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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Z26] 코우기노 신간 수량조사 안내(~8.18)
8월 23일(일) D.FESTA(동네페스타) Z26 '선셋팸'에서 판매하는 PSYCHO-PASS 코우기노 소설 'YURI YURI YURI'의 수량조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수량조사 기간은 8월 18일까지이며 상세 안내는 다음과 같습니다.
YURI YURI YURI /코가미 신야X기노자 노부치카/B6 떡제본/60페이지 내외(미확정)/5~6000원(미확정)
본편 1기 센구지 토요히사 에피소드 이후로 진행되는 IF 설정으로 하나하키(짝사랑을 하면 꽃을 토하는 병) 소재를 차용합니다. 연애와는 거리가 먼 전개, 본편과는 별개의 에피소드(백합요소 포함) 등장, 사망 소재를 포함하므로 민감하신 분들께서는 신중히 생각해 주시고, 구매 의사가 있으신 분들은 해당 폼을 작성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량조사 폼은 이 쪽! ☞ http://durl.me/9k3k5n
▼Sample
“기노 상. 그거 시끄럽거든요. 차라리 얼른 진찰이라도 받고 오든가.”
잔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아 카가리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한 소리 뱉었다. 말이 좀 거칠긴 해도 정말로 시끄러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안다. 평소 같으면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일갈할 기노자도 얌전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저도 그 쪽엔 동의합니다. 너무 오래됐어요, 감시관.”
“조만간……가, 긴 할 거니까. 일단…은 상황.”
자꾸만 잔기침이 나와 기노자의 말이 끊겼다. 참으려다가 되려 더 심해져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계속 기침을 해대는 기노자의 태도에 카가리와 쿠니즈카는 한 번 눈을 맞추고는 고개를 젓고는 재현 홀로그램을 켰다.
“뭐, 보시다시피.”
“보고서와 크게 다를 바는 없네요. 현장도 이게 다고.”
빛도 잘 들지 않는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유리 온실 바닥에 감색 교복을 입고 쓰러진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기숙사제 여학교에서 의문사한 열 여섯 살의 사체였다. 창백한 피부, 검은 머리카락, 입술에 말라붙은 피가 묘하게 생생한 색이라 잘 만들어진 밀랍 인형 같아 보였다.
실제로는 아예 틀린 말도 아니려나.
카가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고서를 훑었다. 사체가 발견된 것은 그저께 오후. 사망자와 같은 원예부였던 동급생이 2주간의 동계 방학을 마치고 이틀 뒤, 화분 상태를 보러 왔다가 발견하고 즉시 선생님을 불렀다. 사인은 심정지, 특이할 만한 외상없음. 장내 출혈 다수. 입가에 토혈한 흔적이 있었고 폐 안에도 피가 고여 있었다. 사망 시각 추정 불가.
교내의 화상 기록을 확인한 결과 마지막으로 찍힌 건 방학 셋째 날. 밀랍 인형이란 카가리의 비유가 틀린 말도 아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2주가 지난 사체는 딱딱하게 굳어 부패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플라스티네이션.
처음 보고서를 받은 1계의 머릿속에 스쳐간 것은 모두 같았다. 아마 신고한 학교 측도 다른 생각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이제야 형사과로 넘어온 데에는 간신히 엊그제 보고서를 넘긴 오소 학원 연쇄 살인 사건 탓이 클 것이다. 오브제로 장식 된 소녀들과 비슷한 형태의 사망이라면 한 번쯤은 동일범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
“플라스티네이션…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담배를 지져 끄며 카라노모리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복잡한 수치들과 몇 장의 사진들이 연달아 커다란 모니터를 가득 메웠지만 카가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일단 피부 조직에 약품이 하나도 묻지 않았거든. 실제로 신체 조직 어디에서도 특기할 만한 화학 성분 같은 건 검출되지 않았고.”
제 아무리 기적적으로 플라스티네이션 처리 시간을 앞당기는 마키시마 쇼고의 약품이라도 사체를 담그지 않고서는 말끔하게 사체를 경직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자세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부위 별로 경화된 시기도 제각각에… 보통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말단조직부터 경화되기 마련인데 이번은 내장부터 시작한 것 같단 말이지.”
봐봐. 그렇게 말하며 카라노모리가 휠을 돌리자 핏줄이 도드라지도록 굳은 폐 사진이 확대되었다. 카가리는 얌전히 그 날 먹으려던 스테이크를 포기했다.
“이것도 오료 리카코의 짓일까요.”
예의 약품이 검출되지 않은데다 사체들이 기묘한 오브제가 되어 전시된 것도 아니니 동일범의 소행일 확률은 낮았지만 그렇다고 쿠니즈카의 머릿속에 다른 대안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오료 리카코는 행방불명 상태로 오소 학원의 지하도를 따라 도망쳤다. 그 길로 폐기구획으로 들어갔거나 혹은 가두 스캐너를 피해 돌아다닐 길을 확보했다면 도쿄 언저리에 있는 이 학교까지 오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였다.
“…아니.”
나노드론이 온실 내의 모든 샘플을 수집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의외의 단호한 대답이 돌아와 쿠니즈카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감시관은 유리 온실 한쪽에 기대서서 한 구석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기침은 간신히 멎은 모양이었다.
“감시관?”
기노자는 말이 없었다. 쿠니즈카도 그의 시선을 좇았다. 정리되지 않은 도구들, 시든 나무, 먼지 쌓인 화분, 말라 부스러지는 흙바닥, 아무리 겨울이라 해도 이제 막 두 시를 넘긴 참인데도 내부는 어둑하게 그늘져 자세한 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입구 근처 듬성듬성 놓인 화분들만이 아직까지도 사람이 드나들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기노자는 골몰해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노자 감시관?”
쿠니즈카가 다가가 가볍게 어깨를 흔들 때까지 기노자는 쿠니즈카의 기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라 "어. 아." 같은 의미없고 반사적인 소리를 뱉는 기노자에게 쿠니즈카는 아까의 화두를 다시 한 번 끄집어냈다.
"역시 피곤하시면 병원을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근무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차라리 지금……. 제 안위보다도 일이 더 중요한 기노자를 설득시키기 위해 부러 냉정하게 말하면 기노자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쿠니즈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경 프레임 너머의 눈동자가 혼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안 보이지?"
"뭐가 말인가요."
쿠니즈카가 반문하면 기노자는 또 저 쪽을 넌지시 쳐다보다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는 일어났다. 설명조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기노자를 쿠니즈카는 쫓아갔다. 버려진 온실의 끝. 무성한 잡초들과 끈질기게 생을 연명하는 낮은 나무들을 헤치고 나아가던 기노자는 어느 순간 멈춰 섰다.
"여학생들은 원래 이런 데를 좋아하나?"
"사람은 원래 적당히 좁은 곳을 선호하는 법이니까요."
다른 곳과는 달리 성인 남성이라면 둘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공간이었다. 읽다 만 책, 곰인형, 초콜릿 포장지, 10대의 여학생들이 아지트를 만든다고 하면 이런 모양인 듯 했다. 기노자가 쭈그리고 앉아 얼핏 바닥에 깔린 이불을 들추어보면 땅은 평평하게 골라져 있었고 위로 올라올 습기와 냉기를 막아줄 비닐로 한 번 덮여 있었다. 제법 철두철미했다.
“원예부는 이거 말고 주로 쓰는 온실이 따로 있겠지?”
“학교가 오래 돼서, 이미 10년 전에 신축한 온실이 따로 있습니다. 여긴 아예 버려져서 출입 통제 같은 것도 없었고 교내에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라는 모양이에요.”
“알지도 못하니 다른 사람이 올 리도 없고, 동아리라는 형태의 조직이 있는 이상 대대로 ‘비밀장소’로 공유될 확률은 높군. 원예부와 피해자의 교우 관계를 조사해 보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여학생 심문은 자신이 없는데.”
나노드론이 새롭게 추가된 현장을 스캔한다. 초콜릿 포장지나 책에 묻은 지문을 분석한다면 이 아지트를 공유한 사람들이 누군지는 금세 밝혀진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증거물들을 조심스럽게 잡아 비닐봉투에 넣는 기노자의 얼굴엔 농담이라 치부하기엔 진심으로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딱딱하고 차가운 인상인지라 상대방이 여성일 경우엔 단순 참고인이라도 심하게 위축되어 기노자는 결국 2계의 아오야나기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츠네모리 감시관에게 맡기면 되잖아요?”
예전에야 1계에 감시관이라곤 기노자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명백하게 다른 감시관이 존재하는 데다 아직도 햇병아리인 스물이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갖고 있다. 아오야나기 감시관과 비교한다 해도 – 그녀에겐 좀 실례되는 표현일 수 있으나 – 온 몸으로 딱딱한 직책에 있는 무서운 언니라고 말하는 그녀보다야 저와 비슷한 또래에 둥글둥글한 인상의 츠네모리라면 상대방도 마음을 터놓을 확률이 컸다.
“아니, 그건 안돼.”
“왜죠?”
“그녀는 일단 병가 중이고.”
“곧 돌아올 텐데요.”
츠네모리의 일주일 짜리 병가 중 남은 기간은 앞으로 사흘이었다. 일련의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이후 기노자는 그녀에게 휴가를 권했다. 의외로 강경하게 버틸 줄 알았던 츠네모리는 애써 산뜻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겠노라 답했다. 미리 써둔 휴가계를 올리고 순식간에 사무실을 나서는 츠네모리의 뒷모습에 카가리는 혀를 내둘렀고 쿠니카도 감탄했으나 기노자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경험으로 비롯된 경우의 수는 기노자의 안에 불안의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고 있었다.
참고로 말하면 기노자의 아픈 경험이 되었던 그 사람도 웬일로 병실에서 얌전히 독서나 하고 있었다. 쿠니즈카와 카가리, 마사오카가 나란히 병문안을 갔을 때는 조금 하얗게 질린 얼굴이긴 했어도 지극히 태평했다. 드디어 내내 쫓던 ‘마키시마 쇼고’의 증거를 잡았다는 흥분감 탓인지 코가미는 묘하게 들떠 보이기도 했다. 그런 코가미에게 질려 쿠니즈카는 그 뒤로 다시는 가지 않았지만, 의무국으로의 병문안을 핑계로 자주 사무실을 이탈하는 카가리가 건네주는 소식으로는 아주 평화롭고 지루한 회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고 해도 안돼.”
“이번 건이 마키시마 쇼고와 관련이 있을까봐 그런 건가요. 그렇다면 오히려 츠네모리 감시관과 코가미 집행관의 도움을 받는 게…….”
“그 때문이다. 이 사건이 마키시마 쇼고나 오료 리카코와 연관되어 있을 거란 확률은 극히 드물어. 오히려 쓸데없는 선입관으로 수사에 혼선을 줄 가능성도 있어.”
“반대입니다, 감시관. 아까도 그랬지만, 아직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감시관은 오히려 이 사건이 그들과 관련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혹시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아까?”
“제가 오료 리카코의 짓일까, 하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답했잖아요.”
쿠니즈카는 똑바로 기노자의 눈을 쳐다보았다. 쿠니즈카와 몇 초 동안 마주쳤던 시선이 이내 버티지 못하고 눈꺼풀 밑으로 숨는다. 눈은 마음의 창. 기노자는 의외로 알기 쉬운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잘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표정이나 행동에 감정이 그 때 그 때 드러난다. 그것도 안되면 눈을 보면 된다. 기노자는 직선적이라 시선을 마주치면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게 전부 보였다. 본인도 분명 잘 아는 사실이다. 기노자는 그래서 숨겨야 할 일이 있다면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리깐 눈동자, 아니, 이번엔 보고 있어도 쿠니즈카에겐 그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지 않던 사람이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스레 묘한 불안감이 쿠니즈카의 목덜미를 스쳤다.
“…기억 안 나.”
시선을 피한 기노자가 택한 것은 결국 별 당위성도 없는 단순한 회피였다. 기노자가 무언가를 숨긴다고 해봤자 프라이버시와 관련되어 있거나 윗선에서 묵인하는 것들이다. 그건 쿠니즈카 개인이든 감시관의 개인 집행관의 위치에서든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는 분야다. 쿠니즈카는 더 이상 기노자에게 캐묻기를 그만두고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감시관. 그럼 참고인들과의 대질심문은 직접?”
“혹시 모르는 때엔 부탁하지, 쿠니즈카.”
그렇게 강경하게 츠네모리는 안된다고 말해도 역시 여학생은 불편한 모양이었다. 저보다 한 뼘이나 큰 키가 작게 수그러드는 것을 보면서 쿠니즈카는 속으로 웃었다.
모든 증거품을 드론에 챙겨 넣고 기노자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약간의 흙먼지에 잊고 있던 기노자의 기침이 다시 쿨럭쿨럭 튀어 나왔다.
“그리고 병원은 꼭 가세요.”
“알고 있어.”
퉁명스럽게 답하면서도 기침을 멈추지 못해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는 기노자를 모른 척 하고 쿠니즈카는 먼저 온실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한 쪽에서 나노드론들이 꼬물꼬물 움직여 회수되는 걸 지켜보던 카가리가 안에서 나오는 쿠니즈카를 보고 손을 흔든다.
“오, 거기 있었어? 난 어디 갔나 했네.”
“저 안 쪽에서 뭔가 발견돼서.”
“뭐?”
“귀여운 러브 하우스.”
그게 뭐야? 뭔 뜻인데? 농 섞인 말을 카가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묻는 것을 쿠니즈카는 가볍게 무시했다. 자세한 건 보고서 봐. 엑? 그게 뭐야, 지금 알려줘. 나도 볼래. 쿠니즈카를 조르다 안될 것 같은지 카가리는 안으로 직접 들어가려 했지만 그 순간 기노자가 나왔다.
(중략)
처음엔 치자꽃이었다.
제 손바닥에 놓인 새하얀 치자꽃을 얼마나 쳐다보고 있었던 건지, 집에 갈 즈음엔 벌써 길고 긴 여름 해가 다 저물어 어둑해지는 시점이었다. 시기야 맞았지만 기노자의 뒤에 있던 것은 단풍나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꽃은 제 입에서 나온 게 맞았지만 반대로 입에서 꽃이 나온다는 것도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다. 환각인가 싶어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고 볼을 꼬집어 봤다. 잊고 있던 턱의 욱신거림이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아팠다. 눈꼬리에 눈물이 찔끔 맺혀 흐릿한 상에서도 백색의 꽃은 또렷하게 빛났다. 부드럽고 여린 꽃잎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기노자는 일단 그 꽃을 손에 쥐고 돌아왔다.
“기노.”
손바닥을 간질이는 꽃잎이 신경쓰여 내내 시선을 아래로 숙이고 곁눈질하며 걷던 기노자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코가미?”
기노자는 화들짝 놀라 안경을 치켜 썼다. 오늘따라 자꾸 이상한 것만 보인다. 양 손으로 두 눈을 비벼 봐도 기노자의 맨션 문 앞에 험악한 인상으로 서 있는 코가미의 얼굴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어쩐 일이야?”
코가미가 기노자의 맨션에 놀러온 적이 한 두 번은 아니지만 그 때는 늘 기노자가 안에서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기노자는 이 상황 자체가 낯설어 어쩔 줄을 몰랐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할까? 같은 상투적인 대사도 코가미가 문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데다 노려보는 코가미의 시선이 사나워 눈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표정만 보면 분명 기노자에게 화가 난 것 같은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게 없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오늘 점심.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슬슬 기말 고사가 다가와 수업 얘기를 잠깐 하고 노트를 교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잊어버리고 있던 세미나 일정 때문에 메일을 보낸 게 오늘 코가미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설마 이게 코가미에겐 상처였을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별 다른 일이 없다면 기노자와 코가미는 같이 하교했으나 둘 다 학회 활동은 하고 있었다. 학회 활동이 졸업 필수 요건이라 억지로 참여하고 있는 기노자와는 달리 코가미는 공식적으로는 하나만 이름을 올리고 있어도 여기저기 불리는 곳이 많았다. 덕분에 바람 맞은 횟수로 치자면 기노자가 훨씬 더 많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자 기노자는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제가 무얼 잘못했다고 코가미에게 이런 이유 없는 분노에 찬 시선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바로 들고 기노자는 완강한 시선으로 맞받아쳤다.
“뭐야, 코가미.”
기노자의 이를 악문 대꾸에 코가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남의 시선을 몹시도 신경 쓰는 기노자가 용케 여기까지 걸어왔다 싶은 몰골이었다.
“안 아파?”
코가미는 살짝 기노자의 뺨에 손을 올렸다. 한 쪽 턱이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일 정도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어있고, 입술엔 희미하지만 말라붙은 핏자국도 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마른 입술의 핏자국을 살살 지우면서 코가미는 입을 연다.
“메일 확인 안했지?”
기껏 마음먹고 받아치니 급작스레 누그러진 분위기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기노자가 “어?”하면서 주머니를 뒤적거려 단말기를 꺼낸다. 어차피 알고 물어본 거니 대답은 듣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시험기간이고 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답장이 없더라. 잠깐 조는 바람에 시간이 훅 지나서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세미나는 이미 끝났다고 하고, 전화도 안 받고. 잘 돌아갔다면 좋겠지만 혹시 싶어 집에 왔더니 집도 비어서,”
부드러운 코가미의 목소리엔 걱정이 잔뜩 배어있어 기노자는 당황스러웠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감이 오질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화가 난 건가 아니면 걱정 하는 건가?
“걱정했어, 기노.”
“방금 전까진, 화, 내고 있었잖…아?”
말을 하면서도 확신이 없어 말끝이 흔들린다. 초조한 마음에 대한 보상처럼 가끔 걱정이 상대에 대한 이유 없는 분노가 되는 경우를 기노자도 안고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걱정 같은 것보다 분노밖에 안 남는다는 사실도. 그걸 감안하더라도 방금 전의 코가미는 무서울 정도였다. 괜스레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자락에 문지르며 기노자는 아리송한 얼굴로 코가미를 쳐다보았다.
“화가 난 건 너한테가 아니고, 나한테.”
말로 하지 않았는데도 코가미는 직접 듣기라도 한 것처럼 답한다. 기노자는 간혹 코가미의 이런 점이 신기했다. 기노자는 보고 있는 것만으론, 말을 해도, 코가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정할 수 없는데.
“도서관에서 졸지 않았으면,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잖아.”
“아니 이건 네 잘못도 아니고 내가—”
“네 잘못도 아니지.”
코가미는 기노자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낸다. 느슨해졌던 공기가 다시 팽팽해졌다. 오늘따라 기노자에겐 코가미의 분위기를 읽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눈동자를 굴리는 기노자를 보며 코가미는 일부러 경쾌하게 입을 열었다.
“모처럼 여기 온 김에 너희 집에서 저녁 좀 얻어먹어도 되냐?”
“어? 아 물론.”
“그럼 문 좀 열어줘.”
코가미가 씨익 웃으며 장난스럽게 문을 가리킨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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