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A★K] 적청, 미사루 통판 안내
재고 짱짱맨! 고로 통판합니다!!!!
저는 3월 2일 케이크스퀘어에도 참여하니(D13, 글러에게 부스컷은 너무 어려워) 케스에 오실 분이 있으시면 그 쪽도 괜찮으실 거 같네요. 통판은 2월 20일까지 받고, 사실 그 외에도 재고 있음 받습니다. 티스토리에 댓글로 문의주시면 친절하게 안내해드려요!
그래도 기간 내에 해주세요!
케스에 사러 갈건데 빼주실 수 없나여? 같은 것도 괜찮습니다. 없을 거 같지만!
등기비는 일괄 2500원이며, 중철본의 경우는 상관없으나 적청 Pseudo Code를 두 권 이상 사시는 분은 3000원 입니다.
책 사양에 따른 무게 차 때문이니 양해 바랍니다.
ex) 미사루+적청 = 3000+6000+2500, 적청 2 = (6000*2)+3000
댓글로 원하시는 책 제목, 수량,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적어주신 뒤 위의 계산에 따라 국민은행 634102-04-032433 강*빈으로 2월 20일까지 입금해주시면 됩니다. 배송은 21일에 이루어집니다!
1. Pseudo Code/적청/A5 떡제본, 66p/6000
K Project의 번외 소설인 'K : Side Red'의 내용을 다량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작 13화 이후, 스오우 미코토가 다시 돌아와 진행되는 이야기 입니다. 사망 소재가 있으며 평범한 연애물은 아니기 때문에 이 점 고려해 주세요.
▽Sample
1.
부드러운 시트를 걷어치우면 서늘한 공기가 몸을 휘감는다. 남자의 만족스러운 숨이 길게 늘어졌다. 느릿하고 나른하게 늘어진 몸처럼 의식도 저 한 가운데서 맴돈다. 규칙적인 박동이 움직이지 않는 공간으로 녹아들고 초침은 엇박으로 째깍거리다 어느 순간 이내 사라졌다.
그렇게 끝없이 물 밑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았는데, 사실은 공기 중의 깃털이었는지.
어디서 불어왔는지도 모를 바람에 스오우 미코토는 눈을 깜박였다. 으레 그러하듯 손을 뻗어 주변을 더듬거리다 손가락에 걸리는 게 부드러운 질감의 천밖에 없다는 사실에 몹시 실망한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 주변을 눈으로 확인하는 대신 아주 약간, 자세를 바꾸었다.
아주 오랫동안 잠들었던 것 같은 아침이었다.
“아침…….”
갈라진 목소리가 안쪽에서 그르렁대며 적막한 방 안에 소리가 되살아난다. 시계의 째깍거림을 찾아 고개를 돌린 스오우는 짧게 웃은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 그럴 리가.
시침은 이미 오른쪽으로 한껏 기운 상태다. 한낮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두웠으나 겨울 태양은 연무에 휩싸여 일정한 톤으로 주변을 비출 뿐, 그 위용을 망막에 새기도록 과시하진 않는다.
더 잘까. 아직까진 노곤한 잠의 여파가 온 몸 깊숙하게 배어있었다. 스오우 미코토는 다시 한 번 침대 밑으로 가라앉는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을 때 스오우는 늘 그 바닥으로 잠기곤 했다. 대체로 끝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오늘은 억지로 밀어 넣지 않아도 묵직하지만 부드러운 온도가 적당히 좋은 느낌으로 몸을 감싼다.
아. '잤나?'
멍하니 그렇게 생각했다. 밤새 이리저리 뭉개지고 눅눅하게 젖었을 꺼끌꺼끌한 시트에선 이상하게 나뭇결 같은 햇빛 냄새가 났다.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든 날이면 항상 그랬다. 날빛의 가는 목덜미에선 가끔 따뜻한 차의 냄새도 나곤했다. 늘 깊이 잠드는 스오우와는 반대로, 그는 늘 얕은 잠을 잤다. 아주 가끔 그는 자다가 숨을 쉬지 않는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 의식 속에 배겨버렸는지,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숨소리가 그 때만은 멈추었다는 걸 스오우는 알아차리곤 했다. 물론 조금 늦은 박자로 다시 숨을 내뱉곤 했지만 그 때의 그는 스오우처럼 어느 바닥에 잠겨 긴 꿈을 꾸는지도 몰랐다.
어찌됐든 그건 지금은 아니다. 아주 온유한 오후였다. 온 몸에서 핏기가 쭉 빠져나가 손끝까지 차갑게 얼어붙는 그런 꿈과는 달리.
오늘은 그런 꿈을 꿨더랬다. 열사의 태양 밑에서 소리도 없이 타들어가는 꿈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까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얼어가는 꿈. 언제나 한여름보다 뜨거운 열감으로 스오우를 맞이하던 세계가 처음으로 보여준 영하의 감각은 그렇기에 몸서리쳐지도록 생경했다. 새하얀 눈보라 속에서 그의 파란 제복이 스오우의 기억 속에 선연하게 남아있다. 꿈의 마지막,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귀에 속삭이는 차게 얼어붙은 숨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럴듯한 느낌이 들어 스오우는 웃었다.
내 검이 떨어지기 전이 딱 그런 느낌일 거 같군. 어떻게 생각해-
“무나카타.”
그리고 고개를 돌린 스오우는 눈을 한 번 깜박였다.
찰칵.
광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카메라가 조리개를 끝까지 열어 간신히 셔터를 닫는 그런 느린 속도로 스오우는 눈꺼풀을 닫았다 열었다. 부유하는 작은 먼지의 입자가 빈 시트 위로 내려앉는다.
옆은, 비어있었다.
―꿈 속에서 그는 무어라 말했었나. 그렇게 하겠노라 말했었나. 듣지 못했지만 대답은 무의미했다. 보기보다는 정이 많고, 사리분별이 명확한 사고방식 안에서도 스오우의 부탁은 당연한 말이었다. 스오우가 따로 언급하지 않았어도 이미 그 정도쯤은 처음부터 머릿속에 있었을 남자였다.
찰칵. 디시 한 번 느리게 셔터소리가 울린다.
천장은 스오우가 매일 보던 그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관찰력이 없다 해도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몇 번이고 눈을 깜박여도 눈에 보이는 것은 일그러지거나 어디 한군데 변색되는 일도 없이 그저 시각에의 역할에 충실하게 상을 비추었다.
찰칵.
손가락을 하나부터 열까지 천천히 구부렸단 편 스오우는 침대에서 튕겨 오르듯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에 잡히지 않던 담뱃갑은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다. 물을 축축하게 머금은 티슈가 깔린 재떨이도 가지런하게 탁상에 놓여있었다. 이불도, 시트도 새로 빤 것처럼 푹신하고, 햇빛 냄새가 났다. 쿠사나기가 막 대청소를 끝낸 직후 같은 모습이었다. 스오우가 누워있던 부분을 제외하고는 몹시 서늘해 누군가의 흔적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셔츠를 뒤집어 내려다보면 피부는 흉 하나 없이 매끈했다.
노곤한 잠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탓인지. 스오우는 침대에서 내려와 담배를 주워들었다. 담뱃갑을 열어보면 속 포장은 뜯겨 있었으나 의외로 한 개비도 줄지 않은 새것이었다. 빡빡하게 채워져 잘 나오지 않는 것을 손바닥에 가볍게 두어번 내리치면 수월하게 한 개비가 빠져나온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입에 물고 한껏 들이쉬면 온 몸이 다른 느낌으로 나른해진다. 한숨을 내쉬면 그대로 몸의 조직이 농도 짙은 액체로 흘러나올 거 같은 나른함이 머리를 빙빙 돈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곧 재가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다 스오우는 손바닥에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똥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어깨가 움찔 튀어오를 정도로 화끈한 고통이 스오우의 손바닥에서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아픈데…….”
몹시도 아팠다. 입술을 짓이기면서 나온 말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으스러진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재떨이에 던져 넣고 스오우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낮은 천장에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면 빨간 궤적이 도도도도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뛰어갔다.
“이즈모!”
비명과도 같은 소리에 스오우는 잠시 긴장했다. 말수가 적은 안나가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위기상황이 아니고서야 거의 없었다. 반사적으로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지만 낮 시간의 호무라는 변함없이 적막과 평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안나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곧 울음이 타질 것 같은 얼굴로 쿠사나기의 소매를 꼭 쥐고 있었다.
“안나?”
혀가 딱딱하게 굳은 듯 어색하게 움직인다. 미코토……. 꺼질 것 같은 아이의 목소리에 위화감은 신경 쓸 새도 없이 사라진다. 잠시 멈칫했던 고개를 다시 들어 시선을 아이에게로 향하고 스오우는 입을 열었다.
“안나.”
한 발 한 발 다가서며 손을 내밀면 아이의 붉은 구슬 같은 눈동자가 흔들린다.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안나는 스오우가 팔을 뻗지 않아도 언제나 제일 먼저 스오우에게 달려와 그의 손바닥보다 더 작은 손으로 스오우의 손을 감아쥐었었다. 잠에서 깨 이불을 걷은 겨울 아침보다 서늘한 한기가 발끝에서 부터 올라와 스오우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경직된 공기를 깨뜨린 건 쿠사나기였다.
“마, 니가 너무 오래자서 그런 거 아이가”
쿠사나기가 스오우의 등을 짝 내리치며 말한다,
“오래 자?”
“그래. 니 이틀을 내리 잤다 아이가. 죽은 줄 알았다, 이 시간 아까운 줄 모르는 놈아. 잠을 자도 엔간히 자야지. 그나저나 손은 또 와 이러노?”
스오우가 멍청하게 펴고 있던 손바닥에서 붉게 패인 자국을 발견한 쿠사나기가 눈을 크게 뜨고 손바닥을 낚아챈다. 잠시 잊고 있던 쓰라림에 스오우가 얼굴을 찡그리면 쿠사나기의 타박이 이어진다. 이기 진짜 미쳤나 보네. 니 이기 화상이가? 담배? 할 일이 없어서 일어나자마자 담배로 손바닥을 지졌나 이 문디자슥아. 이 정도면 병원 가야되는데, 소독약. 소독약이…….
부산하게 카운터 밑을 뒤지며 구급상자를 꺼내는 쿠사나기 옆에서 안나는 어쩔 줄 모르고 서있었다.
“…미코토, 괜찮아?”
그러나 여전히 손은 내밀지 않은 채로, 쿠사나기의 소매를 붙잡고 있던 작은 손은 풍성한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스오우는 대답 대신 쭈그려 앉아 치맛자락이 구겨지도록 잡은 안나의 손에 팔을 뻗었다.
“다친다.”
얇은 치마 천 너머로도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것처럼, 필사적으로 쥐고 있는 손가락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펼친다. 스오우의 손이 닿자 흠칫하고 어깨가 떨렸지만 스오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열 손가락을 모두 펼쳐 갈 곳 없는 아이의 손을 어쩔까 고민하다 몸 양 옆에 붙이려 하면 안나는 와락, 스오우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미코토.”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소리에 스오우는 의아해하면서도 안나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 미코토. 안나. 미코토, 미코토, 미코토……. 무엇 때문에 이러는 지 스오우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스오우의 이름을 연발하는 안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스오우는 지난밤의 꿈을 생각했다. 안나의 목소리에 다른 단어가 섞인 건 그 즈음이었다.
“미안해.”
미안, 미코토. 미안해. 목을 꽉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이는 안나의 목소리 끝에서 그럴 리 없는데도 찬 숨소리를 들었다.
정말 꿈이었을까.
안나의 등을 두드리던 손바닥을 펴 가운데 패인 둥그런 화상을 본다. 쓰라림과 둔통은 팔꿈치까지 올라와 욱신거리는 데도,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상처 입은 손을 쥐었다 펴는 스오우의 등을 구급상자를 들고 나온 쿠사나기가 다시 세게 내리친다.
“이기 진짜. 안나, 이 자슥 손에 약 좀 뿌리게 나와 주지 않겠나?”
작은 손이 내려간다. 겨우 본 안나의 얼굴은 생각과는 달리 눈물로 얼룩지지 않았지만 심하게 울상이라 쿠사나기가 손을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쪽으로 스오우는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병원은? 안 가. 그럴 줄은 알았다만. 내내 스오우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면서도 드레싱에 붕대까지 말끔하게 해낸 쿠사나기가 일어나자 스오우는 다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 잘못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몰랐지만 그런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안나의 시선이 등 뒤로 꽂히는 것을 느끼며 스오우는 문을 닫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뭔지는 몰라도. 의식 한 구석에서 거치적거리는 의문을 치워내고 일단 스오우는 담뱃갑을 열어 한 개비를 더 빼내려다 멈칫했다.
코르크 무늬의 밝은 황갈색 필터 사이에 단 하나, 새하얀 것이 있었다.
2. 사막에 내리는 눈/미사루/A5 카피본, 36p/3000원
지난 12월 코믹 구간이며 본편 13화 이후 미사키가 후시미를 감금하는 책입니다. 사망 소재가 있으니 어느 쪽 팬 분이든 주의해주세요.
소이와 메이비레의 트윈지입니다.
▽ Sample
정적은 언제나 야타 미사키를 움츠리게 했다. 헤드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그것만으로도 구원의 가치를 지닌다. 후시미는 그런 야타를 보고 쓸데없는 데 집착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야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리지는 않았다.
호무라는 정적을 두려워하는 야타에겐 최적의 장소였다. 언제나 소란스러웠고 활기찼다. 가장 동경하는 남자는 침묵을 지켰지만 그는 존재만으로도 야타를 꽉 차게 만들었다. 그 긍지가 제 안에도 있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댔다. 이제 두려울 것은 없었다. 야타 미사키에겐 언제나 동료가 있고, 소리가 있으며, 언제 어디서라도 기백을 느낄 수 있는 그의 왕이 있으니, 있었는데——.
“쿠사나기 씨!”
쾅쾅쾅, 아무리 흔들어도 저 너머에 달린 종이 아래위로 정처 없이 짤랑대는 소리만 들릴 뿐 문은 열리지 않는다.
몇 달 째 호무라의 본거지였던 바(Bar) 호무라는 휴업 중이었다. 모든 게 일단락 된 그 겨울 이후 호무라는 순식간에 분해되었다. 그 예전의 청의 클랜처럼 힘이라도 남아있으면 모를까 힘조차 없는 팀은 순식간에 목적을 잃고 의미 없이 둘러 앉았다. 쿠사나기는 처음부터 해산을 제안했지만 강하게 반발했던 건 야타였다.
“미코토 씨가 있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일이라구요!”
“하지만 야타…….”
무언가 말하려던 쿠사나기의 소리는 야타의 의견에 동조한 무리들의 시끌벅적한 반발에 묻혔으나 곧 쿠사나기의 뜻대로 되었다. 호무라에서 유일하게 참모 역할을 맡고 있던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뒷골목에서 한 위치하고 있던 호무라도 석판이 부여한 왕의 힘이 없으면 사실은 경험 부족하고 패기만 넘치는 오합지졸의 무리라 이내 지금까지 마찰이 있었던 모든 패거리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잠깐 누군가 안 보이면 어디 끌려가서 맞고 오기 일쑤인데다 살상능력을 가진 총까지 나타나면 대안이 없었다. 싸움은 늘 끊이지 않았고 해결은 언제나 어려웠다.
간혹 청의 클랜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들의 왕이 엄선해 만든 최정예 부대도 아닌, 일반 소대원들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 소란에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휘휘 검이나 저으면 그토록 난항을 겪고 수세에 몰려 있던 싸움도 금세 해결되었다.
“언제까지 왕도 없는 클랜을 우리가 뒤처리해야 되는 거야?”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그렇게 툭 내뱉었다.
“이 자식이!”
야타는 머리보단 언제나 행동이 앞서던 사람이었다. 가뜩이나 자존심도 상하는 마당에 순간적으로 머리에 열이 올라 야타는 녀석의 멱살을 쥐고 세게 후려쳤다. 처음에는 공무 중인데다 이제는 일반인을 상대라는 제약에 머뭇거리며 일방적으로 맡기만 하던 셉터4의 대원들도 야유와 비난에는 별 수 없었나보다. 말리려던 누군가가 또 얻어맞고 밀치고 때리고 그러다가 전부 뒤섞여 호무라와 다른 무리들이 싸우던 공터는 이제는 또 다른 이들과의 싸움터가 되었다.
“이게 뭐야?”
싸움이 일단락 된 것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였다. 명백하게 비꼬는 읊조림, 깔아보는 눈에는 경멸이 그득한.
“후시미 사루히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한 호무라의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다. 막 무릎으로 복부를 걷어차인 참이라 숨쉬기가 버거운 와중에도 그 이름은 똑똑히 들려 야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서로 치고 박는데 여념이 없던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고요가 깔린 공터에서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재미 좀 있으신가? 어쩐지 후딱 해치우고 와야 될 게 아직까지 안 왔다는 해서 순찰 나온 김에 봤더니. 응?”
흙투성이의 제복을 툭툭 털어내며 순식간에 정비를 갖춘 대원들이 허겁지겁 사열하고는 침묵한다.
“이 일은 실장에게 보고하도록 하지. 따라와.”
그리고 정말로, 모든 것은 순식간에 종결되었다. 후시미가 무리들을 끌고 사라진 뒤 온전히 적막해진 공터. 그것이 호무라의 마지막이었다. 반발에도 상관없이 쿠사나기는 호무라를 해산시키고 본거지가 되었던 그의 가게 문도 걸어 잠갔다. 사실 쿠시나 안나의 문제도 있었다. 스트레인 중에서도 강력한 그녀의 힘을 탐내지 않는 스트레인 조직이 없을 리 만무했다. 다른 클랜들마저 그녀를 노리는 판에 단순한 일반인이 되어버린 호무라만으로는 턱없이 힘이 부족했다. 셉터에 그녀를 맡기자는 의견도 있긴 했지만 언제 그녀를 되찾아 올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었기에 어딘가에 그녀를 숨기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지시한 것은 역시 쿠사나기로 야타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비밀이라고 했다.
이제, 야타 미사키에겐 다시 침묵만이 남았다.
(중략)
지하창고는 당연하지만, 창고다.
1층이지만 창고까지 있으니 사실 수납공간은 굉장히 넓죠.
부동산 중개업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야타의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옷가지 두 박스, 살림살이 두 박스 정도가 전부였으니 창고에 들어올 일도 없었고 정리한 적도 없어 며칠 전 처음으로 들어와 본 지하실은 엉망이었다.
마감이라곤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창고에 끈기 없는 누군가 타일을 붙이는 장대한 작업을 시작했던 모양인지 한 쪽 벽에는 붉은 타일이 발라져 있었다. ‘끈기 없는’ 이라고 야타가 사족을 덧붙인 것은 딱 한 쪽 벽만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치우기도 귀찮았는지 타일본드 통과 남은 타일이 덩그러니 먼지 쌓인 채로 그 밑에 처박혀 있었다. 그 외에도 한 쪽 바퀴가 부서진 여행가방,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삽, 부서진 각목, 녹슨 못이 잔뜩 들어있는 작은 통, 흙이 잔뜩 묻은 작업복, 개중에 그나마 새것인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목장갑 – 야타는 주인이 사놓고 잊어버린 것이라 추측했다. 작업복에 덮여 보이지 않았으니 - 같은 것들이 한 쪽에 그득 몰려 있었다. 누군가는 공사장에서 일하던 사람일 지도 몰랐다. 몇 번 들척거리다 말았지만 그 밑에 깔린 잡다한 것들도 죄다 그런류의 것이리라.
이런 찰나의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공간에 야타는 후시미를 던져 놓았었다.
그 때는 청소를 할 의리도 기력도 없었고 이곳이 사람이 생을 연명하기엔 매우 부적절한 장소라는 걸 깨달은 것도 이틀 정도가 지나서였다. 피부가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것을 보고서야 야타는 안 쓰던 두꺼운 담요를 꺼내 후시미에게 덮어주었다. 보온의 효과는 있는지 새파란 얼굴은 다시 하얗게 변했지만 이번에는 팔이 부러져 벌겋게 열이 오르기도 했다. 파랗고 하얗고 발개지기도 하고, 어느 쪽이 더 나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야타는 더 이상 후시미의 안색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무어라 말하는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바싹 말라 거스러미가 올라온 입술이 힘겹게 뻐끔거린다.
“뭐라고?”
“…병…신.”
갈라진 목소리로도 바람 빠지는 큭, 하는 비웃음이 선명하게 들린다.
“……네 입에서 쓸 만한 소리가 나오길 기대한 내가, 그래, 바보지.”
야타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가져다 대었던 고개를 들고 쟁반에서 제 몫의 접시를 들어 숟가락을 손에 쥐었다.
“먹으려면 먹든가.”
고개를 들기도 힘든지 바닥에 한참을 누워있던 후시미가 겨우겨우 상체를 컵에 물부터 따른다. 오른쪽 팔이 박살났으니 쓸 수 있는 건 왼쪽 뿐. 척 보기에도 부어오른 오른팔 대신 왼팔을 내밀면 들춰진 소매 끝 사이로 보이는 손목에는 딱 하루뿐이었는데도 쓸린 듯한 생채기와 얇은 선 모양의 울혈자국이 생겨있었다. 쓸데없는 저항의 흔적이라 야타는 꼴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왼손도 성하지 않아 손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회색의 시멘트 바닥에 진한 물 얼룩이 번진다. 손가락 사이사이, 손목을 타고 제각기 흐르는 물방울을 시선으로 쫓는다. 그토록 허기가 졌었는데도 야타는 식사보다는 기계적으로 손을 놀리며 후시미에게 집중했다. 반복해서 두 컵까지 마신 후시미의 메마른 입술에 겨우 물기가 반사된다. 거기까지가 벌써 야타가 제 접시의 반 정도를 먹었을 때였다. 한 쪽 눈은 부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안경도 없고, 입 안은 모르긴 몰라도 다 터졌을 것이다. 흙투성이 얼굴에 갈색으로 말라붙은 핏자국이 점점이 보였다. 부러진 팔은 열이 바짝 올라 시큰거리고 정신도 혼미할 테고, 다리도 금은 가지 않았을까. 제가 행한 것들의 빈도와 세기로 어림잡아 추측한 것만도 그러하고 실제 후시미의 몰골을 보면 그것보다 더 심한 부상일 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시미 사루히코의 입은 열리기만 하면 야타의 속을 득득 긁는 말만 해대니 야타 또한 행동이 고와질 리는 없었다.
컵을 내려놓은 후시미가 이번에는 숟가락을 잡는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조차 아주 느릿해서 프로그래밍 된 로봇과 비슷했다. 부자연스럽게 뻣뻣한 팔이 접시로 향하다 멈추고는 기이하게 인상을 찡그리며 야타를 올려다본다.
“뭐야.”
“…….”
“설마 이런 상황에서도 편식 하냐? 그냥 먹어.”
후시미의 편식을 야타가 모를 리는 없었으나 알면서도 일부러 넣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편식하는 후시미가 야타는 우스웠다. 키는 야타보다 컸지만 여전히 그는 열다섯이었다. 야타와 밥그릇을 몇 번 힐끔이며 번갈아보던 후시미가 기어이 숟가락을 내려놓자 야타는 미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웃었다.
야타는 최근에 와서 ‘화가 나면 머리가 차가워진다’라는 문장을 체감하게 되었다. 머리는 전에 없이 이성적이었고 차분했으며 야타 미사키는 여느 때와는 달리 제가 어떻게 상황을 인지하고 행동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게 어른이 되는 걸까? 거기까진 모르지만 적어도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후시미에 비하면 백 배 낫다고 생각한 제 안 어딘가의 변화를 가장 빨리 감지한 것은 누구보다도 본인이었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성장이라기 보단 상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야타는 몰랐다.
야타 미사키의 미덕 중 하나는 집중이었다. ‘야타 미사키’와 ‘집중’은 때로는 행성과 행성의 거리만큼 멀어보였으나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는 그의 성질을 생각한다면 쉬이 납득할 것이다. 집중하는 사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가끔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맹목적인 야타 미사키가 그 어느 때보다 객관적이라니. 그것이 정상일 리 없었다. 오히려 정상이 아닌 축에 가까웠지. 그 일례로 야타는 현 상황을 명료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원인도, 결과도, 도덕적 판단의 기준도 모두 잃어버린 채로 그저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상황이 벌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후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