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다토카
비다토카, 가에토카, 결론적으로는 맥가엘일 거 같긴 하지만
Mono.
그것은 악마의 이름을 하고 있다.
Kimaris
반중력 공간에서 말없이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야마진 토카에게 누군가 무엇을 던진다.
"오."
"이걸 찾고 있었지?"
평탄한 탁한 쇳소리가 가까이 온다. 야마진은 몽키스패너와 태블릿을 들고 땡큐, 감사의 말을 건넸다. 별 말씀을. 남자는 의례적으로 목을 까딱하고는 야마진의 옆에 나란히 선다. 거대하고 앙상한 프레임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엔 쇠로 된 마스크가 쓰여져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몽키스패너로 치면 깡깡 하는 맑은 소리가 날 것이다.
"놀랍지? 보통 그 육중한 로봇이 이런 앙상한 골격으로 움직인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그렇군. 다른 기체도 다 이런 느낌인가."
"보통은 그렇지만 에이합 리액터로 움직이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성능이 다르지, 성능이."
"타는 입장에선 장갑도 없는 프레임만 오랫동안 볼 일이 없어서."
"파일럿의 태만이야. 엔지니어의 고충을 몰라."
"사죄하지."
쓴웃음을 짓는 남자를 두고 야마진은 자리를 박차고 올랐다. 더미라고 해도 원래 없던 쇳덩이를 더 얹으려면 달려면 프레임에도 약간의 조작이 필요했다. 추후 달아야 할 시스템의 무게도 있다. 콕핏의 모양이 상당히 달라질 테니 무게 중심과 기동성을 잘 계산해서 맞춰 놔야 한다. 새로운 기체를 롤업하는 것보다 원래 있는 기체를 새로 짜는 게 더 어렵다. 처음부터 제 손으로 계산해서 만든다면 모를까, 이미 있는 것들을 조금씩 재계산해서 끼워맞춰야 하는 것이다. 까다로운 손님의 요구에 야마진은 툴툴 대면서도 오랜만에 매진할 수 있는 대상이 생겨 뿌듯했다. 아니, 뿌듯한 정도일까. 사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흥분해서 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현실감 없는 제안이, 그것이 준 희열이 야마진 토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입꼬리가 히죽히죽 올라가는 것을 야마진은 쇳덩어리에 고개를 처박으며 참았다.
야마진 토카는 걀라르호른 사관학교 병기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다. 그녀가 처음으로 기계와 사랑에 빠진 건 할아버지의 낡은 무브먼트 손목 시계를 본 뒤였다. 새끼 손톱보다 조그마한 톱니바퀴들이, 먼지만큼 작은 나사가 박혀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가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여섯 살의 야마진 토카는 먼지 쌓인 창고에서 무릎 꿇고 앉아 그것을 몇 시간이나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저녁을 먹으라고 집 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두 시간 동안 벌을 선 뒤에도, 그 날 침대에 누워서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야마진의 머릿속에서 그 작고 경이롭고 완벽한 세계의 움직임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사람의 혼을 쥐어잡고 놔주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런 순간이 있다. 야마진이 살던 동네에서는 그것을 '악마에게 혼을 팔았다'고 표현하곤 했다. 야마진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인간으로서의 혼은 분명 그 때 그녀의 재능과 맞바뀌어 악마의 손에 들어간 게 틀림 없다.
그녀의 재능은 그녀를 연중 평균 기온이 15°C인 척박한 산간마을에서 광활한 우주 가운데로 데려다 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기계에 매료되어 공학을 전공했고 도서관 구석에 처박힌 구시대의 자료를 보고 흥분해 의학부도 졸업했다. 필요에 의해서긴 했지만 전자는 아름다웠고 후자는 끔찍했다. 개인적으로 야마진 토카는 의학부를 다니던 시절이 너무 싫었다. 인간은 기계적이면서도 동시에 유기체였다. 여전히 가늠할 수 없는 복잡한 유기체는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았고, 연약했으며, 어디가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고장나는가도 알 수 없었으며, 고장난 이유를 알아도 고칠 수 없었다. 죽으면 거대한 부패하는 고깃덩어리인 것도 싫었다. 사체에서 나는 특유의 부패한 냄새가 싫었다. 썩으면 구더기가 끓는 것도, 까맣게 변한 피도, 질척한 내장덩어리들, 누린내 나는 지방, 핏줄, 전기톱 밑으로 부서지는 흰 뼈, 엉겨 붙은 조직들 전부.
이것은 인간의 자기혐오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인간이 이토록 허무하고 덧없이 연약한 것임을 야마진 토카의 고등한 사고는 인식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녀가 원하는 완전무결함은 차가운 금속 밑에 있었으나 또한 그걸 만드는 것은 인간이었다.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한 것을 만드는 모순을 한 때 야마진 말고도 누군가 사무치게 느낀 것이 분명했다. 천사의 이름을 가진 인류의 사신은 그리하여 탄생했을 것이다. 3세기 전의 교훈을 잊은 이는 아무도 없었기에 엄격하게 금지된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야마진은 그렇다면 대신 악마라도 갖고 싶었다.
야마진 토카는, 악마와 계약한 게 틀림 없었다. 영혼을 저당잡혀도 좋았다. 그녀가 입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갖고 싶었던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 앞에 있다. 지금에 와서는 극소수의 엔지니어들만이 만질 수 있는 골동품 프레임이 일단 그녀의 눈 앞에 있다. 천사에 대적하기 위해 악마의 이름을 따왔다. 총 72대의 프레임 중 66번째로 롤업된 그것의 이름은 키마리스(Kimaris). 준마를 탄 기사의 형태를 한 악마는 문학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용기를 준다고 한다. 과거에 잃어버린 소중한 물건을 찾아주는 재능도 있다지.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의 덕목과 태생적으로 풍족한 환경 덕분에 높은 수준의 교양을 갖추고, 8개의 다리를 가진 슬레이프니르였던 남자에겐 터무니없이 잘 어울리는 악마다.
야마진 토카는 구동계를 뚫어져라 보던 시선을 돌려 프레임 너머의 남자를 본다. 그는 군적도, 계급도, 이름도 없다. 말수도 적고, 감정적인 기복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무뚝뚝한 건 아니다. 그는 다정다감하고 어쩔 수 없이 체온이 높다. 관찰력과 통찰력이 좋고 반사신경이 뛰어나며 움직임을 계산하는 스킬이 정확하고 빨랐다. 그것은 육체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반복된 학습으로 익숙해진 뇌가 명민하게 돌고 있음을 증명했다. 파일럿으로서 걀라르호른 내에서도 탑을 달리던 사람의 능력은, - 엔지니어엔 관심이 없는 그와 마찬가지로 - 파일럿에 문외한인 야마진이 보기에도 아리안로드의 수많은 파일럿의 평균을 웃돌고도 남았다. 야마진이 프레임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던 게 몽키스패너를 찾는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 그의 섬세하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얻어진 결과일 것이다.
"그렇네?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인지는 갑작스러워, 야마진은 저 아래 난간을 향해 소리쳤다.
"글쎄. 오늘 약속했던 시간은 벌써 넘기긴 했는데."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무심하게 답한다. 벌써 그런 시간이야? 야마진은 황급히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정비용 태블릿을 꺼냈다. 아, 정말이네. 약속했던 시간보다 벌써 20분이나 지나있다. 얼마나 몰두해 있었는지 기억 나진 않지만 느낌상 최소 30분은 지났을 것이다. 그리고 야마진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아마 그것보다 20분은 전부터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얘기를 하지."
"바빠 보여서."
"음습하게 지켜보는 게 취미야?"
"집중하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어."
만지던 부분의 나사를 조이고 난간에 착지해 남자의 옆에 섰다. 야마진보다 한 뼘은 큰 키와 가로로도 세로로도 차원이 다른 건장한 신체다. 다른 병사들과 비교해도 평균 이상의 스펙이지만 그래봤자 인간. 야마진은 그가 얼마나 연약한지 잘 알고 있다. 날카로운 메스로 피부를 가르고, 근육을 헤집고, 희고 딱딱한 뼈를 만지면 누구나 똑같이 연약한 육신이다. 조금만 손을 잘못 눌려도 어딘가 불구가 되거나 그대로 숨이 멎어버릴 것이다. 인간은 모두 그러니까.
"일단 이동하자고. 왜 아무도 연락 안 했지? 몸은 어때?"
"빠른 질문이군. 나쁘지 않아."
"다행이네. 지난번엔 한 번에 기절해버려서, 오늘은 좀 더 오래가길 기도해 보지."
"노력하겠어."
야마진은 제 손에 한 번 들어왔었던 그의 죽음의 형태를 만지작거리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