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그 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저는 때때로 당신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제 얼굴을 궁금해 하기 때문이지요. 허나 저는 그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유명하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고, 당신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훨씬 더 유명합니다.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전엔 그것이 제 온전한 기쁨이 되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음이 조금 슬플 따름입니다.
당신은 자리를 얻었더군요. 저도 익히 아는 자리입니다. 맞닿은 수평선이 아니라면 하늘과 똑같은 푸른 색의 바다가 있는 곳이지요. 온통 푸른 곳에서 상념에 젖어있던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 때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당신은 그 때에도 나의 절망을 바라고 있었을까요.
당신, 나는 당신을 모두 안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당신, 당신이 가면을 쓰기 전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렇기에 저의 동경이었지요. 곁에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가면을 쓴 이후에도, 여전히 당신은 나의 동경이었습니다. 당신의 시선이 제게 닿길 바랐던 이유는, 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겐 너무나도 먼 존재였기에 가깝고 싶어졌을까요. 잠 못 드는 밤마다 당신에게 저는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저를 몇 번이나 내칠 때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리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나는 절망하지 않을 거라고, 당신이 주는 절망을 너무 쉽게 생각하였지요. 그리고 간절했기에, 당신이 내미는 손을 너무 쉽게 잡았습니다. 그것으로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지요. 어리석은 나날이었습니다.
당신, 우리가 당연한 수순으로 기체를 탈 때 교관이 제일 먼저 주의를 주는 게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뒤집히는 선체 안에서 순간의 파랑에 넋을 잃지 않을 것을 배웁니다. 수면 밑과 하늘 위는 엄연히 다르지만 같은 색이기에 우리는 위로 올라갈 희망과 수심 밑으로 추락하는 절망을 가끔 착각하고 말아버립니다. 끝없이 떨어지는 고도를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말지요. 계기판이 알려주는 붉은 등은 이미 협소한 시야에선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균형을 잃고 바다에 처박히지 않는 것을 배웁니다.
나는 집중력도, 기억력도 그리 좋지 않아 그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파일럿은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기체를 움직여야 합니다. 당신은 종종 제게 그랬습니다. 흥분해서 앞서나간다고, 훌륭한 기술이 감정적인 연유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몇 번이고 경험했고 그렇기에 고쳤어야 했는데 자만하고야 말았습니다. 나의 실력을 너무 믿은 탓이지요. 저는 그리하여 한 번 하늘로 올라간다 믿었다가 저 깊은 수심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뒤늦은 돈오입니다. 자, 나에게서 배웠으니 이제 당신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저는 여전히 당신이 제가 동경하던 존재로 남기를 바랍니다. 나의 평생을 그랬기에, 이제와 당신에게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엔 가슴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꽃이 저물었어도 내년에 다시 꽃이 피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이 간절함이 들렸으면 합니다. 저의 이 짧은 글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겠지요.
그러니 그저 당신의 절망이 내 것이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먼 옛날에 약속했던 것처럼. 당신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행복이 당신의 행복이라고. 나의 작금의 절망이 당신이 준 것이듯 당신의 절망 또한. 허나 명확하게 말해두고 싶군요. 저는 저의 신념의 무게와 가치를 여전히 져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다시 하늘로 향합니다. 푸른 창공을 비행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입니다. 이번엔 고도를 똑바로 보고,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닿지 않을 편지가 너무 길었습니다. 다시 만날 그 날까지 행복하길 빕니다.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