슐의 전원장치를 내려버리면 죽을까? 그러면 사체는 또 어떡한담. 이걸 담당한 의사들은?
그러나 모든 것은 가엘리오가 눈을 뜨고 악에 받친 시선으로 그가 자신을 노려보는 순간 해결되었다. 맥길리스 파리드는 가엘리오 보드윈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우울에 잠겨 있을 때 때때로 손을 뻗고 싶었던 것도, 누군가에게 웃을 때마다 그게 거짓임을 알면서도 거친 풍랑에 휩싸였던 것도, 아인 달튼에 대해 이유없이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 것도, 전부를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맥길리스 파리드는 제가 집요한 남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잊어버릴 법도 한 과거의 기억들을 지금까지 끌어안고 갈 리가 없었다. 그 집착이 가엘리오에게 닿아버렸으니, 가엘리오도 참 큰일이었다. 남 얘기 하듯 생각하며 맥길리스는 불거진 발등에 키스했다.
"사랑해."
"제발, 헛소리 좀 그만 해."
"사랑하고 있어, 가엘리오."
"…알미리아를, 행복하게 해준댔잖아."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녀가 불행해지는 건 아냐."
뻔뻔하게 흘러나오는 말에 가엘리오는 울 것 같았다. 분노 속에서도 때때로 그는 이런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안타까워 하는 것 같기도,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건 만들어진 무결함 속에서 유일한 흠이었다. 맥길리스는 가엘리오가 오로지 예리한 감정만을 내비치길 바랐다.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만이 맥길리스에게 와닿는 유일한 길이었다.
"눈 감아."
가엘리오는 당연히, 맥길리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알면서 한 말이다. 가엘리오는 키스할 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버리니까 억지로 뜨고 있게 하지 않으면 안됐다. 가까이에서 보는 청자색의 눈동자는 언제나 빨려들어갈 듯 아름다웠다. 그가 신고 있는 신발 뒤축의 푸른 다이아몬드다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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